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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여긴 창살없는 감옥" 강화 교동도 주민들 한 풀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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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북한

    [르포] "여긴 창살없는 감옥" 강화 교동도 주민들 한 풀릴까

    • 2018-11-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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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동도 주민들, 한강하구 남북 공동 수로조사 후 "철책 제거되고 중립수역서 자유롭게 조업하길 기대"
    "어릴 적 갯벌서 북한 사람들과 손흔들고 인사하며, 숭어 망둥이 잡던 시절로 돌아가고파"

    김포 문수산에서 바라본 북한 개풍군의 들녘. 누렇게 익은 벼가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다.(제공=사진작가 강욱남)
    지난 5일부터 한강하구 공동이용을 위해 남북한이 공동으로 수로 조사를 시작했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65년만으로, 북한과 가장 가깝다고도 하는 인천 강화군 교동도 주민들은 이번 기회에 '창살 없는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큰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 "6·25 이전 강화 교동도는 북한과 같은 생활권"

    강화군 교동도는 북한 황해남도 연안군 그리고 배천군과 한강을 두고 바로 마주보고 있는 최접경지역이다.

    6·25 전쟁 이전까지는 교동도 남쪽 보다는 북쪽과 같은 생활권이어서 음식이나 생활 문화도 비슷했고,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의 왕래가 잦았다고 한다.

    불과 약 3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북한 연안장터를 구경하기 위해 당시 국민학생들이 수영을 해서 건너기도 했다고 한다.

    교동도 관광안내지도
    교동역사문화발전협의회 한기출 회장은 "교동은 지리적으로 임진강과 예성강, 한강이 만나는 하구에 위치해 인맥과 학연, 혈연 등이 모두 북한과 연결돼 있었다"고 말했다.

    또 "예부터 이 지역은 '삼도요충 양경인후(三道要衝兩京咽喉)'로 불릴 정도고 전략적 요충지여서 관미성에서 고구려와 백제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6·25 전쟁 이후 역사적 문화적인 모든 것이 말살되고 소외된 지역으로 전락해버렸다"고 지적했다.

    ◇ "잠깐 피난 나왔다가 졸지에 실향민, 아직도 번지수 기억하는데…"

    이렇게 생활권이 북한과 가깝다보니 전쟁 때 교동도로 잠시 피난 왔다가 안타깝게도 실향민이 된 분들도 상당수라고 한다.

    교동도 북단 마을인 지석리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남편 고향이 바로 지척에 보이는 '연안'이라며 "9살에 피난 나왔는데 번지꺼정 기억하고 있다"며 "통일되면 고향에 꼭 한번 들어가보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교동도에서 평화운동을 하고 있는 김영애 우리누리평화운동 공동대표는 "북한에서 피난 올 때 그분들이 잠시 마을을 떠나 안정될 때까지 몸을 숨길 수 있는 곳 택한 게 앞동네 교동이었다"고 말했다.

    비록 전쟁중이었지만 분단이 되기 전에는 식량이 떨어지면 급히 밤에라도 나가서 식량을 갖고 오거나 겨울이 오면 가서 이불도 가져오고, 부모님 생신 때나 제사 때도 가끔씩 다녀오던 곳이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그러나 "한강하구가 분단선이 됨으로써 남한 경기도 땅이었던 연백평야가, 부모님의 고향이 북한령이 됐다"며 "실향민들은 굉장히 아쉽고 안타까워하면서 지내셨다"고 말했다.

    (사진=스마트뉴스팀)
    ◇ 교동도 주민들 "여기는 창살 없는 감옥"

    교동도에는 지난 1998년경부터 북쪽 해안가에 철책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남북간에 평화 무드가 무르익던 시절이었지만 귀순자가 늘어난다는 이유로 이곳에는 거꾸로 경계선이 쳐졌다고 한다.

    철책이 설치되기 전에는 비록 배는 띄우지 못했지만 주민들은 갯벌로 나가 수영도 하고, 그물을 던져서 고기를 잡았다. 숭어가 떼를 지어 다니고 농어, 망둥이도 잘 잡혔지만 지금은 그림의 떡이다.

    그렇게 교동도 앞바다를 자유롭게 드나들었고, 가끔 건너편 북한 주민들과 큰 소리로 인사도 나눴지만 지금은 자물쇠가 채워진 채로 굳게 잠긴 통문이 바다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나세균씨 (사진=스마트뉴스팀)
    농사를 짓고 있는 나세균씨(56)는 "여기서 우리가 자유롭게 망둥이 낚시도 하고 숭어 그물질도 하고 자유롭게 다녔는데, 통문을 치고 나서 통제를 받고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나씨는 "바다를 뻔히 보고도 못나가니 여기 주민들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있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옛날엔 자유롭게 다니고 놀던 데인데 군인 통제 하에 막혀서 바다에 나갈 수가 없다. 바다에 나가는 게 교동 면민들은 진짜 뭐랄까, 소원이죠"라고 말했다.

    ◇ 어민들 "한강 하구 중립수역에서 자유롭게 조업할 수 있게 되길"

    이번에 수로조사가 이뤄지는 한강·임진강 하구 공동이용수역은 남측 김포반도 동북쪽 끝점으로부터 교동도 서남쪽 끝점까지, 북측 개성시 판문군 임한리부터 황해남도 연안군 해남리까지 70km 수역이다.

    원래 정전협정은 이 수역에서 민간 선박의 항행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당연히 조업도 가능하지만 남북한은 그동안 일체의 활동을 통제해왔다.

    남쪽 바다에서도 허가를 받지 못하면 조업 자체를 할 수가 없고, 어민들은 군 당국의 엄격한 감시 하에 지극히 제한된 구역에서만 조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왼쪽) 현상록 씨와 도성해 기자 (사진=스마트뉴스팀)
    교동도 토박이인 어촌계장 현상록(68)씨는 "주민들이 섬에 사는 것도 억울한데, 진짜 마음대로 가서 그 지역에 가서 숭어도 잡아먹고 낚시도 한 번씩 하고 그래야 하는데 여태껏 다녀 봐도 섬 전체 철책선 쳐진 건 여기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남북 수로 공동조사에 거는 기대감이 간절했다.

    현씨는 교동도 선착장에서 북쪽 바다를 바라보며 "공동조사단이 구성됐는데 우리가 죽기 전에 저기 가서 조업을 할 기회가 생기는 모양"이라며 "(서해)함박도나 말도 까지 자유롭게 오가면서 조업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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