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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 대잔치'에 이용되는 논어, 제대로 활용하려면"



책/학술

    "'아무말 대잔치'에 이용되는 논어, 제대로 활용하려면"

    논어 에세이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기존 논어 번역, 해석에 동의하기 어려운 점 많아
    소위 '공자님 말씀', 근거 없고 무관한 것도 다수
    고전은 살아있는 지혜? 텍스트 자체는 과거의 산물
    만병통치약처럼 받아들이기보단 해석하는 훈련 필요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20~19:55)
    ■ 방송일 : 2019년 12월 06일 (금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 정관용> 지난해 추석이니까 꽤 됐네요. 화제를 모았던 추석이란 무엇인가 이런 제목의 칼럼 기억나시나요, 서울대 김영민 교수의 글이었는데. 당시 저희 방송에서도 모셔서 이야기 나눴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런 제목의 책이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에도 선정됐다고 하고요. 그런데 바로 그 김영민 교수가 최근에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 제목의 새로운 에세이집을 펴냈습니다. 오래간만에 모셨어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 어서 오십시오.

    ◆ 김영민> 안녕하세요.

    ◇ 정관용>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그 옆에 부제가 김영민 논어에세이예요. 논어에세이하고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하고 무슨 관련이 있나요?

    ◆ 김영민> 이게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이 실제로 제 책 안에 나오는 문장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그 뒤의 부분을 다 읽으면 그 뜻이 좀 더 분명해지는데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게 전체 문장인데 이제 출판사에서 이 앞부분을 떼서 제목을 삼았습니다. 요컨대 논어를 통해서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대단한 진리 이런 것보다는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이런 취지가 담긴 문장인데 그중에 일부를 뽑아서 출판사에서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요.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까지만 딱 끊어놓고. 그 뒤에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것이다가 사실은 방점이잖아요.

    ◆ 김영민> 그렇죠.

    ◇ 정관용> 내용상의 중심은 그거잖아요. 정직하려면 책 제목을 그거로 써야 되는 것 아니에요?

    ◆ 김영민> 그런데 간신히가 굉장히 키워드입니다. 왜냐하면 너무들 논어든 그밖의 고전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것들을 희망해 오고. 그걸 읽으면 뭔가 만병통치약이 될 것 같은 그런 것들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라고 얘기하는 책이기 때문에 간신히도 뒤의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단어입니다.

    ◇ 정관용> 이제 이 제목을 통해 얘기의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 전공이 동아시아 사상사 맞아요?

    ◆ 김영민> 그렇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정치 사상사.

    ◇ 정관용> 박사학위 제목이 뭐예요?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하셨죠?

    ◆ 김영민> 네, 16세기 초 자아와 세계의 관계 이런 겁니다, 한국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 정관용> 16세기 초의.

    ◆ 김영민> 중국 얘기죠.

    ◇ 정관용> 뭐와 뭐의 관계요? 자아와 세계?

    ◆ 김영민> 자아와 세계. 옛날 얘기를 하게 되네요.

    ◇ 정관용> 그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16세기의 어떤 철학자들이 어떻게 봤는지 이거입니까?

    ◆ 김영민> 1명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명 있었던 사람들.

    ◇ 정관용> 누구누구가 나와요, 거기에?

    ◆ 김영민> 좀 들어보셨을 만한 이름으로는 왕양명 이런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그 동세대 사람들 중에 훨씬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한 세대의 이야기를 다룬 겁니다. 한참 전 얘기네요.

    ◇ 정관용> 공자는 거기 안 나오죠?

    ◆ 김영민> 실존인물로서 공자는 아니지만 그 당시 사람들도 계속 공자를 레퍼런스 삼아서 얘기를 했기 때문에 공자의 존재감이 그 당시에도 강하죠.

    ◇ 정관용> 16세기 중국의 사상계에서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어떻게 들여다 보았는지 이런 걸 연구하셨다.

    ◆ 김영민> 그렇습니다.

    ◇ 정관용> 참 어려운 것 하셨네요.

    ◆ 김영민> 막상 말해보니까 굉장히 어렵게 느껴지는데, 저도.

    ◇ 정관용> 그런데 그런 전공을 살리셔서 논어를 다시 본 겁니까? 논어에 대한 관련 책들이 보니까, 검색해 보니까 삼천 몇 권이 넘는다면서요? 우리나라에만.

    ◆ 김영민> 제가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서점에 가서 지금 쉽게 구할 수 있는 논어 번역본만 50종이 넘습니다. 그리고 그 다른 해설서도 있지만 그리고 그 번역서들이 대개 일정한 해설을 담고 있고 그런데. 진짜 다 검토해 봤는데 저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점들이 꽤 있어서.

    ◇ 정관용> 번역부터. 번역된 결과물부터.

    ◆ 김영민> 네, 그래서 한번 대안을 제시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런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 왔고 그리고 지난 한 십몇년 동안은 꾸준히 학생들하고 학교 수업과 별개로 논어를 거듭 읽어왔고 그동안 조사해 오고 연구해 온 결과가 있어서 정리할 때가 됐다 이렇게 생각하던 차에 프로젝트를 하게 된 거죠.

    ◇ 정관용> 이번에 내신 책은 본격적인 논어 프로젝트의 어찌 보면 서문도 아닌 격이라면서요.

    ◆ 김영민> 안내서에 가깝고요. 제가 생각하는 건.

    ◇ 정관용> 앞으로 뭘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계신 겁니까?

    ◆ 김영민> 제가 기존 논어에 관련된 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면 최소한 4가지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하나는 논어에 대한 새로운 번역, 그리고 기존 논어 번역들에 왜 어떤 이유에서 내가 동의하지 않는지 논어 번역비평이라는 이름으로 또 두꺼운 책을 하나 써야 되고, 그리고 하나는 이번에 출간한 논어에 대한 관련된 주제 어떻게 볼 것인가를 안내하는 안내용 에세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10권에 달하는 논어 해설서가 있습니다.

    ◇ 정관용> 논어 해설서까지 하나하나. 그러면 이제 곧바로 왜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번역본만 50여 종에 달하고 관련 책이 3000권이 넘을 만큼 논어가 일종의 하나의 아이콘이잖아요. 우리 사회에서 어떤 아이콘이었던 겁니까?

    ◆ 김영민> 그 모든 해석들의 공통점은 사실은 없을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의견을 담기 위한 어떤 그릇으로 사용을 했죠. 그래서 논어의 특징은 거의 우리의 생활과 사고를 상당히 좌지우지할 수 있는 언어의 기능을 한다는 데 가장 큰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해석들 간의 공통점은 오히려 많지 않을 수 있어요.

    ◇ 정관용> 그래요? 번역한 분들마다 다 다르게 본 건가요?

    ◆ 김영민> 상당히 다릅니다.

    ◇ 정관용> 진짜요?

    ◆ 김영민> 상당히 논어를 사랑하시는 분도 계시고 굉장히 혐오하시는 분도 계시고. 상당히 극단적인.

    ◇ 정관용> 혐오한 분이 펴낸 번역서도 있어요?

    ◆ 김영민> 그렇죠.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에서 논어를 해설하시는 분도 있죠.

    ◇ 정관용> 그냥 우리 옛날로부터 들어온 공자 말씀에 가라사대 이러면 너무 어찌 보면 한편에서는 지당하신 말씀 너무나 맞는 말씀, 꼭 따라야 하는 말씀. 그런데 왠지 좀 고리타분한 말씀 이런 의미를 갖고 있잖아요. 그렇게 사용돼 왔나요, 논어가?

    ◆ 김영민> 그러니까 공자 당시에는 전혀 공자는 그런 인물은 아니었고요. 그런데 첫 번째 오해는 일단 공자가 논어를 쓴 건 아니죠. 만약에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봤는데 공자가 이렇게 논어를 저술하고 있는 모습이 나오면 그거는 거짓말이고요. 다만 제자들한테 건넨 말들이 모여서 전해진 것이고. 그러니까 그게 시간을 거치면서 다양한 부침을 겪은 거죠. 그 당시 상당히 새로운 얘기를 하는 사람으로 보였을 수도 있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신격화되기도 하고 또 일정 시간이 지나서 현대에 오는 과정에서 극도로 혐오스러운 보수의 아이콘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다양한 부침을 겪어온 셈이죠.

    ◇ 정관용> 그런데 교수님 보기에는 논어는 뭡니까?

    ◆ 김영민> 그러니까 논어, 제가 좀 피하고 싶었던 것은 너무 좋아하거나 너무 싫어하지 말자는 게 제 견해입니다. 그러니까 왜냐하면 어떤 대상에 대해서 너무 좋아하다 보면 그걸 정교하게 알기도 어렵고 너무 싫어해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동시에 이게 뭐 대단한 진리를 가지고 있다 이걸 읽으면 여러 가지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런 태도를 버리고 그 대신에 이게 사실은 좀 정확하게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텍스트이기 때문에 이걸 통해서 텍스트를 잘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그리고 이걸 매개로 해서 그동안 변천해 온 동아시아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 좀 더 정교하게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우리의 삶과 문화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 희망이 있습니다.

    ◇ 정관용> 아까 대단한 진리인 것처럼 하지 말자. 좀 더 구체적으로는 고전을 살아 있는 지혜로 포장해서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하는 세태를 경계한다 이렇게 쓰셨잖아요.

    ◆ 김영민> 네.

    ◇ 정관용> 고전은 살아 있는 지혜 아니에요?

    ◆ 김영민> 저는 그렇지 않다는 게 제 중요 주장 중의 하나입니다.

    ◇ 정관용> 왜요, 왜 그렇죠?

    ◆ 김영민> 과거의 일이고 그 당시에 말한 사람들은 다 자기가 목전에 둔 문제에 대해서 발언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그 의미가 유효했던 것은 당대에서 유효한 거죠. 그래서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 상당히 많은 역사적 배경과 관련 지식을 알아야 되고 그리고 정작 우리한테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걸 아는 데 더불어서 그밖에 우리의 또 삶을 좌우하고 있는 다른 것들도 알고 그래서 그게 결국은 살아 있는 지혜가 되는 것은 논어 때문에 된다기보다는 그 고단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지금 현재 살고 있는 각각의 당사자들이 자기 사고의 결과로 지혜라는 것이 살아 있게 되는 것이지 그 자체로 텍스트는 사실은 과거의 산물에 불과하죠.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김영민 지음 (사진=사회평론 제공)

     


    ◇ 정관용> 아니, 이게 뭐 제가 억지를 쓰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지혜라는 단어는 지식이나 이런 것과는 좀 다르잖아요. 어떤 사물에 대한 판단, 사건에 대한 판단과도 좀 다르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좋다. 이런 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통할 수 있는 보편적 지혜이며 진리 아닌가요.

    ◆ 김영민> 그 경우에 따라 그것도 다른 것 같습니다. 보편적인 진리는 아니고요. 실제로 제가 책에서 썼습니다만 공자는 사람을 무조건 사랑하라는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습니다. 상당히 사람을 제대로 미워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얘기를 훨씬 더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 좀 제대로 미워할 줄 알아야 된다. 이게 제대로 진짜 미워해야 되는 사람인데 미워하지 않으면 좀 문제가 있다 이런 취지의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 정관용> 또 이 말은 어때요? 참을 인자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 그런 것도 논어에 나오는 말이죠?

    ◆ 김영민> 전혀 나오지 않는 말이고요.

    ◇ 정관용> 그래요?

    ◆ 김영민> 그런데 저희가 참을 인자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 그건 살인을 한 번 하면 세 번 안 참아도 된다 그런 식의 얘기들이 나오는데 논어하고는 무관한 얘기죠.

    ◇ 정관용> 그래요. 그건 어디서 나온 얘기예요.

    ◆ 김영민>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건 아마 중간에 어느 속설에서 생기기 시작한 거고 논어 같은 고전에 기반한 얘기는 아니죠.

    ◇ 정관용> 그래요? 뭔가 표현하신 것처럼 만병통치약처럼 써먹으려다 보니 그 근거로 공자님 말씀이야라고 갖다붙인 것도 많은 모양이군요.

    ◆ 김영민> 상당히 많고 화장실 벽면에 쓰여 있는 그 근거 없는 그런 얘기들도 많고. 그래서 심지어 지금 우리가 읽는 논어 중에서도, 100% 다 진짜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중간에 전승에 의해서 그냥 들어가 있지만 우리가 계속 받아 내려온 것도 있고.

    ◇ 정관용> 제가 이렇게 지금 툭툭 던진 질문들이 바로 그런 걸 반영하는 거예요.

    ◆ 김영민> 그렇습니다.

    ◇ 정관용> 진짜는 들어 있지도 않은데 우리 모두 공자님 말씀처럼 알고 있는 것도 있더라.

    ◆ 김영민> 어떤 게 일정 정도 권위를 얻고 유명해지면 다들 거기에 의지해서 얘기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들 마음이니까요.

    ◇ 정관용> 그러면 공자님 말씀, 논어 그다음에 그것이 유교. 우리는 또 유교적 전통 이런 거랑 한 묶음으로 이해하잖아요.

    ◆ 김영민> 그런 경향이 있죠.

    ◇ 정관용> 그건 맞나요, 틀리나요.

    ◆ 김영민> 일단 공자 살아생전에 유교라는 것은, 우리가 아는 식의 유교라는 건 없었고요. 공자 스스로 무슨 종교든 종파를 세운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런데 저는 늘 그렇게 생각하지만 어쨌든 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는 유교라는 말을 할 때 우리가 의미하는 바가 다 다릅니다. 그래서 거기 공통분모가 거의 없기 때문에 많은 용례에 있어서 아무 말에 가까운 단어죠.

    ◇ 정관용> 유교라는 단어가?

    ◆ 김영민> 유교라는 말을 통해서 그냥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담기 때문에. 그래서 정교한 언어생활을 위해서는 유교라는 말은 되도록이면 안 쓰는 게 좋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본인이 유교라는 전통을 특별히 살려야겠다는 어떤 미션을 갖고 있지 않는 한.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쉽게 이해는 가는데, 의도는. 그렇지 않다면 보다 정교한 언어 생활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모호한 말은 되도록이면 피하고 차라리 그 말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는 게 낫죠.

    ◇ 정관용> 좀 극단적으로 비교해 주세요. 어떤 사람은 유교라는 단어를 통해 이런 말을 하고 어떤 사람은 유교라는 말을 통해 정반대의 말을 하더라는 것을 비교해 주세요.

    ◆ 김영민> 그러면 저렇게 해 볼까요? 보통 유교 하면 효 이런 거 떠올리지 않나요. 그런데 사실은 보통 본인이 유교전통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효보다 중요한 게 많다고 다른 게 훨씬 중요한 게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고 그리고 유교랑 아무 관계도 없는 프랑스에서 굉장히 효를 중시하는. (유교전통에 있다는 사람은) 효를 별로 중시하지 않을 때 훨씬 중시한 전통도 있고. 그래서 뭐가 하나가 딱히 이건 효가 됐든 뭐가 됐든 다른 것도 마찬가지죠. 충이 됐든 뭐가 됐든. 이게 딱히 유교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상당히 성급한 일반화에 가깝고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말해지고 쓰여지고 읽혀지는 것이기 때문에 각자 사실은 그 그릇에 담고 싶은 것을 담아온 역사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다 보니 공통점도 굉장히 적고요.

    ◇ 정관용> 유교는 기독교나 이런 종교도 또 아니죠.

    ◆ 김영민> 그것도 굉장히 논란입니다. 결국 종교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그리고 그거는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데도 있고. 예컨대 미국의 종교학과, 대학의 종교학과 같은 데서도 의도적으로 유교를 자신의 커리큘럼에 일부러 포함하는 데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데도 있고 이게 다 논쟁적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다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좀 경계해야죠.

    ◇ 정관용> 교수님 말씀 중에 듣다 보니까 정말 점입가경으로, 베트남은 한국하고 굉장히 친숙해. 왜냐, 유교 문화가 뿌리박혀 있는 사회야. 이 말은 맞는 말이에요, 틀린 말이에요.

    ◆ 김영민> 그러니까 이게 맞거나 틀리면 차라리 괜찮겠는데 맞을 수도 없고 틀릴 수도 없는 말입니다. 영어의 표현 중에 not even wrong이라는 표현이 틀리지조차 않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건 맞으면 제일 좋겠지만 그다음으로 좋은 건 틀리기라도 하는 거. 그런데 이거는 맞다고 해야 할지 틀리다고 해야 할지 불분명한 발언들은 틀리지도 못하는 거죠. 예컨대 베트남의 강한 유교 문화가. 그 얘기의 전제는 우리나라는 굉장히 유교 문화가 강했고 베트남은 그만큼 강했고 그걸 측정할 수 있는 기준도 있어야 되고 그때 유교라는 말을 통해서 똑같은 걸 의미해야 되고.

    ◇ 정관용> 그러니까 뭘 의미 하는지가 사람마다 다른 거네요.

    ◆ 김영민> 그래서 이건 누가 그런 말을 하면 더 따져묻기 전에는 맞다는 이야기도 할 수 없고 틀리다는 이야기도 할 수 없는 아무말에 가까운 게 되는 거죠.

    ◇ 정관용> 이제 좀 이해가 됩니다.

    ◆ 김영민> 그걸 그럼 강조해서 얘기하고 싶은 건, 보통 한국에서는 조선 건국과 더불어 우리는 완전히 유교국가였어 이런 얘기도 많이 들어보셨죠? 그것도 실제 전문가들에 의하면 실제로 우리가 무엇을 의미하건 유교라는 말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조선 후기나 돼야 그냥 간신히 좀 그 정도로 얘기할 수 있겠다 생각하는 전문가들이 훨씬 많습니다.

    ◇ 정관용> 어떤 분은 또 심지어 그렇게까지 말하죠. 고려는 전 세계와 사통팔달로 통하던 글로벌 국가였는데 조선은 그 유교라고 하는 해괴한 문화에 갇혀서 쇄국을 하는 바람에 500년이 암흑의 역사야 이렇게 말하는 곳도 있어요.

    ◆ 김영민> 그것도 진짜 맞지도 않았지만 틀리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맞거나 틀리거나 하나가 되면 반박하기도 쉬운데 그 자체로는 맞다고도 틀리다고도 할 수 없는 모호하고 애매한 발언인 거죠.

    ◇ 정관용> 그래서 제가 드디어 이해가 된다는 게 이 책의 제목이 이해가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게 뭘 말하는 건지 이해가 된다는 거예요. 아무말 자체를 하지 말아라 이 말이죠?

    ◆ 김영민> 중요한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 중의 하나입니다.

    ◇ 정관용> 그 말이죠?

    ◆ 김영민> 그 말이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 정관용> 그냥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정확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말 대잔치 떠들지마라.

    ◆ 김영민> 그런 정교함에 대한 열망? 이런 걸 잃어버리면 쉽게 우리 문화가 제정신 유지하기 어려운, 그렇게 되는 겁니다.

    ◇ 정관용> 그래서 조금 더 정확하게는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고전을 통해 지금 몸담고 있는 삶과 세계라는 텍스트를 공들여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쓰셨잖아요. 다시 한 번 풀어주세요. 고전을 통해. 고전을 통해서 뭘 한다고요?

    ◆ 김영민> 고전을 통해서 무슨 만병통치약을 얻는 게 아니라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건데 텍스트라는 것은 사실은 꼭 책만이 아니라 우리 삶, 우리 세계의 해석 대상이 되는 모든 게 사실은 텍스트니까 삶을 일종의 해석대상으로 보고 해석을 잘하는 데 도움이 되죠. 그런데 우리는 사실 삶을 해석을 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엔지니어링의 대상, 조작의 대상, 사람을 이렇게 하면 표를 이렇게 주겠지라는 사실 조작의 대상으로 보기 쉬운데 그 이상으로 사실 삶은 조작대상이라기보다 해석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에 텍스트 해석을 잘 할 줄 아는 거는 삶과 직결된 문제죠.

    ◇ 정관용> 그러니까 논어의 번역본이 제각각인 것을 내가 한번 내 주장으로 나의 번역을 보여드리겠다, 앞으로. 또 그동안의 번역을 내가 못마땅해 하는지 설명해 드리겠다 이 말이 텍스트 읽는 법에 대한 나의 어떤 교본이다 이런 건가요?

    ◆ 김영민> 그런 게 한 절반쯤 되고요. 그리고 또 다른 절반은 논어를 통해서 실제로 소개할 수 있는 역사, 사상, 문화 이런 것들도 상당히 많이 있고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이어가기 전에 그냥 문법적으로나 간단한 팩트 차원에서도 조정하고 대안을 제시해 볼 만한 게 여지가 꽤 많다고 생각하는 거죠.

    ◇ 정관용> 추석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처럼 논어란 무엇인가라고 던지면 뭐라고 답하실래요.

    ◆ 김영민> 논어란 무엇인가. 우리를 텍스트를 잘 읽을 줄 알게 안내하는 도구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 정관용> 그만큼 도전해 볼 만한 가치 있는 고전인 건 확실하죠?

    ◆ 김영민> 보편적인 진리를 갖고 있어서 대단하다기 보다는 그 텍스트 자체가 우리가 텍스트를 읽을 법을 훈련하기에 굉장히 적절한 텍스트이다.

    ◇ 정관용> 다른 고전에 비해서.

    ◆ 김영민> 그렇습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텍스트 읽는 법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고전, 논어. 앞으로 작업을 기대하면서요. 안내서도 재미있게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김영민> 감사합니다.

    ◇ 정관용>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 김영민> 고맙습니다.

    ◇ 정관용> 네, 서울대학교 김영민 교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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