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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반

    스무살 청년의 짧지만 아름다웠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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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수레 할머니 돕다 교통사고 당한 고 김선웅군
    뇌사판정 후 7명에게 장기기증하고 하늘나라로

    제주성안교회에서 찬양 봉사하던 고 김선웅군 모습. (사진=유가족 제공)
    제주시내 한 오르막길에서 수레를 힘겹게 끌던 90대 할머니를 돕다 교통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고 김선웅(20)군.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장기를 7명의 생명에 나눠주며 아름다운 자취를 남겼다.

    ◇ 수레 끄는 90대 할머니 도와주다 사고

    김군은 지난 3일 오전 3시5분쯤 제주시 도남동 정부종합청사 앞 횡단보도에서 김모(90) 할머니의 수레를 끌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쪽파 묘종을 수레에 싣고 인근 텃밭에 가던 김 할머니가 오르막길을 힘들게 오르자 지나치지 않고 도와주던 길에 당한 사고였다.

    당시 김군은 제주시청 한 만화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교통사고 직전 할머니를 도와주던 고 김선웅군 모습. (사진=제주지방경찰청 제공)
    폐쇄회로(CC)TV 영상 확인 결과 김군은 사고를 당하기 직전 150m에 이르는 길을 김 할머니와 함께 수레를 끌며 걸어갔다.

    그러나 김 할머니와 함께 사고 현장 횡단보도를 건너다 김씨를 미처 보지 못했던 오모(25)씨가 몰던 승용차량에 치였다.

    이후 제주시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머리를 크게 다치면서 뇌사 판정을 받았다.

    ◇ "다른 사람 도와주길 좋아하던 착한 아들"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조리과 1학년생이었던 김군은 대학 입학 후 스스로 용돈을 벌겠다며 야간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제주시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였다.

    고 김선웅군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모습. (사진=유가족 제공)
    사고 당일도 학교 수업을 받고 밤늦게까지 일을 해 피곤한 몸이었지만, 김군은 도움을 요청하는 할머니를 뿌리치지 않았다.

    특히 김군은 아르바이트를 쉬는 주말에도 유치부, 중‧고등부 선생님 등 교회 봉사 활동을 해오기도 했다.

    아버지 김형보(56)씨는 10일 CBS노컷뉴스 취재진에게 "바쁜 시간 쪼개가며 남 일을 돕는 걸 좋아하던 착한 아들이었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특히 고등학생 때부터 학교 공부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묵묵히 가게 일을 도와주던 아들이었는데…"라고 말하며 안타까움에 말끝을 흐렸다.

    누나 김보미(30)씨도 "헌혈차를 보면 바로 달려가 아낌없이 헌혈할 정도로 착한 동생이었다"며 "사고를 당한 날에도 헌혈하러 오라는 문자가 동생 휴대전화로 왔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고 김선웅군이 가족과 여행가서 촬영한 사진. (사진=유가족 제공)
    ◇ 어머니와 같은 뇌 손상…7명에게 장기기증

    사고 직후 김군이 병원에서 뇌사 소견을 받은 이후 아버지 김형보씨는 아들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김군 어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김군의 어머니는 김군이 6살이었던 지난 2004년 자택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뇌진탕을 당했다. 뇌의 기능이 손상돼 3년간 병원에서 식물인간으로 생활하다 2007년 요양시설에서 숨졌다.

    김형보씨가 고 김선웅군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가족들은 이번 사고로 김군도 어머니처럼 사실상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후 다른 사람에게 새 생명을 주기 위해서 선뜻 김군의 장기를 기증했다.

    특히 김군 어머니가 숨진 이후로 누나, 아버지는 이미 장기기증 서약을 하기도 했다. 이번 장기 기증으로 김군도 가족들의 뜻을 이어가게 됐다.

    김형보씨는 "아내가 식물인간이 된 이후 매일 병원을 찾아가 깨어나길 바랐지만, 결국 숨졌다"며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이 조금이라도 (몸 상태가) 좋을 때 장기 기증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김군의 간, 콩팥, 각막, 신장, 폐 등은 모두 7명의 사람에게 돌아가 새 삶을 줬다.

    고 김선웅군의 방. (사진=고상현 기자)
    ◇ "늘 선행 베풀던 친구…빈자리가 크다"

    2남1녀 중 막내였던 김군은 집에서 '막둥이'로 불리며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랬기에 가족들은 아직도 김군이 숨진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고 했다.

    김형보씨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어서 어머니가 주지 못한 사랑을 주기 위해 많이 예뻐했다"며 "바로 직전까지도 반찬 하나하나 숟가락에 올려줬었는데…"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김형보씨가 고 김선웅군이 마지막으로 준 어버이날 편지를 읽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김보미씨도 "결혼한 이후로 동생을 자주 못 봤었다"며 "이렇게 떠날 줄 알았으면 더 잘해줄 걸 하고 후회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최근 마련된 빈소에는 평소 상냥했던 김군이 숨진 사실을 알고 안타까운 마음에 친구, 중‧고등학교 은사, 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친구인 송명준(20)씨는 "항상 선행을 베풀던 친구였는데 이번에도 착한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서 마음이 아프다"며 "선웅이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고 울먹였다.

    살아생전 마음 따뜻한 청년이었던 김군은 안타까운 사고로 숨진 뒤에도 아름다운 자취를 남겼다.

    김군이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준 어버이날 편지. (사진=고상현 기자)
    다음은 지난 어버이날 김군이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썼던 편지 전문.
    사랑하는 아빠에게. 아빠! 항상 저희를 사랑해주시고, 저희를 위해 희생하시면서 챙겨주시는 걸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마음을 표현도 안 하고 매번 무뚝뚝하게 굴었던 점 죄송합니다.

    그래도 저는 표현은 잘 못하더라도 항상 아빠한테 감사하고 사랑해요!

    앞으로는 사랑한다는 걸 표현하도록 노력할게요. 아빠 사랑해요! 사랑하는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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