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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자기 집에서 살다가 죽으면 안 되나요?"



인권/복지

    "내 아이는 자기 집에서 살다가 죽으면 안 되나요?"

    34세 발달장애인 아들 자립위해 분투하는 정용숙 씨
    장애복지관 2년마다 '뺑뺑이'...단순노동에 비만까지
    공동체, 그룹홈도 돈먹는 하마...온가족 희생하는 구조
    돌봄위해 산속가는 대신 집에서 도움받으면 안되나?
    "하느님, 저 부르실 때는 이 아이도 같이 불러주세요"

    글 싣는 순서
    이 글은 국내 발달장애 청년들의 자립에 필요한 '희망의 스마트팜' 조성을 위해 CBS와 푸르메재단이 함께 마련한 연속 기획입니다.
    ① '말아톤' 13년 후…고단한 삶속에 피워낸 작은 희망
    ② 아이에게 한시도 눈을 못 뗀 19년…발달장애 엄마들
    ③ 발달장애 청년 위한 일자리, 푸르메재단이 만듭니다
    ④ 늙어가는 엄마는 점점 겁이 납니다, 아들 때문에
    ⑤"내 아이는 자기 집에서 살다가 죽으면 안 되나요?"
    (계속)


    일을 시작하기 전 기도하는 영일 씨. 사진=푸르메재단 정담빈 선임간사

     

    오전 9시. 장애인 28명이 작업대 3곳에 나누어 앉아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질끈 감고 기도를 올린다. 이어 한 장애인이 일어나 "차려, 경례" 하고 우렁차게 외치자 담당 복지사를 향해 모두 한 목소리로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서울시 은평구 증산동에 있는 바오로교실재활센터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동네 모퉁이 3층 건물에서 2층을 차지한 이 공간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보호작업장이다. 15평 남짓 조붓한 장소지만 밝고 유쾌한 기운이 가득하다.

    이날은 건축자재를 조립하는 작업이 이들을 기다린다. 가로세로 2cm의 납작 동그란 플라스틱 조각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거기에 기다란 못을 끼워 넣고 상자에 담으면 끝나는 단순노동이다. 50분 일하고 10분 쉬는 식이다.

    작업대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희끗한 초로의 장애인부터 청소년 티를 벗지 못한 부류까지 나이와 장애 정도가 제각각이다. 일에 대한 집중도 역시 개인차가 커 보인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친구가 반갑고 어울림이 즐거운 사람들도 적지 않다.

    주위 친구들에게 손짓을 보내 취재진을 소개하느라 바쁜 김영일 씨(34‧다운증후군‧지적장애)는 후자에 속하는 듯하다. 남두현 사회복지사는 "영일 씨가 성격이 밝고 친화력이 탁월하다"면서도 "일에 대한 열정은 크지 않아 보인다"고 웃는다.

    출근해서 작업 준비를 마친 영일 씨가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사진=푸르메재단 정담빈 선임간사

     

    ◇ 하루 종일 단순작업에 내몰렸던 아픈 기억

    이곳의 장애인들은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된다. 원한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오후에는 보통 인근 문화체육 시설을 찾아 수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강한다. 어머니 정용숙 씨(62)가 여기를 마음에 들어하는 이유다. 이 곳에서 10년째 일하는 영일 씨는 55세 정년까지 계속 다닐 생각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장애인복지관에서 작업활동을 했는데, 그때 허구한 날 앉아서 일만 하다 보니 살이 많이 쪘어요. 하루 종일 단순작업만 시키는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장애가 없는 사람도 못 견딜 일이지요."

    수영과 스킨스쿠버를 좋아하고 공으로 하는 스포츠는 못 하는 것이 없다는 영일 씨. 학창시절에는 호리호리한 몸매를 자랑했다. 하지만 답답한 실내에서 장시간 노동에 반복적으로 시달리면서 스트레스가 심했고, 몸은 몸대로 퉁퉁 부은 듯 살이 찌고 말았다.

    "우리 영일이가 어릴 때 매달 25만원씩 들여서 언어치료를 열심히 받았어요. 그래도 말을 잘 못해요.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데, 짧은 단어를 하나씩 내놓는 정도예요. 말은 안 통하지, 좋아하는 운동은 못하지,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겠어요."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협동조합을 세워 운영하는 베이커리 카페. 사진=정담빈 선임간사

     

    장애청년 4명이 이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손님들 사이에서 빵과 커피 맛이 좋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사진=정담빈 선임간사

     

    영일 씨가 일하는 보호작업장 아래층에는 멋들어진 베이커리 카페가 화사한 분위기로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장애인의 부모 25명이 1억2천만 원을 모아 협동조합을 세워서 운영을 시작한 지 벌써 4년 째. 현재 작업능력과 취향이 적합한 장애청년 4명이 이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예쁜 카페 덕분에 동네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빵과 커피의 맛이 아주 좋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영일이가 20살에 장애인복지관을 처음 갔는데, 2년 일하니까 근무기간이 종료되었다고 다른 복지관을 찾으라 하더군요. 그다음 복지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2년 주기로 복지관 일자리를 새로 구해야 하는 처지였어요. 아이가 복지관을 돌다가 늙어간다는 말도 있었지요. 좋은 친구를 사귈 만하면 헤어져야 했고요. 그런 식의 복지관 순례가 싫어서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여기도 가기 싫다고 버티곤 했던 영일 씨. 하지만 일과 여가가 어우러진 일터가 이내 마음에 들었고, 마음씨 착한 친구들과도 오래 사귀면서 이제는 휴일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정도다.

    "발달장애인들은 20분 이상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요. 그렇다고 여기도 직장인데 마냥 놀리기만 할 수는 없지요. 그래서 개인의 특성에 맞추어 일과 여가의 균형을 적절히 잡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언제까지 부모들이 발버둥을 쳐야 합니까?"

    당시는 이용기간 제한이 없는 보호작업장이 서울 시내에 여기 한 곳밖에 없을 정도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복지 인프라가 지금보다 더 열악했다. 한때는 아이가 인간답게 일하고 행복한 일상을 가꿀 수 있는 대안을 부모인 자신이 직접 찾아내야 한다고 결론지은 적도 있었다.

    "케어팜과 비슷한 형태의 공동체를 구상하기도 했어요. 영일이가 스무 살쯤 되었을 때였어요. 하지만 1인 당 2천만 원씩 부담해야 하는 프로젝트여서 너무 큰 부담이었고,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요."

    어머니는 그룹홈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가 성인이 되어 그룹홈이 필요한 때가 되면 그 부모는 60~70대가 된다. 부모 역시 노인이 되어 부양을 받아야 하는 마당에 자녀한테 그룹홈을 마련해준다는 것은 쉽게 이루기 어려운 꿈이다.

    실제로 서너 가정이 1억 원 정도씩을 갹출해서 집을 마련하면 돌봄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 인건비를 자치단체가 지원하는 방식인데, 거기에 더해서 매달 20~30만원 안팎의 관리비용을 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정용숙 씨는 발달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푸르메재단 정담빈 선임간사

     

    "국가에서 임대아파트를 그룹홈으로 내놓고 기초생활비까지 50~60만원씩 지원하면 좋겠어요. 어떻게든 제도적으로 대안을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부모가 누구를 믿고 마음 편히 눈을 감겠습니까? 발달장애인 딸을 위해 1억 원을 들여 그룹홈을 마련한 부모가 세상을 뜨자마자 친오빠가 그 돈을 빼내고 여동생을 수용시설에 보내버린 사건도 있었어요."

    정용숙 씨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이사할 생각이 없다. 아들이 혹여 길을 잃어도 어떻게든 찾아올 수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고3 때 버스에서 잘못 내린 아들을 세검정 파출소에서 찾아오며 생각했다. 못된 사람들이 끌고 가서 두들겨 패고 앵벌이 시키기에 딱 좋은 나이 아닌가. 자칫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상상만 해도 아찔한 심정,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실은 더 큰 바람이 있다. 엄마는 영일 씨 동생인 둘째 아들한테 "엄마 죽으면 형은 시설에 보내라, 대신 1년에 4번은 들러봐라, 형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며 자란 너한테 형이 평생 부담이 되면 안 된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진심은 그렇지 않다. 아들이 지금 사는 집에서 계속 살다가 세상을 떠날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 "내 아이는 자기 집에서 살다가 죽으면 안 됩니까?"

    자녀를 사회와 분리시켜 어딘가 낯선 사람들과 살게 한다는 것.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고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엄마는 붉어진 눈, 떨리는 음성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왜? 내 아이는 자기 집에서 살다가 죽으면 안 됩니까? 아이가 돌봄을 받으러 저 멀리 산속이나 오지로 떠날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찾아오면 안 됩니까? 미국은 장애인 1명에 특수교사, 치료사 등 네댓 명이 붙는다고 합니다."

    주일이면 성당에 가는 영일 씨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엄마도 함께 기도한다. '하느님, 이 아이가 무엇을 바라는지 하느님은 알고 계십니다. 엄마는 하느님께서 아이의 기도를 꼭 들어주십사 기도드립니다.'

    "무슨 기도를 했냐고 물었더니, '엄마' 하더군요. 아빠를 위해서도, 동생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착한 아들이에요. 명절이면 사촌동생들한테 과자 보따리를 안기거나 1천 원씩 나누어주기도 해요. 한 번은 수중에 3만 원이 생기니까 엄마 1만원, 동생 1만원, 아빠 1만원…."

    정용숙 씨는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법과 나눔의 기쁨을 아는 기특한 아들이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소중한 권리를 잃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를 수용시설에 보내버리는 것이야말로 그 권리를 빼앗는 일이에요. 영일이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여서 그런 시설에 들어가면 오래 못 살 것 같아요. 일본, 호주 같은 선진국조차 장애인 생활시설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꽤 있더군요. 하지만 장애인과 노인은 도시나 그 주변에서 사는 것이 좋습니다. 필요한 도움을 수시로, 손쉽게 받아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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