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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수형인, '빨갱이' 오명 자리엔 '순백'의 나리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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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4.3수형인, '빨갱이' 오명 자리엔 '순백'의 나리꽃이

    법원, 70년 전 군사재판 불법성 인정...사실상 무죄 선고
    수형 피해자 18명 오랜 한 풀어..."죄 벗어 눈물이 난다"

    17일 법원 선고 직후 4.3수형 피해자 자녀들이 '결백'을 상징하는 나리꽃을 부모에게 달아주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제 죄 없는 사람입니다. 결백을 상징하는 나리꽃을 달아드리겠습니다."

    17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고령으로 휠체어와 지팡이에 의지했지만 당당하게 선 할머니‧할아버지들의 가슴엔 순결함을 상징하는 나리꽃이 순백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4.3 당시 '빨갱이'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4.3 수형인 18명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법원이 '공소 기각', 사실상 무죄를 선고한 뒤였다.

    재판부는 이날 70년 전 군사재판이 기본적인 예심조사도 거치지 않고, 피고인을 위한 변호도 없는 등 불법적으로 이뤄졌다고 보고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

    사법부가 과거 재판의 불법성을 처음으로 인정하자 레드콤플렉스로 오랜 세월 숨죽이고 살았던 수형인들의 한이 비로소 풀릴 수 있었다.

    1948년 12월 내란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전주형무소와 안동형무소에서 수감 생활한 오계춘(93) 할머니는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죄를 벗게 돼 눈물이 난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4.3 직후 실종된 남편을 찾으러 8개월 된 아이를 등에 업고 집을 나섰다가 경찰에 강제 연행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오 할머니였다.

    전주형무소로 이송되는 중에 갓난아기가 죽었어도 어느 누구에게 하소연하지 못했었다. 오 할머니는 "(오늘 판결로) 드디어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중산간 지역에 살았다는 이유로 전주형무소에서 징역 1년형을 살았던 김평국(88) 할머니도 "후손들이 볼 때 내가 옥살이를 했다는 흔적이 사라지게 돼 가장 후련하고 기쁘다"고 말했다.

    수형 생활 사실을 오랫동안 숨겨오며 혼자서 속앓이 했던 부모가 무죄 선고를 받자 자식들도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김평국 할머니의 딸 심경신씨는 "어머니께서 아픔을 오랫동안 얘기도 못 하시고, 혼자 속으로 삭히기만 하셨는데, 오늘 누명을 벗게 돼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4.3수형인 실태조사와 함께 재심 청구 재판을 이끌어온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는 이번 판결을 "왜곡된 4.3 역사를 바로잡아준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애당초 죄가 없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오늘은 정의가 실현된 날"이라며 "이번 판결로 국회에 1년 넘게 계류된 4.3특별법 개정안도 조속히 통과되고, 추가 진상조사도 이뤄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4.3도민연대는 이번에 사실상 무죄 선고를 받은 18명의 4.3수형인에 대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한다. 나머지 생존 수형인 12명에 대한 2차 재심 청구도 함께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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