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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별 불안 없이 父와 함께 살고파"…'이란 난민' 민혁군의 설날



사건/사고

    "생이별 불안 없이 父와 함께 살고파"…'이란 난민' 민혁군의 설날

    아빠 따라 한국 온 이란 학생, 교회 다녔을 뿐인데…
    이란서 '개종'은 중죄…처벌 가능성에 아버지와 난민 신청
    "같은 상황인데 아들은 '난민 인정', 아버지는 '불인정'"
    생이별 가능성에 불안하지만…민혁군과 한국 친구들 "희망 있어"
    "새해에는 부디 마음 편히 밥 한끼 먹을 수 있길"

    "민혁이의 첫 번째 난민 신청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기각됐어요. 그래서 소송을 걸었는데 1심은 민혁이가 이겼고, 2심은 졌죠. 3심 항소는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됐어요."

    친구들은 어려운 법률 용어도 술술 설명할 정도로 '난민 전문가'가 돼버렸다. 소년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이 웃었다. 이란인 김민혁군(16)과 한국 친구들의 모습이다.

    10년 전 이란에서 우리나라에 온 민혁군은 2018년 난민으로 겨우 인정을 받았다. 청와대 국민청원부터 각종 기자회견까지 백방으로 도와준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 놓인 민혁군의 아버지는 지난해 난민 재심사에서도 '불인정' 판정을 받았다.

    언제 아버지와 헤어지게 될 지 모르는 불안한 삶 속에서도 민혁군은 친구들과 '희망'을 얘기하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신년에는 '난민도전기'를 마치고, 아버지와 안정적으로 한국에 정착하는 게 그의 첫번째 소원이다.

    김민혁군과 김지유양, 박지민군이 21일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차민지 기자)

     


    ◇ "초등학교 친구들과 교회 다녔을 뿐인데…이란서 개종은 '중죄'"

    민혁군은 2010년, 사업하는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왔다. 체류 비자를 발급받아 일반 학교에 입학한 뒤 빠르게 한국어를 배웠다는 민혁군은 친구들도 금세 사귀어 속칭 '인싸'가 됐다.

    민혁군은 초등학교 2학년인 2011년, 친구의 권유로 처음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민혁군은 "처음에는 친구들을 따라서 교회에 가게 됐는데 이후에 믿음이 생기면서 계속 나가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아버지도 교회에 나와 영어예배 등에 참석했다.

    그런데 3년 뒤 문제가 생겼다. 민혁군이 이란에 있는 고모와 전화를 하던 중 '교회에 다녀왔다'고 말한 것이다.

    "그저 '교회에 다녀왔다'고 말한 것뿐인데, 고모는 제게 '미쳤냐'고 말했어요. 그리고는 연이 끊겼죠. 당시에는 고모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도 몰랐어요. 나중에야 아버지로부터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서 종교를 바꾸는 건 사형까지 당할 수 있는 중죄'라는 사실을 들었어요."

    이란인인 자신에게는 종교가 '선택'이 아니라 '의무'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교회를 다녔던 부자(父子)는 현재 천주교로 개종해 성당을 다니고 있다. 민혁군의 친인척들은 부자가 연락을 해도 받지 않는 상태다.

    김민혁군이 2019년 10월 서울대 학생들과 공동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난민 신청했지만…"같은 상황 속 아들은 '인정', 아버지는 '불인정'"

    체류 비자 만료 기한이 점점 다가오는 데다가, 개종(改宗) 사실을 들켜 이란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민혁군 부자는 2016년 지인의 제도적 조언을 얻어 한국 정부에 난민 신청을 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이들의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부자는 행정소송을 진행해 3심까지 갔지만 기각당했다.

    그런데 2018년 민혁군의 난민재심사를 앞두고 상황이 달라졌다. 민혁군의 사정을 들은 아주중학교 친구들이 나선 것이다. 친구들은 청와대 국민청원부터, 1인 시위, 입장문 발표까지 최선을 다해 도와줬다.

    곳곳에서 응원이 쏟아졌고, 민혁군은 2018년 10월 '자기 종교를 숨기고 이란 이슬람 사회에서 살아가는 게 충분히 공포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결국 난민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아버지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민혁군의 아버지는 지난해 2월 난민재심사를 신청했지만 불(不)인정 통보를 받았다. 법무부는 민혁군의 아버지가 난민협약에서 규정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신 민혁군이 미성년자인 점을 고려해 1년 기한의 인도적 체류를 허가해줬다.

    인도적 체류자는 난민 인정자와 달리 1년마다 자격 심사를 받아야 하고, 향후 심사에서 탈락하면 출국될 수 있다. 사실상 '임시 비자'가 주어지기에 취업도, 사회보장 혜택도 제한된다.

    가뜩이나 민혁군의 아버지는 건강 악화로 수술까지 받은 뒤 경제활동을 사실상 멈춘 터라 두 사람은 막막한 상황에 놓였다. 현재는 장학금 등 주변의 도움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민혁군과 그를 도왔던 친구들은 같은 처지인 부자에게 다른 결정을 내린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민혁군의 십년지기 친구 박지민군(16)은 "민혁이랑 아버지는 똑같은 상황이잖나. 똑같이 성당을 다니고, 샤리아법(이슬람 율법)을 엄격히 적용받는 이란인인데 결론이 다르게 나니까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지민군은 "더군다나 민혁이 아버지는 언론 노출도 많이 돼서 더 이상 '일반인'이 아니다"며 "지금 법무부 결정에 이의신청을 해둔 상태인데 결과가 언제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김민혁군이 2019년 8월 아버지의 난민 불인정 통지서를 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아버지 난민 인정이 1순위"…"새해에는 부디 마음 편히 밥 한끼 먹을 수 있길"

    아버지가 난민재심사에서 거절을 당한 지 벌써 5개월째. 그 사이 민혁군과 친구들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국회 기자회견, 서울대 합동기자 회견, 1인 릴레이 시위 등 다방면으로 뛰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힘을 보태줬던 아주중학교 친구들 역시 각자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이전처럼 시간을 내주기 쉽지 않다. 녹록지 않은 현실이지만, 민혁군과 친구들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민혁군의 중학교 친구 김지유(16)양은 "민혁이가 성격이 활발하고, 힘들어도 티를 잘 안 낸다. 본인이 제일 힘들 텐데도 맨날 옆에서 웃어주고 하니까 이런 활동도 힘들었다기보다는 좋은 추억처럼 기억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혁군은 매번 발 벗고 나서주는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친구들은 오히려 민혁군에게 고마워했다. 민혁군 덕분에 난민 문제를 남들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키웠다는 것이다.

    지유양은 "민혁이를 도와주면서 사람들 마음속에 난민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알게 됐다"며 "이들 모두가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부디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혁군과 친구들은 설날 맞이 소망을 묻자 주저 없이 '아버지의 난민인정'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아버지가 걸려있으니까 마음이 계속 무거웠거든요. 올해에는 꼭 아버지가 난민 인정을 받아서 다 같이 편하게 밥이나 한 끼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지민군)

    "저희가 민혁이 난민 인정받았을 때 정말 좋아서 날뛰고 그랬거든요. 그 기분을 다시 한 번만 느껴보고 싶어요" (김지유양)

    "부디 아버지의 난민 인정이 돼서 친구들이 그만 고생했으면 좋겠어요. 이제는 그만 힘들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김민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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