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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만 밝히면 뭐하나"…연평도 어민들의 '한숨'



사회 일반

    "등대만 밝히면 뭐하나"…연평도 어민들의 '한숨'

    정부, '연평도 등대' 홍보 급급 vs 어민, 포화상태 항구에 '분통'
    "세울 곳 없어" 50억 짜리 방탄정, 중국어선 대응 어려움 예상
    "평화수역 조성" 등대는 되고, 신항은 안 되고…정부 '이중 잣대'

    연평도 항구에는 20여척을 정박할 수 있는 규모에 60여척의 어선들의 정박하고 있어 포화상태를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서해 5도 평화수역운동본부)

     

    "'평화'… 좋죠. 하지만 언제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배를 댔다 뺐다 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45년만에 등대를 다시 밝힌 지난 17일 연평도. 점등 행사를 지켜본 한 연평도 어민은 평화에 대한 기대감보다 '주차 문제'에 대한 불만이 먼저 나왔다. 정확히는 차가 아닌 선박이니 '정박 문제'에 대한 불만이다.

    어민 김모(65)씨는 "'바지'가 하나밖에 없다. 매일 여객선이 들어오는 시간이면 10여 척의 배들이 바다로 뺐다가 객선이 나가면 다시 대야한다"며 "20척 댈 항구에 60척이 넘게 대고 있어 큰 배들하고 작은 낚시배들이 뒤엉키면 순간순간 위험한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 20척 규모 항구에 60척 넘어…포화 상태

    정부가 반세기 가까이 꺼져있던 등대를 다시 켜며 '한반도의 화약고'라 불리던 서해 북단에 평화의 시대를 밝히고 나섰지만, 정작 연평도 주민들의 체감 온도는 그리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신항 개발이 꾸준히 요구되고 있지만 10년이 다 되도록 계획조차 수립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평도 포격 당시 2천여명의 연평도 주민들은 400명 정원의 여객선이 하루 한 번밖에 운항하지 않아 제때 대피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경험한 바 있다.

    또 지난달 18일에는 연평도로 들어오던 573t급 여객선의 바닥이 펄에 걸려 30여분간 그대로 멈춰 선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신중근 연평도 어촌계장은 "연평도 주변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여객선으로 하는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며 "실질적으로 주민들이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편하게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할 정부가 눈에 보이는 것만 하는 거 같다"고 비판했다.

    ◇ "세울 곳 없어" 50억 짜리 방탄정 운영 어려움 예상

    연평도 신항 건설은 최근 진화하고 있는 중국어선들의 불법조업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20일 중부지방해양경찰청 등에 따르면 인천시 옹진군 연평어장의 봄 어기 꽃게 조업이 시작된 지난달 서해 NLL 인근 해역에서 불법조업을 한 중국어선은 하루 평균 58척으로 파악됐다.

    금어기인 1~2월 하루 평균 10척 정도였던 중국어선은 3월부터 30여척으로 늘더니 본격적인 조업 철인 이달 들어서는 88척까지 증가했다.

    특히 꽃게 어장이 있는 연평도 인근 해상에 중국어선이 몰려 이달에만 매일 50척 가까이 불법 조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단속이 어려운 야간을 틈타 고속엔진을 서너 개까지 장착한 고속 모터보트를 이용한 이른바 '게릴라식' 불법 조업을 하고 있어 해경의 나포 작전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해경은 50억원을 들여 55톤 급 방탄정을 건조해 오는 11월쯤 서해 5도에 배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현재 연평도 항구의 규모로는 이 방탄정의 접안이 불가능하다.

    현재 항구는 수심이 얕을 뿐만 아니라 민간 어선들이 보안 부두에까지 정박하고 있을 정도로 '포화 상태'이기 때문이다.

    박태원 서해5도 평화수역 운동본부 상임대표(전 연평도 어촌계장)는 "좁은 상태에서 방탄정을 배치한다 해도 정박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며 "하루 속히 해경정 부두를 먼저 만들든지, 어선 부두를 먼저 만들든지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평화수역 조성" 등대는 되고, 신항은 안 되고…정부 '이중 잣대'

    해양수산부(사진=연합뉴스)

     

    해양수산부는 2012년 8월 이명박 정부 당시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연평도를 국가관리연안항으로 지정한 이후, 신항 건설을 꾸준히 추진해 오고 있다.

    당시 이명박 정부와 국방부 등은 5000t급 배가 정박할 수 있는 신항 건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3,700억원의 사업비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후 해수부는 2017년 3월과 지난해 7월, 10월 세 번에 걸쳐 신항 건설을 위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신청했지만 기재부는 이를 보류시켰다.

    국방 시설에 해당하는 해군 시설 사업비가 전체 사업비의 30%에 불과하고, 해경부두도 아직 평화수역으로 지정되지 않아 '국방관련사업 및 남북교류사업'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예타조사 운용지침에서는 '국방관련사업 및 남북교류사업'을 예타 면제 요건 중 하나로 두고 있다.

    결국 정부는 9.19군사합의를 근거로 한 '평화수역 지정 합의'라는 하나의 사실을 놓고, 정치적 이벤트인 등대는 켜면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신항 건설은 외면하고 있는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조현근 서해 5도 평화수역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해양 주권 확립과 연평도의 안보를 위해 가장 필수적인 신항 건설은 외면하면서 '평화의 등대'를 점등한다는 건 그저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며 "정권이 바뀌고, 남북관계가 달라진다 하더라도, 우리 영해를 침범하는 중국어선에 맞서 해양 주권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신항 건설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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