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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한 발 더 가까이…묵묵히 걸은 2.7km '고성 DMZ'



문화재/정책

    [르포]한 발 더 가까이…묵묵히 걸은 2.7km '고성 DMZ'

    통일전망대에서 금강통문까지 향하는 '한걸음'
    허공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하얀 나비 '대조'
    방문객들 "북한과 자유롭게 왕래하는 날 빨리 오길"

    북한 해금강 남쪽으로 뻗은 바다로, 이름을 불린지도 오래돼 현재는 그저 민간인통제선(민통선) 부근 해변으로 불린다. (사진=유선희 기자)

     

    내리쬐는 햇볕에 반짝이는 파도가 잔잔한 포말을 만들어 내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모래사장은 말끔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출발해 금강통문까지 가는 길목을 반겨주는 것은 푸르른 망망대해였다.

    북한 해금강 남쪽으로 뻗은 바다는 이름을 불린지도 오래돼 현재는 그저 민간인통제선(민통선) 부근 해변으로 불릴 뿐이다.

    지난 26일 오전 10시 방문객 18명이 '고성 DMZ(비무장지대) 평화의 길'을 방문했다. (사진=유선희 기자)

     

    지난 26일 오전 10시 '고성 DMZ(비무장지대) 평화의 길' 문이 열리자 방문객 18명은 힘찬 발걸음을 재촉했다. 들어오자마자 마주한 바다를 내려다본 방문객들의 얼굴은 금세 환한 웃음으로 번졌다.

    이날 방문객들이 찾은 '고성 DMZ 평화의 길'은 A코스로, 통일전망대에서부터 금강통문까지 도보로 이동하고 이후 차를 타고 금강산전망대를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해설사 설명에 맞춰 해안로 쪽으로 내려가자 이번에는 인적이 끊겨 교류가 없어진 동해북부선 철길과 통전터널이 눈에 띄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통전터널과 동해북부선 철길. (사진=유선희 기자)

     

    일제강점기 시기 수탈을 위해 만들어진 이 철도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북한 원산에서부터 강원 양양까지 이어진 길마저 완전히 폐쇄됐다. 이후 2000년대 들어 남북 간 합의로 시험 운행까지 이뤄졌지만, 지난 2007년 5월을 마지막으로 시간이 멈췄다.

    해안로를 걷는 길목 양옆으로는 철조망과 철책이 가시 돋친 장미 줄기와 덩굴마냥 처져 있어 비무장지대 일대를 걷고 있음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방문객들이 철책과 철조망 사이를 걷고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특히 해안로를 따라 걷는 오른쪽으로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철책이 이중으로 처져 있는 데다 높이도 5m 정도 돼 풍경을 오롯이 감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방문객들은 철책 너머 모습을 드러낸 진분홍 해당화 꽃에 탄성을 자아내며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해안로를 기준으로 왼쪽으로 이어진 철조망 곳곳에는 '지뢰'를 알리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녹음이 우거진 나무 밑에 지뢰가 있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듯했지만, 이를 알 리 없는 하얀 나비는 그저 허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지뢰 폭발로 파괴된 굴삭기가 현장에 그대로 보존돼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이런 가운데 지뢰 폭발로 파괴된 굴삭기가 그대로 보존된 현장도 눈에 띄었다. 지난 2003년 해안소초 전신주 작업을 하던 중 지뢰를 밟아 폭발한 굴삭기는 '미확인 지뢰지대' 위험을 증명하고 있었다.

    묵묵히 길을 걷던 윤희량(56.대구)씨는 "다섯번 신청 끝에 오게 됐는데 직접 철책선을 따라 걸으니 북한이 참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군대 시절 최전방에서 근무해 철책선을 보기는 했는데도 참 새로운 기분"이라고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에서 친구 4명과 함께 왔다는 유재희(여.53)씨는 "그저 나와는 거리가 먼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와서 보니 고향 같은 느낌이 들어 정말 좋다"며 "북한을 바로 앞에 두고 이렇게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착잡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편안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비무장지대로 진입하기 전 푯말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방문객들. (사진=유선희 기자)

     

    북한 쪽으로 한발 한발 내디디며 50분 정도 걷다 보니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가 관할하는 비무장지대로 진입(접근)하고 있는 중'임을 알리는 푯말이 나왔다. 방문객들은 푯말을 가만히 보거나 기념사진을 찍으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분단의 흔적을 기록했다.

    정해진 길을 따라 2.7km를 이동한 끝에 마지막 지점인 금강통문에 다다랐다. 금강통문은 육로를 이용해 북쪽으로 들어가는 통로다. 육로를 이용해 북한으로 갈 수 있는 문은 우리나라에서 강원 고성군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이 유일하다.

    금강통문 앞 기념비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방문객들로, 왼쪽에 문재인 대통령 필체로 쓰인 "평화로 가는길 이제 시작입니다" 글귀가 보인다. (사진=유선희 기자)

     

    금강통문 옆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26일 방문해 직접 쓴 "평화로 가는길 이제 시작입니다"라는 글귀도 보였다. 지친 기색이 없는 방문객들은 함께 "평화로 가는 길 이제 시작입니다"를 읽어 내려가며 통일을 염원하기도 했다.

    방문객 임은식(47.대구)씨는 "빨리 통일이 돼서 금강산도 가보고 누구나 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며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힘차게 말했다.

    또 김익남(67.서울)씨는 "양쪽에 철책이 있어서 조금 갑갑한 기분이 드는데 다음에 올 땐 (철책과 철조망이) 없어진 상태에서 해변 가까이 걷고 싶다"며 "통일이 돼서 금강산은 물론 백두산까지 가고, 또 만주까지 가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금강산전망대로 향하는 길. (사진=유선희 기자)

     

    일정의 마지막 코스는 금강산전망대였다. 방문객들은 차로 16분 정도 이동해 금강산전망대에 도착했다. 금강산전망대 너머 금강산과 최북단 829 GP(감시초소)가 보였는데 아쉽게도 안개가 많이 끼어 선명한 풍경을 볼 수는 없었다.

    방문객들은 안갯속을 비집고 더 가까이 북한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2시간 15분 정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북한으로 통하는 유일한 문은 결국 '마음의 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바람처럼 가슴 속에 스며들었다.
    방문객들은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금강통문까지 2.7km를 한 걸음씩 내디디며 통일을 염원했다. (사진=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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