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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수리온…상처·고민 내려놓고 남해서 '훨훨'



국방/외교

    '파란만장' 수리온…상처·고민 내려놓고 남해서 '훨훨'

    [수리온 탑승기]강한 바람에 기체 떨렸지만 수면과 산등성이 스치듯 자유자재 비행
    마린온 추락사고로 중단됐던 필리핀 수출협상 재개

    국내 최초로 개발된 다목적 기동헬기인 수리온 (한국항공우주산업 제공)

     

    지난 22일 오전 경남 사천에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근 공군 비행기지에서 전투기 조종사들의 기본훈련기인 KT-1의 이착륙 훈련이 계속되는 가운데 약간의 불안한 마음을 안고 수리온에 올랐다.

    부드럽게 지상을 이륙한 헬기는 잠시 고민하듯 호버링(정지비행)을 하더니 이내 남해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헬기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에머럴드색 바다와 섬, 멀리 보이는 삼천포대교와 마을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졌다.

    비행 상황과 주변의 지형지물을 설명하는 조종사의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폰으로 계속 흘러나왔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는 사전 안내가 있었지만 탑승자들 모두 조용했다. 헬기는 200m의 고도를 유지한 채 시속 200km 정도의 속도로 바다 위를 날았다.

    바람이 강해 기체가 떨렸다. 조종사는 바람이 강해 여건이 좋지 않지만 전술기동을 해보겠다며 농담처럼 취재진에게 어느 정도의 강도로 할지를 물었다.

    모두 조용한 가운데 일순 헬기가 뚝 떨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하강했다. 이어 헬기는 섬 산등성이를 따라 저공비행했다.

    능선을 따라 낮게 날아가다가 봉우리가 나타나면 머리를 쳐들기를 반복했다. 조종사는 "바람이 강하지 않았으면 더 다양한 기동을 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차분하고 느긋한 그의 말투에서 수리온에 대한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수리온 시제기 창밖으로 보이는 삼천포 일대 (권혁주 기자)

     

    수리온 시제기는 30여분의 짧은 비행을 마치고 안전하게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탑승을 마치고 나서야 이 헬기가 해병대 상륙작전용 기동헬기인 마린온 3호기 시제기라는 것을 알았다.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 될 추락사고, 아직도 최종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사고가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

    ▽국내최초 개발이라는 영광만큼 말 많고 상처 깊은 헬기 '수리온'

    지난해 5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기 전까지 서울 용산의 육군회관 로비에는 대형 수리온 사진이 걸려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리온을 배경으로 조종사들과 함께 환하게 웃는 사진으로 수리온의 영광을 상징했다.

    수리온은 한국형 헬기사업(KHP)에 따라 개발된 첫 한국형 기동헬기(KUH)의 통상 명칭으로 2006년 6월 개발이 시작돼 1조3천억원의 개발비가 투자됐다.

    육군이 30년 이상 운용하고 있는 UH-1H와 500MD 기본형을 대체할 목적으로 한국형 고유 모델의 헬기를 개발된 것이 수리온이다.

    수리온은 '독수리'의 '수리'와 우리말로 '일백(100)'을 뜻하는 '온'을 조합한 조어(造語)로 독수리의 용맹함과 기동성 그리고 국산화 100%와 완벽성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속 260㎞의 최대 순항속도로 9명의 중무장 병력을 태우고 2시간 이상 비행할 수 있으며 위성항법장치(GPS)와 관성항법장치(INS), 레이더 경보수신기(RWR) 등의 전자장비, 적의 미사일을 속이기 위한 장치를 갖추고 있다.

    이 헬기는 그러나 지난해 감사원 감사결과 발표로 '비새는 헬기','안전불감증 헬기'라는 등의 논란을 빚었고 올해는 해병대 상륙형 기동헬기인 '마린온'의 추락사고로 군과 국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감사원이 지적한 핵심 문제인 체계결빙 즉 기체에 얼음이 얼어 엔진 등에 이상을 일으키는 문제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3월까지 미국에서 진행된 시험을 통과해 해소됐지만 부품제작업체의 어이없는 실수가 원인으로 밝혀진 '마린온' 추락사고의 여파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 사고로 항공단 창설이 숙원사업이었던 해병대가 아직도 마린온 운항을 재개하지 못하고 있으며 새로운 헬기도 도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장병 5명의 목숨을 앗아간 마린온 사고는 엔진에서 동력을 받아 헬기 메인로터(프로펠러)를 돌게 하는 중심축인 '로터 마스트' 부품 결함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부품제작업체인 프랑스의 오베르듀발사가 열처리 공정을 공랭으로 해야 하지만 수랭식으로 하면서 균열이 발생해 로터 마스터가 끊어지는 원인이 됐다.

    ▽마리온 추락사고 최종 조사결과 나와야 운항재개…필리핀과 수출협상 재개돼

    경남 사천에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항공기 조립동 내부 전경. 6천5백여평의 공장 안에서 이라크 등에 수출될 고등훈련기 조립이 이뤄지고 있다. KAI는 미국 고등훈련기 도입사업 진출에 실패했지만 올해 수주 물량이 지난해 보다 1조원 늘어나는 등 향후 6,7년치 사업물량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한국항공우주산업 제공)

     

    사고의 원인이 된 로터 마스트와 같은 제조공정을 거친 다른 로터 마스트 3개에서도 같은 균열이 식별됐고 제조업체도 이를 오류를 인정해 사고원인이 비교적 명확히 파악된 사안이다.

    그럼에도 마린온 운항재개와 도입이 늦춰지고 있는 것은 중대한 인명사고가 발생한 만큼 최대한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병대 관계자는 "최종 조사결과가 올해 안에 나올지는 불투명하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마린온 운항재개와 신규도입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수리온 수출 전망도 다시 밝아지고 있다. 추락사고 여파로 중단됐던 필리핀과의 수출협상이 다시 재개됐다.

    김조원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장은 "사고로 우리 협상이 중단된 사이 다른 외국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어 어려움을 겪었지만 정부의 노력 등으로 다시 협상이 시작돼 50% 정도 복원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수리온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국내 최초개발 다목적 기동헬기로서 군 전력과 수출에 기여하는 헬기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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