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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의 낭군님'에 주목한 '거리의 인문학'



문화 일반

    '백일의 낭군님'에 주목한 '거리의 인문학'

    우리 시대 '퓨전 사극'의 남다른 가치
    "고증 논란 옛말…역사 관심 기폭제"
    "하물며 조선시대에도…통렬한 우화"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 스틸컷(사진=tvN 제공)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사극이란 무엇일까.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인문학을 전파해 '거리의 인문학자'로 불리우는 작가 최준영은 지난 30일 막을 내린 화제의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을 쭉 봐 왔다고 했다.

    "역사 관련 강연을 많이 하는 입장에서 영화·드라마 장르로서 사극에 기본적으로 관심이 많다"는 것이 그 이유다.

    "지금 사극 장르는 사료에 충실한 '정통 사극'과, 역사적 소재를 택하되 허구를 가미한 '퓨전 사극'으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백일의 낭군님'은 퓨전 사극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등장인물들이 요즘 유행어를 쓰는 식으로, 한복을 입었을 뿐 그들의 대사·몸짓은 지금 감각에 뒤쳐지지 않는다."

    최준영은 극중 주인공인 세자 이율(도경수 분)이 기억을 잃고 평민 생활을 할 당시 불린 이름인 '원득'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전날 모 지자체 공무원 대상 강연 도중에 팩션을 설명하면서 원득이 이야기를 했더니 청중이 '까르르' 웃으면서 '백일의 낭군님'을 열심히 본다는 반응을 보이더라. 내 경우 개인적인 호감을 갖고 그 드라마를 본다고 여겼는데, 그 반응을 보면서 대중적 인기가 상당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는 "'백일의 낭군님'은 시대를 특정하지 않은 채 반정을 겪은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비극적 이야기라는 갈등 구조에 충실하면서도, 그것을 감각적인 연출로 풀어냈다는 점이 대중에게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 드라마에서 그려진 궁중 암투가 다소 진부했다는 일각의 평에 대해서는 "구도는 진부했으나, 풀어내는 방식은 산뜻했다"고 다른 목소리를 냈다.

    "왕실 내부 권력 암투는 사극의 기본적인 갈등 구조 가운데 하나다. 특히나 반정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그린 만큼, 역사 속 다양한 인물을 혼합한 캐릭터를 구현해냈다는 생각이 들더라. 조선에서 반정은 두 차례 있었다.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이 그것인데, 이 드라마는 왕의 이름을 특정하지 않고 두 반정을 혼합한 요소를 집어넣었다."

    최준영은 그 연장선상에서 극중 왕(조한철 분)을 두고 "중종에게서 많은 부분을 가져 온 것으로 보였다"며 "반정을 주도한 세력에 휘둘려 아내와도 헤어지고, 스스로 아무것도 못하는 캐릭터라는 점이 그렇다"고 설명했다.

    "실제 중종은 조광조를 위시한 사림 세력을 키워 반정 세력과 맞섰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세자 율이 조광조 역할을 하는 듯했다. 조광조는 갖바치(가죽신을 만드는 사람)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등 당대 신분제를 뛰어넘는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 구조를 바꾸려 했던 인물이다. 극중 세자가, 물론 기억을 잃은 탓이지만 서민들 세계에 들어가 산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다양한 역사적 사건 모으고 추려 하나의 이야기로…시대 향한 메시지에 방점"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 스틸컷(사진=tvN 제공)

     

    최준영은 "주변 역사학자들을 보면 퓨전 사극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복식 등 고증이 잘못됐다는 식인데, 개인적으로 이에 대해 불만이 크다"고 지적했다.

    "물론 고증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지금의 사극이 역사적 소재를 자연스레 접하도록 도움으로써 역사를 대하는 대중, 특히 젊은이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가 크다고 본다. 사극이 사실로서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기폭제, 통로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는 영국 출신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E.H.카의 유명한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언급하면서 "'백일의 낭군님' 속 서민들은 현감 등과도 스스럼없이 소통하는 등 대등한 위치로 설정됐는데, 이것을 현재와 연결시켜 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H.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서구 역사학의 두 흐름을 정리했다. 하나는 랑케로 대표되는 사회과학적 역사관, 나머지는 크로체와 같은 인문학적 역사관이다. 랑케는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해야 한다고, 크로체는 현재 관점에서 역사를 재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이 두 흐름의 갈등과 대립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역사란 무엇인가'다.

    최준영은 "E.H.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규정하면서 인문학적 역사관의 손을 들어줬다"며 "'백일의 낭군님'이 반정이라는 가상의 설정을 통해 현대인에게 전하는 뚜렷한 메시지가 있는 만큼, 우리 시대의 사극은 하나의 역사 기술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시대와 달리 우리 사회에는 계급이 없다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있는 자'와 '없는 자'로 엄밀하게 구분되고 있잖나. 서민들이 기꺼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양반과도 대등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강조하는 '백일의 낭군님'과 같은 팩션 사극은 이 점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통렬한 우화다."

    결국 "대중에게 '하물며 조선시대에도 저렇듯 사회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소통했다'는 사극의 세계관을 전함으로써 지금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판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퓨전 사극의 강점은 다양한 시대에 걸쳐 있는 역사적 사건을 모으고 추려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접하는 현재의 우리에게 다양한 느낌과 메시지를 전하는 데 있다. 그러한 기법 덕에 영화 '밀정',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과 같은 격동의 시대를 보여주는 일련의 사극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 아닐까. 우회적으로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돕는, 시대적 의미를 담은 웰메이드 사극이 꾸준히 선보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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