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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드라마의 막장은 왜 먹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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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장드라마의 막장은 왜 먹힐까

    [끝나지 않는 막장 논란 ①]
    막장 코드는 인간 욕망과 잔혹한 현실의 원형
    '막장' 아닌 '드라마'로 정의되려면 '개연성' 있어야
    드라마보다 막장인 현실에서 대리경험 통한 카타르시스 제공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드라마는 이제 하나의 '장르'처럼 여겨진다. 막장 같은 현실에 놓인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한다는 막장드라마. 그러나 드라마 없이 그저 '막장'이 된다면 남는 건 비난뿐일 것이다. 막장드라마를 둘러싼 논란과 과제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SBS '아내의 유혹' (사진=화면캡처)

     

    '막장'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 나온 막장은 갱도의 막다른 곳 혹은 '끝장'의 비표준어로 '인생을 갈 데까지 간 사람' 또는 그러한 행위를 꾸며 주는 말을 뜻한다. 최근 SBS '황후의 품격', KBS '하나뿐인 내편', '왜그래 풍상씨'가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종영했다. 그러나 막장 논란에 휩싸이며 빛바랜 영광이 됐다. 특히 '황후의 품격'을 두고는 막장드라마가 갈 데까지 갔다고들 말한다. 말 그대로 막장드라마의 막장인 셈이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말도 진부할 정도로 막장드라마를 둘러싼 논란은 해묵은 과제와 같다. 그렇다면 왜 막장드라마는 여전히 유효한 걸까.

    ◇막장드라마란 무엇인가

    먼저 막장드라마에 대해 정의할 필요가 있다. 흔히 막장드라마라고 하면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를 떠올린다. 자극적이고 비상식적인 요소들이 빼곡히 차 있기 때문이다.

    내 남편은 바람을 피우다 걸렸지만 내 앞에서 매우 당당하다(MBC '밥줘'). 백수로 살며 아내인 나를 고생시키기만 한 남편은 돈 많은 여자와 바람이 났다(KBS '왕가네 식구들'). 남편에게 김치로 따귀를 날리고(MBC '모두 다 김치'), 심지어 스파게티로도 뺨을 때려봤지만(MBC '이브의 사랑'), 울분을 삭일 수 없다. 나를 철저하게 모욕한 남편과 내연녀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했다. 내 모든 것을 바꾸기로 하고 얼굴에 점까지 찍으며 마음을 다잡았다(SBS '아내의 유혹'). 그런데 남편의 내연녀가 내 이복동생이었다(SBS '위대한 조강지처'). 운명의 장난일까. 내연녀이자 이복동생인 그녀가 암에 걸렸단다. 그녀는 암세포도 생명이니 함께 살아보겠다고 말한다(MBC '오로라 공주'). 여기에 요즘 자꾸 할머니 귀신이 나타나 그녀를 용서하라고 말한다(SBS '신기생뎐'). 그래, '그래도 내 동생이니까' 그녀를 용서하기로 했다.

    흔히 '막장드라마'라 불리는 작품들을 보면 위와 같이 불륜, 배신, 복수, 기억상실, 출생의 비밀, 고부갈등, 불치병, 누명, 권선징악 등의 클리셰가 등장한다. 물론 극단적인 재구성이긴 하지만 무리한 상황설정과 자극적인 장면 묘사는 막장드라마의 상징과도 같다.

    그러나 막장드라마는 단순히 '막장'의 요소를 가졌다고 막장드라마라 부를 수 없다. 고대 그리스 비극을 보면 근친상간, 근친살해 등 입에 담기 어려운 자극적이고 비극적 요소가 등장한다. 그럼에도 고대 그리스 비극은 지금까지도 문학과 영화를 비롯한 예술작품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삶이라는 잔혹한 현실과 인간의 욕망, 고통의 극대화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개되는 내용이 설득력과 전후 맥락의 타당함을 갖고 있다. 극단적인 설정만으로 막장을 정의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드라마평론가이기도 한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개연성'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소재는 어떤 것이든 다 가져올 수 있다. 문제는 전개 방법과 관련된 부분"이라며 "극적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감정적 반응을 끌어내려는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를 '막장드라마'라고 봐야 한다. 최소한의 극적 타당성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막무가내로 풀어낼 때 막장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전후 맥락 없이,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를 줄여 이르는 말)'라는 신조어가 뜻하듯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 전개가 갑자기 나타나거나, 단순히 이런 클리셰만 모이면 정말 '막장'이 된다는 것이다.

    ◇ 막장 논란의 역사, 결국은 '개연성' 문제

    MBC '앵그리 맘' (사진=화면캡처)

     

    막장 '코드'를 사용하는 것 자체는 문제로 보기 힘들다. 총기 자살, 혼외 자녀, 청부살인 등 막장코드는 호평 속에 종영한 JTBC 'SKY 캐슬'에도 들어 있다. 그런데도 'SKY 캐슬'은 막장드라마라기보다 '명품 드라마', '사회비판 드라마'라는 수식을 받고 있다.

    KBS '학교 2013'과 MBC '앵그리맘'은 모두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앵그리맘'은 학교 부실 공사로 인해 학생들이 희생되는 장면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며 호평을 받았다. '학교 2013'은 학교폭력 근절 유공자 장관 표창, YWCA연합회 좋은 TV 프로그램상 등을 받았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적나라한 학교 폭력 묘사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 제재를 받았다.

    위와 같은 심의 사례는 전후 '맥락'을 무시한 채 막장적인 코드가 등장한 것만을 문제 삼아 벌어진 일이다.

    중요한 것은 막장 코드를 사용해도 어떻게 사용했느냐, 이야기의 개연성과 설득력을 가졌느냐다. 그것이 막장드라마와 명품 드라마를 가르는 기준이다. 그런데 '막장코드'의 사용에 대해서도 그 판단을 놓고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 막장의 카타르시스

    MBC '모두 다 김치' (사진=화면캡처)

     

    드라마를 놓고 막장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부터, 욕하면서도 보는 드라마가 계속 제작되는 걸 욕하는 현실은 아직도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막장드라마를 보는 걸까.

    드라마는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 장르이자 대중적인 인기 속에 일반적으로 소비되는 문화상품(유세경·김명소·이윤진, 2004)이자 문학과 비슷하게 대리경험, 정서적 만족 등을 제공한다. 여기에 막장드라마는 빠르고 강렬한 전개를 통해 높은 감정적 몰입을 제공한다. 심각한 고민이나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볼 수 있는 장르가 아니라 가볍게 오락적으로 즐길 수 있다.

    황진미 문화평론가는 "(막장드라마는) 마치 스포츠를 보는 것과 같다"며 "어떤 식으로 전개할 것이며,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지 짐작하는 상황에서 작품의 완성도나 참신성을 기대하지 않고 그냥 그 자체를 즐기기 편하다"고 설명했다.

    '막장드라마의 이용과 충족에 관한 연구'(서신혜, 2010)를 보면 막장드라마의 주요 시청동기로 △드라마 내용이 어렵지 않아 쉽게 빠져들 수 있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는 동안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는 동안 다른 일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시간 때우는데 좋기 때문에 △주인공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보며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어서 △자극적인 내용 전개가 흥미진진해서 등을 들고 있다.

    막장드라마를 찾는 또 다른 이유는 '카타르시스'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지금은 종영된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은 옴니버스 드라마로서 이혼소송 중인 부부의 실화를 다룬 작품인데 방송 관계자들은 '사랑과 전쟁'에 들어오는 사연이 너무 '막장'이라 순화시켜 드라마로 만든다고 말한 바 있다.

    '막장드라마의 이용과 충족에 관한 연구'(서신혜, 2010) (사진=논문 캡처)

     

    이처럼 막장보다 더 막장 같은 현실의 답답함은 쉽게 풀리지 않지만 드라마는 다르다.

    언론학자 데니스 맥퀘일은 미디어가 가진 엔터테인먼트 기능에 대해 "숨 막히는 속박이나 일상적 삶의 지루함으로부터 관람자를 정신적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대리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막장 사회 속에서 시청자들은 막장드라마를 통해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주인공들의 악인에 대한 '단죄'와 '권선징악'의 결론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일종의 '통쾌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황진미 평론가는 "가부장제의 모순, 사회 갈등 등이 극대화되고 갈등의 본질이 명확히 보이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어떤 단죄가 이뤄질 경우 시청자들은 속 시원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며 "현실의 모순을 훨씬 더 극대화해 보여주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막장드라마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건 우리가 막장드라마 주요 소비층이라 알고 있는 중장년층 여성뿐만이 아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실시하는 프로그램 몰입도(PEI) 조사 결과(2014년 9월)에서 MBC '왔다! 장보리'는 138.4를 기록하며 당시 MBC 'MLB 류현진 선발경기 LA다저스 대 샌디에이고' 생중계(131.1)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여자(140.6)는 물론 남자(135.3) 시청자까지 몰입도가 높게 조사됐다.

    최근 불거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사건을 봐도, 언론과 정치·경제·권력 등이 얽히고설켜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고(故) 장자연 사건'을 봐도 현실은 생각보다 더 추악하다. 그러나 김 전 차관, 장자연 사건과 관련한 인물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을지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쩌면 이처럼 막장 같은 현실이 막장드라마를 여전히 유효하게 만드는 원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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