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열린 '4.27 판문점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남북 정상이 처음 조우한 군사분계선에서 미국의 첼로 거장 린 하렐이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1번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남북이 지난해 9.19 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를 완료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가운데 남측 지역이 다음달 1일부터 일반에 공개됨에 따라 남북 대립과 평화의 상징인 JSA에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남북 정상이 1년전 이곳에서 회담을 하며 소나무를 심고 도보다리를 산책하던 모습은 아직도 국민들의 기억에 뚜렷해 일반인들의 관광과 견학이 줄을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남북관계 발전과 군사합의 이행도 지지부진한 가운데 남북 군사당국이 일사천리로 진행해 비무장화를 이뤄낸 JSA가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판문점 남측지역 견학 재개를 계기로 북측지역까지 견학이 확대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해 실제 JSA 남측 개방이 남북 경비병들의 공동근무와 자유왕래로 이어질 지 주목된다.
◇ 긴장 팽팽하던 JSA, 작년 남북정상회담 계기 평화의 상징으로 탈바꿈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는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래 일촉즉발의 긴장이 사라지지 않았던 곳이다.
서울에서 60㎞, 개성에서 10㎞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이곳은 8·15광복 이전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에 속한 마을이었는데 널문리라고도 불리다가 6.25 당시 한 가게 이름에서 유래돼 판문점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1951년 휴전협정 논의가 시작되면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800m,남북으로 600m 규모로 정해진 유엔사와 북한의 공동경비구역(JSA)이 만들어졌다.
원래 JSA에는 정전협정의 정신에 따라 군사분계선(MDL) 표지물도 없었고 자유롭게 양측을 넘나들 수 있었지만 1976년 북한이 저지른 도끼만행사건 이후 군사분계선을 표시하는 콘크리트 턱이 설치되고 남북 초소도 각각 분리됐다. 남북 군인간 대화도 금지됐다.
이후 남북 경비병들이 비무장 원칙을 무시하고 기존 권총은 물론 소총과 경기관총 등으로 무장하고 근무를 하면서 늘 팽팽한 긴장이 이어졌다.
가장 최근인 2017년 11월에는 북한군 오청성이 JSA 탈북을 감행하면서 북한군 추격조가 남측을 향해 동시다발로 소총 사격해 오청성이 쓰러지자 우리 경비병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낮은포복으로 접근해 구조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JSA 비무장화와 공동근무, 자유왕래는 4.27 판문점 선언 이후 북측 제안으로 논의가 시작돼 작년 11월 비무장화가 완료됐다.
◇ 비무장화 완료불구 북측 'UN사 배제' 주장으로 최종 합의 난항
국방부. (사진=황진환 기자)
그러나 북한이 이후 JSA 공동관리기구에서 UN은 빠지라고 주장하면서 최종 목표인 자유왕래와 공동근무는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한미로서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어서 당분한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29일 정례 브리핑에서 서면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진전돼 70년 적대관계가 급속히 완화되거나 북한이 입장을 굽히지 않는 한 현재의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군사합의 이후 남북이 빠르게 비무장화를 진행해 GP시범철수와 함께 DMZ 평화지대화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에는 못 미치고 있는 것이다.
남북유엔사 3자간 협의 촉진을 위해 판문점 남측지역을 개방하기로 한 정부의 조치와 맥이 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