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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세계 4강' 탁구 신성은 왜 잊혀졌을까



스포츠일반

    '깜짝 세계 4강' 탁구 신성은 왜 잊혀졌을까

    '세계 4위 꺾었다' 지난 4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식에서 안재현이 일본의 천재 하리모토 도모카즈를 꺾은 뒤 포효하는 모습.(사진=대한탁구협회)

     

    지난 4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2019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혜성처럼 떠올랐다. 남자 단식 세계 157위에 불과했던 앳된 얼굴의 20살 약관의 무명 선수는 세계 10위권 안팎의 강자들을 잇따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 선수는 한국 탁구 사상 처음으로 세계선수권 첫 출전에서 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역대 남자 단식 최연소 메달 기록도 갈아치우며 한국 탁구 역사를 새로 썼다. 대표팀 막내 안재현(20·삼성생명)이었다.

    세계선수권에서 안재현은 당시 14위 웡춘팅(홍콩)과 1회전에서 승리하며 돌풍의 서막을 열었다. 이후 32강에서 29위 다니엘 하베손(오스트리아), 16강에서 일본의 16살 천재 하리모토 도모카즈(4위)를 누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8강에서는 10위였던 장우진(24·미래에셋대우)까지 넘었다. 안재현은 비록 4강에서 16위 마티아스 팔크(스웨덴)에 아쉽게 졌지만 동메달을 따냈다. 올해 세계선수권에서 대표팀의 유일한 메달이었다.

    하지만 이후 안재현은 잊혀졌다. 한국 탁구를 이끌 새로운 대들보로 주목을 받았으나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안재현은 ITTF 코리아오픈과 호주오픈, 일본오픈 등에서 단식 32강에 오른 게 최고 성적이었다. 9월 아시아선수권에서도 16강전에서 중국의 린가오위엔에 완패를 안았다. 세계선수권에서 이룬 약관의 기적은 신기루처럼 사라진 것 같았다.

    한국 탁구 대표팀 막내 안재현이 2019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자 단식 동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식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사진=안재현 제공)

     

    제 73회 전국남녀종합선수권대회가 마무리된 지난 9일 강원도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안재현을 만났다. 그동안 적잖게 몸과 마음고생이 있었다.

    안재현은 4월 당시 세계선수권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를 보자 반갑게 인사했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안재현은 "세계선수권 이후 솔직히 부진해서 좋은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깜짝 동메달, 정말 단발성 활약이었던 걸까. 엄청난 환호와 갑자기 집중된 관심에 들떠 이후 마음을 다잡지 못했던 것일까. 이에 안재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땄다고 해서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낯선 상황에 슬럼프가 찾아왔다는 설명이다. 안재현은 "처음 국가대표로 발탁돼 국제대회를 계속 치르는 빡빡한 일정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세계선수권 이후 솔직히 몸은 좀 쉬고 싶은데 계속 대회에 출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태극마크를 단 가운데 내년 도쿄올림픽을 위해 랭킹을 끌어올려야 했던 안재현이었다.

    세계선수권 대이변으로 다른 선수들의 집중 견제가 이뤄진 탓도 있다. 이전까지 무명이나 다름없던 안재현은 거의 분석이 안 된 상태였다. 강호들이 다소 방심한 가운데 허를 찌르는 플레이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세계선수권 이후는 달랐다. 안재현이 "내 마음처럼 경기가 풀리지 않더라"고 털어놓은 이유다.

    잃을 게 없었던 세계선수권 이전과 이후 성적에 대한 부담이 있던 상황도 달랐다. 여자 대표팀 에이스 전지희(27·포스코에너지)도 "지난해 세계선수권에 처음 나섰을 때는 그래도 편하게 경기할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올해 기술과 실력이 늘었지만 하위 랭커들과 대결이 심적으로 오히려 힘들더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세계선수권 기적, 재현하겠습니다' 안재현이 9일 전국남녀탁구종합선수권대회 남자 단체전 우승을 이끈 뒤 인터뷰를 마치고 내년 도약을 다짐하고 있다.(춘천=노컷뉴스)

     

    안재현에게는 더 큰 선수로 자라기 위한 성장통이다. 소속팀인 이철승 삼성생명 감독은 "사실 안재현이 세계선수권 이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워낙 재능이 있고, 노력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슬럼프를 잘 극복해낼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본인도 일단 국내 대회에서 반등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지난 10월 전국체전에서 안재현은 남자 단식과 단체전 등 2관왕에 올랐다. 비록 장우진과 이상수(삼성생명), 정영식(국군체육부대) 등 다른 국가대표들이 국제대회 출전으로 빠졌지만 100번째 전국체전 단식 우승자라는 자부심을 얻게 됐다. 이번 종합선수권에서도 비록 단식에서는 2년 연속 챔피언 장우진에 져 입상하지 못했으나 소속팀의 단체전 2연패를 이끌었다.

    마음을 비우고 다시 올라간다는 각오다. 안재현은 "내년 도쿄올림픽을 목표로 했지만 랭킹이 낮아 출전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면서 "올림픽은 사실상 마음을 비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재현은 현재 세계 40위로 장우진(13위), 이상수(17위), 정영식(18위) 등에 적잖게 뒤처져 있다.

    그러면서도 안재현은 "하지만 내년 세계선수권 등 국제대회가 있기 때문에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입을 앙다물었다. 내년 3월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2020 부산세계선수권대회(단체전)다.

    내년 각오를 밝히는 안재현의 입술 위에는 아직은 보드랍지만 거뭇하게 수염이 보였다. 대단한 성공과 끝모를 부진을 오갔던 안재현의 2019년, 과연 올해 세계선수권에서 이룬 깜짝 활약을 내년 이후 재현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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