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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의 연속이었던 북미협상, 이번엔 다를까?



통일/북한

    파국의 연속이었던 북미협상, 이번엔 다를까?

    '다운탑' 협상이었던 제네바 합의와 9.19 합의
    구체적 비핵화 로드맵 합의했지만 실현은 못해
    근본적 불신·정치적 변동 넘어설 동력 약했기 때문
    지난해 3차 북핵 위기 뒤, 다시 시작된 비핵화 협상
    최초로 정상들이 주도하는 '탑다운' 방식
    신뢰와 의지 보여준 남북미 정상…가보지 못한 길 열까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자료사진=백악관)

     

    이번 북미간 비핵화 협상의 특징은 결정권자인 정상이 주도하는 탑다운(top-down) 방식이라는 데 있다.

    과거 실무진이 주도했던 바텀업(bottom-up) 방식의 협상은 비교적 구체적인 합의를 이뤘음에도 정치적 여건의 변동이나 신뢰 문제로 파국을 맞아온 경험이 있는 북미가 이번엔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북핵 위기 때 '바텀 업' 협상은 실패로 귀결

    북한은 한국 전쟁 뒤 '자위권 확보'를 모토로 핵개발에 매달리면서도 1974년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1985년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며 핵무기 개발 의사가 없는 것처럼 가장해 왔다.

    소련 등 우방국으로부터 관련 기술과 자재를 이전받은 북한은 60년대에는 평안북도 영변군에 핵 시설을 건립하기 시작했으며, 80년대 들어서는 미사일 시험과 핵 프로그램 가동에 들어갔다.

    그러던 1989년 8월 프랑스의 위성 스팟 2호가 '영변 핵 단지'를 촬영해 북한의 핵 시설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당황한 미국 등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 시설·물질 등의 신고·사찰을 이끌어 내기 위해 1991년 주한미군 전술핵무기 철수를 선언하고, 노태우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발표했다. 이듬해에는 한미 연합훈련인 팀 스피릿 훈련도 중단했다.

    하지만 같은 해 IAEA의 사찰 결과 북한이 신고한 양 보다 훨씬 더 많은 핵 물질이 생산된 것으로 나타났고, 영변 핵 단지의 지하 핵폐기물 저장소를 몰래 운영돼 왔음이 새롭게 드러났다.

    이처럼 핵무기 개발 의혹과 불신이 커져갔지만, 북한은 해당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거부하고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안전조치 협정 파기를 선언했다.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이후 북미는 강석주 외교부상과 로버트 갈루치 국무부 차관보 사이 고위급 회담을 통해 협상을 이어갔다. 상황은 북한이 정전협정 무효화를 선언하거나, 미국이 대북 군사옵션을 거론하는 등 전쟁 직전까지 치닫기도 했지만,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협상은 본 궤도에 올랐다.

    결국, 북한이 핵시설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경수로 2기를 제공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제네바 합의문(조미 기본합의문)이 탄생했다.

    다만, 합의 이행에는 철저히 실패했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패배해 경수로와 중유 지원 공급에 드는 비용조차도 마련해내지 못했다. 미국 내부의 반발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또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한미에 팽배했던 점도 제네바 합의 이행에는 걸림돌이었다. 북한 체제는 붕괴하기는커녕 핵개발 의지를 더욱 굳건히 했고, 비밀리에 핵능력을 고도화시켰다.

    그러던 2002년 미국은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HEU)을 이용한 핵개발을 시도한 징후를 포착했고, 10월 특사로 방북한 제임스 켈리 차관보에게 북한은 "우리는 HEU 계획을 추진할 권리가 있고 그보다 더 강력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며 개발 시도를 사실상 확인해줬다.

    이에 미국이 제네바 합의 파기 입장을 밝히자 북한은 핵 동결 조치를 해제 했고, 이듬해 1월 또다시 NPT 탈퇴를 선언하며 2차 핵위기가 발생했다.

    이번 핵 위기 때는 관련국들이 머리를 맞대고 공동 해결책을 모색했다. 같은 해 8월 처음으로 북미와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이 열렸다. 이후 2년여 걸친 협의를 통해 2005년 9.19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그 대가로 투자 등 교류협력을 증진시키기로 약속하는 성과를 얻었지만, 이 역시 파국을 맡게 된다.

    바로 다음날인 20일 미국 재무부가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의 북한계좌가 돈 세탁에 이용됐다는 우려가 있다고 지목하며 결국 북한 계좌를 동결해 버렸기 때문이다. 재무부는 세탁된 돈이 북핵 개발에 이용된다고 봤다.

    바로 전날까지 외교를 통한 핵문제 타결을 이뤄낸 국무부와 정반대 조치가 재무부를 통해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행정부 내에서도 북핵 문제에 대한 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북한은 반발했고, 이후 6자회담은 BDA 자금 동결이 풀리는 2007년 초까지 사실상 표류하게 된다. 이후에도 9.19 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에 대한 추가 합의가 나왔지만, 북미는 수시로 입장을 바꿔가며 완전한 비핵화라는 실질적인 조치로 나가지는 못했다.

    ◇확고한 정치적 의지가 밑바탕인 탑다운 협상

    지난해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세 번째 북핵 위기가 대두됐다. 앞선 회담과 가장 큰 차이점은 실무진이 아니라 결정권자인 정상들이 주도하는 탑다운(top-down) 방식이라는 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이래 남북, 한미, 북미 정상회담에서 주요 의제는 매번 한반도 비핵화였고, 각 정상들은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해왔다. 이들의 결정을 따라 실무진들이 후속조치를 논의하고 있다.

    청와대도 "과거 제네바합의나 9·19 선언과 다른 부분은 바텀업(bottom-up) 방식이 아니라 결정권을 가진 지도자들이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포괄적인 협의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정치 여건의 변화나 근본적 신뢰 부족 때문에 다음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던 과거에 비하면 장점을 갖는다. 이미 기존의 비핵화 협상과 최근까지 이어진 실무접촉을 통해 서로의 패를 대체로 알고 있는 북미이기에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정치적 의지'기 때문이다.

    국립외교원 민정훈 교수는 "차관보급에서 이뤄졌던 과거 협상은 합의 내용 자체는 훌륭했지만, 실행을 뒷받침할 정치적 동력이 약했고 정권교체 등의 이유로 구도가 뒤집히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엔 정상들의 결단을 통해 실무진이 움직이는 구도이므로 꾸준한 협상을 통해 진척시킨다면 결과를 얻기는 더 쉬운 구조"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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