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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전범 마주한 정혜윤은 '나' '우리'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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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인 전범 마주한 정혜윤은 '나' '우리'를 봤다

    [인터뷰] 다큐 '조선인 전범-75년 동안의 고독' 정혜윤 PD
    "조선인 전범들, '정의' 명분 필요했던 '역사의 빈틈' 메워"
    "그땐 확신에 가득차 했던 일 지금 되짚으니…양심의 착각"
    "전범 판결보다 중요한 건 지금 그들 이야기에 귀기울이기"

    CBS 정혜윤(오른쪽) PD가 조선인 전범 이학래(가운데) 씨를 인터뷰하고 있다. 이 씨가 보고 있는 것은 23명 조선인 전범 사형수 명단이다. 그는 이것을 윗도리 주머니에 항상 넣고 다닌다. (사진=CBS 제공)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너무 늦게 왔다'였죠. 이제 1명 빼고는 모두 고인이었으니까요."

    지난 1945년, 일제가 벌인 태평양전쟁으로 빚어진 조선인 전범들을 다룬 CBS라디오 특집 다큐멘터리 '조선인 전범-75년 동안의 고독'. 이 프로그램을 연출한 CBS 정혜윤 PD는 "관련 유족들을 많이 접촉했는데, 아버지 일을 잘 아는 유족이 드물었기 때문에 방송에는 거의 못 썼다"고 했다.

    "그들 대다수는 자신이 전범이라는 사실을 가족에게 숨겼어요. 전범인 동시에 비밀스런 삶을 산 셈이죠. 그들이 그냥 손가락질 당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일제로부터 봉급을 받으면서 군속으로서 포로감시원 일을 했고, 멍에와 함께 실제 가해를 저질렀으니까요."

    정 PD가 조선인 전범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소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리처드 플래너건·문학동네)의 영향이 컸다. 2014년 맨부커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태국-미얀마 사이 철도건설 현장에서 살아남은 전쟁 포로들을 그렸다.

    정 PD는 "책 속에서 조선인 군속, 포로감시원이 전쟁 포로들을 기계적으로, 영혼 없이 학대하는 장면이 나온다"며 말을 이었다.

    "그 조선인 포로감시원은 전범으로 사형을 당합니다. 그 장면이 정말 숨쉬기 힘들 만큼 비통해요. 책을 읽은 직후 조선인 전범의 실제 모델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리고 정말 우연한 기회에 그 인물을 만났어요. 당시 일본에 취재를 갔는데, 일본인들이 그 사람과 연대하고 있었거든요."

    그가 바로 마지막 남은 조선인 전범 이학래 씨다. 정 PD는 "열일곱 살에 일본군에 들어갔다가 이제는 95세가 된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몹시 궁금했다"고 말했다.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증언을 했던 1991년, 일본에서는 조선인 전범 7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가보상 청구재판을 시작합니다. 같은 해에 일본 국영방송 NHK에서 '조문상의 유서'라는, 26세에 싱가포르 창이형무소에서 전범 재판을 받고 사형 당한 조선인 조문상을 다룬 방송을 내보내면서 큰 반향을 일으키죠."

    그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 증언, '조문상의 유서' 방송 등의 힘을 바탕으로 그해 11월 재판이 시작됐다"며 "이 재판을 위해 7명의 원고는 자신들이 겪은 일을 굉장히 상세하게 변호사들에게 진술했다"고 전했다.

    "과거 전범 재판 당시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식민지의 긍정이었어요. 인도차이나는 프랑스가, 미얀마는 영국이 대표한다는 식으로 한국은 일본이 대표한 거죠. 일본은 패전국이었으니 당시 조선인 전범들 처지는 국제 미아 같았어요. '정의'라는 명분이 필요했던 시절에 역사의 빈틈을 메우는 역할을 한 거죠."

    ◇ "단지 불운했던 시절 사람들 이야기 아냐…여전히 살아 숨쉬는 물음"

    26세에 싱가포르 창이형무소에서 전범 재판을 받고 사형 당한 포로감시원 조문상(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조선인 전범 조문상이 남긴 유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물여섯 살을 사는 동안, 짧다면 짧은 생을 돌아보면 기막힐 만큼 깜짝 놀랄 일이 있다. 돌아보니 나의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남 흉내내기였다. 나의 친구야, 아우야. 너의 지혜를 끌어모아 너의 생각을 갖고 살아라. 나는 나의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기막히다.'

    정 PD는 "조문상의 유서 내용과 1991년 조선인 전범들이 제기한 재판의 핵심은 결국 '나의 무지에 분노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며 "이는 다큐멘터리 '조선인 전범-75년 동안의 고독'의 핵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들을 두고 이야기할 때는 항상 '가해자냐' '피해자냐'라는 공방이 벌어지는데, 결국 '그래봤자 너는 가해자'라는 식으로 흐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다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그들의 진술이에요. '양심의 착각'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당시에는 확신에 차서 했던 일들이 나중에 돌아보니 그렇지 않더라는 이야기죠."

    그는 "단적인 예로 최근 진범이 자백을 한 화성 8차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법에 의해 폐기 처분된 희생자들이 있다"며 "판결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여전히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식민지 역사의 증오와 잔인함의 고리 역시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겁니다. 이러한 차원에서도 진실을 알리는 일은 판결 너머 더 중요한 세계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찌 보면 조선인 전범들은 정말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정말로 무가치한 것을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들이 느끼는, '내가 정말로 무가치한 것을 위해 일생을 망쳤구나'라는 깨달음에서 오는 슬픔이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어요."

    정 PD는 "이것을 단지 불운한 시절에 태어났던 사람들 이야기로 여기면 안 된다. 내가 그 시절에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 시절에 던져진 물음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쉰다"고 역설했다.

    "이번 방송에서 '삶의 재료'라는 표현을 3번이나 썼어요. 그들(조선인 전범들)은 '굶주림' '학대' '폭력'이 삶의 재료였죠. 이를 바탕으로 숱하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겁니다. 우리 역시 무언가를 위해 헌신합니다. 우리가 헌신하고 있는 그 대상이 굉장히 무가치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는 "사실 누군가를 낙인 찍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 그냥 '너 전범이잖아'라고 말하면 되니까"라며 "그러나 인간의 삶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가를 염두에 둔다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다른 이야기를 하려 했던 사람들이 보인다"고 강조했다.

    "그들이 던지고 고민했던 물음들이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돌이킬 수 없는 삶과 죽음이 우리 발밑에 있어요. '도대체 무엇을 위해 헌신하고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도 항상 거기에 있죠. 역사 속에서 조선인 전범들이 던졌던 물음에 담긴, 그 보편적인 슬픔이 절실하게 와닿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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