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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땅 후쿠시마에서 내가 본 것은"



공연/전시

    "죽음의 땅 후쿠시마에서 내가 본 것은"

    [인터뷰]미디어 아티스트 박찬경 작가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데 속으로 피폭"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9' 박찬경 전시회 '모임'

    박찬경 작가가 찍은 폐허가 된 후쿠시마의 전경(왼쪽)과 일본 사진가 카가야 마사미치의 잉어 오토래디오그래피, 하얀 부분이 방사능에 피폭된 부분이다. (사진=박찬경 제공)

     

    "후쿠시마에 다녀온 뒤, 아이러니하게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4월 전시 작업을 위해 일본 후쿠시마에 다녀온 박찬경(55) 작가를 지난 21일 'MMCA 현대차 시리즈 2019 : 박찬경 - 모임 Gathering'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났다.

    박 작가는 "갈 때는 스트레스도 받고 여러 가지로 심경이 복잡하고 마음이 어두워져 블랙홀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막상 가서 보니까 너무 아름다웠다"며 "시골 풍경이 아름답고 공기도 맑게 느껴지고 벚꽃도 많이 피고 자연도 굉장히 훌륭했는데 실제로는 숨쉬기 힘들고 방사능으로 오염된 곳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데 속으로 피폭이 되는 거니까 기분이 이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 이후 사람들이 차도 그렇고 다 그대로 놔두고 떠나는 그 흔적을 보면 자연 풍경은 그렇게 아름다운데 사람들이 살았던 곳은 거의 종말 같은 느낌이 나더라. 평생 또는 대대로 살다가 떠난 사람들의 흔적을 보니 징징거리고 살면 안 되겠구나, 엄청난 일을 이 사람들이 겪었구나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기회가 있으면 한 번 가도 좋다고 생각한다"며 "실제로 가서 보면 이게 남의 동네 일이 아니고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고 현대 문명 자체에 대한 굉장한 회의를 하게 된다. 도대체 에너지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이 하는 짓이 도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만 우리 외교부는 후쿠시마 원전 반경 30km 이내와 일본 정부가 지정한 피난지시구역을 철수권고 지역으로 분류했다.)

    일본 사진가 카가야 마사미치와 협업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담은 200여장의 사진과 피폭된 뱀과 잉어, 말벌, 빨래집게, 티셔츠 등을 오토래디오그래피(방사성물질 분포를 사진으로 나타내는 기법)로 보여주는 '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를 보면 사고 이후 시간이 정지된 후쿠시마와 방사능에 오염됐지만 여전히 생명력 있는 자연환경 등이 대조적으로 보여진다.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대표 김영희 변호사는 "침묵 속에서 보여주는 오토래디오그래피와 현장, 특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서 속절없는 벚꽃이 전해주는 아름다움과 후쿠시마의 슬픔이 작가의 예술적인 감각과 잘 맞아 떨어졌다"며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를 아름다움으로 전달한 작가의 창조적 능력이 엿보인다. 많은 분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 입학 예정인 정수빈(19)양은 "네거티브 효과가 SF영화를 보는 거 같아 연출과 화면구성이 재미있었다"며 "일본의 단절된 일상과 피폭 상황이 무서우면서도 놀라웠다"고 말했다.

    'MMCA현대차시리즈 2019 :박찬경-모임 Gathering' 전시에서 상영 중인 '늦게 온 보살'(2019) 한 장면. 홍철기촬영(사진=국립현대미술관제공)

     

    다음으로 55분에 이르는 흑백 네거티브 영상 '늦게 온 보살'.

    강원도 평창과 서울 북한산, 인왕산 등지를 돌며 촬영한 이 영화는 '석가모니의 열반'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재난을 하나로 묶는다.

    흑백 네거티브 필름으로 찍어 후쿠시마 방사능 사진을 연상시킨다.

    흑백만 보이는 대부분의 영상에서 간혹 나오는 화려한 그림과 화면은 시각적인 효과가 극대화돼 미술가인 감독의 영상미가 극대화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재난 이후' 외에도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모임(Gathering)'도 담겨져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일면식 없던 젊은 여성과 중년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서로 토닥이며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관을 드는 장면은 파편화된 사회에서 유대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 '같이 있다'는 것의 중요성을 체험하는 것, 공동체의 기본 전제

    "유대 문화가 사라진, 목적이나 동기 없이 모이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시대"라고 지적한 작가가 아무 목적없는 '애도 공동체'를 표현한 것.

    박 작가는 "복지사회냐 통일사회냐 이전에 '모임'이 왜 필요한지 무엇인지 기초적인 기반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같이 있다'는 것의 중요성을 체험하는 것이 지금 생각해야하는 공동체의 기본적인 전제가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MMCA 현대차 시리즈 2019 : 박찬경 - 모임 Gathering' 전시를 진행하고 있는 박찬경 작가(사진=현대자동차제공)

     

    박 작가는 분단, 냉전, 민간신앙, 동아시아의 근대성 등을 주제로 한 영상, 설치, 사진 작업으로 국내외 미술계에서 주목받아왔다.

    형인 박찬욱 감독과 '파킹찬스'(PARKing CHANce)'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아이폰 영화 '파란만장', 판소리 스승과 제자의 하루를 다룬 '청출어람', 서울을 주제로 한 단편영화 '고진감래', 2000년에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판문점 오픈세트를 3D 영상으로 촬영하고 소리를 입체적으로 다룬 '격세지감' 등의 협업을 하기도 했다.

    MMCA 현대차 시리즈는 현대자동차가 2014년부터 10년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진 작가 개인전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이불, 안규철, 김수자, 임흥순, 최정화가 이를 통해 신작을 선보였다.

    1년 6개월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심혈을 기울인 박찬경 개인전은 2월 23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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