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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봄’...청춘들이 절망에 질식한 봄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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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

    ‘1991, 봄’...청춘들이 절망에 질식한 봄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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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새 11명이 분신.. ‘절망에 청춘들이 질식했다’
    91학번 감독이 기억하는 91년 봄의 사람들
    “강기훈 사건, 블랙코미디로 쓰려 했는데 다큐 된 이유는..”
    “암 투병 중인 강기훈, 지금 세상보다는 건강하다”
    헛된 죽음을 기억하는 한국판 레미제라블, 영화 <1991, 봄>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15~19:55)
    ■ 방송일 : 2018년 11월 7일 (수)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권경원 (영화감독)



    ◇ 정관용> 얼마 전에 1991 봄 이런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1991년 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여러분들, 모르시죠? 4월 말부터 불과 한 달 사이에 모두 11명의 젊은이들이 분신으로 스스로 목숨을 버린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도 터졌던 그때가 바로 1991년 봄인데요. 그 봄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권경원 감독을 오늘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 권경원> 반갑습니다.

    ◇ 정관용> 이때를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왜 하시게 됐습니까?

    ◆ 권경원> 여러모로 당연히 제가 기억하는 가장 아픈 기억들이고요. 쭉 인터뷰를 해 봤는데 제 상처가 있는 시절이더라고요. 그래서 제작을 하게 됐고요.

    ◇ 정관용> 본인의 상처?

    ◆ 권경원> 그렇죠? 이렇게 생각하시면 쉬울 것 같은데요. 1987이라는 영화를 많이 보셨을 거 아니에요. 거기 보면 연희가 정말 대단한 규모의 대중들을 보고 뭔가 희망들을 갖잖아요. 그런데 그걸 만약에 이제 지금 쉽게 말씀을 드리자면 이걸 만약에 우리 재작년에 있었던 촛불시위를 데리고 온다고 했을 때 그다음에 연희가 그 큰 대단한 사람들을 보고 난 다음에 최순실이 대통령이 된 경우죠. 그러니까 그리고 또 그 최순실이 계속 대통령이 돼서 되게 무능해서 인기가 없다가. . .

    ◇ 정관용> 3당 합당을 했죠.

    ◆ 권경원> 민주당을 새누리당과 합해 버린 상황. 그 상황들이 사실 이어진 91년이죠.

    ◇ 정관용> 87년 민주화를 했으나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고 90년 말에 3당 합당을 해서 91년 아주 심각한 공안 정국이 펼쳐지던 그 시기죠.

    ◆ 권경원> 맞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권 감독이 91년 학번이라면서요.

    ◆ 권경원> 91년에 대학 신입생이었죠.

    ◇ 정관용> 그때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한 달이 기억납니까?

    ◆ 권경원> 저는 4월 9일, 5월 9일, 5월 14일,5월 18일 이런 식으로 되게 커다란 집회들의 이름들이 기억이 나요. 그때마다 사실은 모든 집회에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대부분의 집회들에 아마 갔던 기억들이 있고요. 무엇보다도 4월 26일 그날의 충격들이 좀 있죠.

    ◇ 정관용> 강경대 맞죠?

    ◆ 권경원> 그때 사실은 저는 MT 답사를 가다가 택시에서 그냥 끄잡아내려져서 전경들한테 린치를 당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러고 나서 저녁에 집에 와서 뉴스를 봤는데 사실 저랑 좀 생긴 게 비슷합니다, 전경들 사건. 저도 넙데데하고 그런데 그 살짝 웃고 있던 강경대의 사진을 사실 지금도 잊지 못하겠어요.

    ◇ 정관용> 조금 소개해 주세요. 강경대 열사는?

    ◆ 권경원> 당시에 이제 1학년이었고요, 저와 같은. 또 명지대에서 등록금 시위로 촉발이 된 것이기는 한데 그때 이제 여러 가지 물리적인 충돌이 많았죠. 보통. . .

    ◇ 정관용> 경찰하고.

    ◆ 권경원> 그때 명지대 교문 앞에서 전경들에게서 포위를 당한 다음에 쇠파이프로 맞아서 그만 사망한. 당일 사망이었죠.

    ◇ 정관용> 그리고 그 후에 계속 분신이 이어지는 그런 일들이 쭉 있었죠.

    ◆ 권경원>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러다가 5월 8일날 분신이 김기설 씨였고 바로 그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신 썼다고 몰린 사람이 강기훈 씨였고.

    ◆ 권경원> 맞습니다.

    ◇ 정관용> 그럼 이 영화는 바로 그 91년 봄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쭉 담은 영화입니까, 어떤 영화입니까?

    ◆ 권경원> 맞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이야기들을 하는 것은 영화 초반 길어야 한 20분 정도.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반추하는 시간은 그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그때 이제 분신을 하거나 혹은 또 당연히 강기훈 선배 이후의 삶을 포함한 얘기들이 진행이 돼요.

    ◇ 정관용> 강기훈 씨가 직접 영화에 등장하죠.

    ◆ 권경원> 그렇죠. 그리고 그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실은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 정관용> 강기훈 씨한테 처음 당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를 만들겠습니다 하니까 흔쾌히 동의하던가요?

    ◆ 권경원> 사실은 강기훈 선배는 자기가 영화에 나올 거라고 생각을 못하셨죠. 왜냐하면 제가 극영화 전공이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쓰겠다. 되게 웃기는 일 아니냐. 제가 평소에 웃기지 못해서 영화로라도 한번 웃겨보고 싶어서 사실 이걸 블랙코미디로 만들고 싶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던 거예요, 원래.

    ◇ 정관용> 그런데요?

    ◆ 권경원> 그런데 이제 강기훈 선배가 암에 걸리시고 또 재심을 시작했는데 그 상황들이 박근혜 정권하에서 이게 판결이 제대로 갈까 이런 사실은 좀 다급함들이 있었죠. 그때 다큐멘터리 제작지원을 이제 강기훈 선배가 아닌 다른 시민모임에서.

    ◇ 정관용> 강기훈 씨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에서?

    ◆ 권경원> 그렇죠. 해 주셨고 며칠 고민을 하고 강기훈 선배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고 싶기는 하다. 그래서 시작을 했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그거는 동의하셨어요?

    ◆ 권경원> 사실은 좀 당황스러우셨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강기훈 선배님은 이건 당신의 영화다 그리고 되게 이렇게 거리를 지켜주셨어요. 다만 나를 괴롭히지는 말아달라. 하지만 이제 기타연주회를 했던 장면들을 찍어놨었기 때문에 그걸로 사실은 이야기들을 진행하고 있죠.

    ◇ 정관용> 강기훈 씨가 기타를 잘 칩니까?

    ◆ 권경원> 클래식기타리스트인 친구 말에 의하면 아마추어임에도 불구하고 연주의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상당한 실력이다. 그리고 암환자라고 믿겨지지 않는다. 사실 많이 더듬으시거든요.

    ◇ 정관용> 그런데 이 영화에는 강기훈 씨가 연주한 기타곡 8곡이 흐르면서 8개의 챕터로 쭉 구성이 된다면서요.

    ◆ 권경원> 맞습니다. 사실은 강기훈 선배님한테 만약에 앨범을 낸다면 이렇게 내지 않으셨을까 이런 생각으로 사실은 꾸민 게 맞습니다, 제가.

    ◇ 정관용> 2015년 대법원에서 이제 무죄 확정 판결 받았죠, 재심해서. 그 후에 누가 사과하거나 배상받거나 이런 거 있었나요?

    ◆ 권경원> 사과는커녕 이렇게 오히려 나는 아직도 강기훈이 범인이라고 믿는다. 이런 2차 가해, 3차 가해 이런 것들을 특히 방송에서 듣게 되시죠. 물론 재심기간은 11년 과정만 해도 11년 정도가 걸리고요. 그리고 아주 힘겨운 기간이 맞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또 재심 무죄를 받은 이후에는 배상심도 진행이 됐죠. 이 배상심도 사실은 결과가 그렇게 썩 국가폭력피해자의 대표적인 케이스인데 글쎄요, 이게 사람들에게 이렇다, 잘 됐다라고 얘기할 만큼 좋은 결과는 아닌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아까 암 얘기하셨고. 사실 지난해 저희 프로그램에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출연해서 저랑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건강 상태는 어떻습니까?

    ◆ 권경원> 사실 제가 이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 지금 세상보다는 건강한 것 같습니다라고 답하고 있어요.

    강기훈 씨(사진=시사자키)
    ◇ 정관용> 지금 세상보다는 건강하다.

    ◆ 권경원> 뭐냐 하면 걱정하실 만큼 건강은 그렇게. . . 사실 암환자에게 이렇게 건강하냐고 묻는다는 것 자체 이런 것들이 사실은 저한테 묻는 것은 괜찮은 것 같은데요. 이런 것도 사실은 좀 조심스럽기도 하고 실제로 사실 지난주 토요일에 한번 뵈었거든요. 그런데 좋아 보이시더라고요, 제 눈에는요. 건강하시고 늘 사실 자신의 건강들을 잘 지키셨으니까 오랜 투병 생활도 아주 잘 견디고 계신 게 아닌가. 마지막에 최후진술서에 이렇게 쓰셨거든요. 잘 버티겠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시고 계신 것 같아요.

    ◇ 정관용> 이 영화 완성되고 봤나요, 강기훈 씨는?

    ◆ 권경원> 안 보겠다고 처음부터 하셨어요. 왜냐하면 이건 또 사실 자신의 가장 아픈 피해 기억들을 90분 동안 어두운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게 고역이겠죠. 그러니까 대부분 인터뷰를 응해 주신 분들도 마찬가지셨어요. 그러니까 그 기억들을 다시 보는 게 고통이다. 관객들도 그 시간을 굳이 극장 가서 보는 것이 힘들다 이런 분들이 많이 계시죠. 그런 상황인데 강기훈 선배한테 이 영화 봐달라.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인터뷰는 주로 어떤 분들이랑 했습니까?

    ◆ 권경원> 사실 강기훈 선배님도 인터뷰를 하셨어요.

    ◇ 정관용> 그래야 되겠죠, 당연히.

    ◆ 권경원> 한 장면이 들어가 있고요. 그때 당시에 열한 분의 죽음과 관련이 돼 있고 그 죽음들을 기억하시고 또 그것에 따라서 자신의 삶들도 조금씩 꾸려오셨던 분들. 이런 분들과 주로 이렇게 인터뷰를 했습니다. 당연히 유서대필 사건을 이렇게 잘 지켜주셨던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 분은 또 이렇게 몸이 좀 아프세요. 김선택 당시 자민련 사무처장 같은 경우에는 병원에서 아마 이 얘기를 듣고 계실 가능성이 높고요. 그리고 유서대필 자료집을 불편한 몸에도 해 주셨던 염기훈 선배님도 사실 몹쓸 병으로 투병하고 계십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바로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지자 공안당국은 이 죽음에 뭔가 배후가 있다는 식으로 만들어내려고 소위 유서대필 사건이라고 하는 것까지도 연결되는 그거 아니겠습니까?

    ◆ 권경원> 맞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그런데 이걸 쭉 만들면서 그 시기 그렇게 집중적으로 그 젊은이들이 그렇게 세상을 등지게 된 그거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 권경원> 제 생각에는 사실은 그게 코미디잖아요. 자기 목숨을 버리겠다는 각오를 한 사람들이 유서를 대신 써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 정관용> 참 말이 안 되는 얘기죠.

    ◆ 권경원> 그걸 또 알았다 해서 써주는 것도 사실은 코미디언도 안 쓸만 한 시나리오라고 생각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믿었죠. 저 같은 젊은이들은 사실 저희 세대가 71년, 72년 인구가 제일 많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본 세상은 87년 이후부터 91년 사이에요. 그 시간에 본 시간들은 뭐, 세상이 좋게 변한다고 하는 거죠.

    정관용 진행자(좌)와 권경원 감독(우) (사진=시사자키)
    ◇ 정관용> 오히려 희망 잠깐 품었다가 절망한.

    ◆ 권경원> 그렇죠. 오히려 그것의 속도가 훨씬 빨랐던 그런 것들을 보면서 자랐던 젊은이들. 특히나 전교조, 해직 교사들, 선생님들이 좋은 선생님들이 빠져나가는 걸 봐야 했던 세대니까요. 그런 것들을 보고 91년에 또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3당 합당 같은 것을 보고. 이런 세대들이 사실은 대학교에 왔을 때 우리들의 천국 같았겠나. 당시 우리들의 천국이란 드라마가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사실은 되게 그때 희생들이나 이렇게 분신들 사실 분신이 아까 11명이라고 하셨는데.

    ◇ 정관용> 전체가 다 분신은 아닙니다.

    ◆ 권경원> 그렇죠. 두 분이 사실은 공권력에 의해서 타살이 확인된 죽음이고 한 분 같은 경우는 의문사로 아직 나와 있죠. 노동자분이시죠. 그런데 나머지 아홉 분은 또 그 중의 학생들은 4명, 다섯 분은 또 노동자분 서민들이시죠. 이런 것들이 사실은 알고 보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의 자연스럽지 못한 죽음들이 오히려 더 혐오를 받고 또 왜곡되고 폄훼되고 하는 과정 속에서 증폭된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그 시기를 담은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뭘 말하고 싶었습니까?

    ◆ 권경원> 사실은 지금 벌써 한 11일째 되는데 관객분들이 사실 많이 찾아오지는 않으세요.

    ◇ 정관용> 다큐멘터리 특성상 상영관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고. 아무튼 꾸준히 이어지고는 있죠.

    ◆ 권경원> 꾸준히 찾아주고 계시고 다행히 열흘 넘게 계속 상영관에 걸려 있습니다. 내일도 서울에서만 7개 극장 이렇게 있는데 사실은 레미제라블 얘기를 드리고 싶기는 해요. 프랑스 혁명이 사실은 혹자는 80년, 혹자는 100년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그 과정이. 1년에 일어날 일이 아니죠.

    ◇ 정관용> 물론이죠.

    ◆ 권경원> 저 같으면 1789년을 되게 대단했던 시기를 그릴 것 같은데 가장 아픈 시간을 그린단 말이죠. 1832년, 바리케이트 도시에서 그냥 헛되게 죽어간. 그런데 이것이 사실은 그 나라의 문화 품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것을 기억하고 있느냐 그리고 또 레미제라블처럼 힘찬 합창은 없어도 귀기울이면 마음에 훅 들어오는 기타연주가 이 영화에는 있거든요. 사실은 그걸 이기지 못해서 다큐가 된 겁니다. 꼭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고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촛불혁명 후 대선에서 최순실이 당선된 상황인 1991년 봄을 다룬 다큐멘터리 1991 봄 관심 갖고 지켜보겠습니다. 만드신 권경원 감독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 권경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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