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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미 "산후우울증, 그 끝에서 만난 폴란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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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

    추상미 "산후우울증, 그 끝에서 만난 폴란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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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 "폴란드로 간 아이들" BIFF 초청
    기차태워 보낸 한국戰 고아 1500명
    폴란드 교사들 '엄마·아빠 되어주자'
    전쟁의 상처가 사랑이 된 흔적 찾아
    감독으로 레드카펫에 …10.31 개봉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추상미(감독)

    오늘도 가을 하늘이 청명하네요. 이 청명한 가을 하늘과 함께 올해도 어김없이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을 합니다. 어제부터 예매가 시작됐는데요. 이미 실시간 검색어 오르내리면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죠. 오늘 화제의 인터뷰는 그 영화들 가운데 한 편에 주목해 보려고 합니다. 영화 '접속', 드라마 '해바라기'. 이런 여러 작품에서 개성파 배우로 활약했던 추상미 씨. 여러분 잘 아시죠? 추상미 씨 요즘 어떻게 지내나 했더니 영화감독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요. 한국전쟁 당시에 대거 폴란드로 보내진 전쟁고아들의 얘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출했답니다. 아니, 폴란드로 보내진 고아가 그렇게 많았던가? 저는 이것도 놀랍고요. 또 추상미 씨가 감독으로 벌써 세 번째 영화라는 것도 놀랍고. 두 번 놀랐습니다. 오늘 화제의 인터뷰 추상미 감독 직접 만나보죠. 추상미 감독님, 안녕하세요?

    ◆ 추상미>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김현정> 반갑습니다. 아니, 사실 저 같은 영화 문외한들은 잘 몰랐지만 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은 다 아시더라고요. 이번이 세 번째 작품?

    ◆ 추상미> 그러신가요? 잘 모르실 것 같은데. (웃음) 감사하네요.

    ◇ 김현정> 배우와 감독 뭐가 더 재미있습니까?

    ◆ 추상미> 글쎄요. 지금은 2년 동안 제가 작품을 붙들고 늘어져서 그런지 지금은 그냥 연기자로서의 생각, 기억들은 많이 잊혀졌고요.

    ◇ 김현정> 전혀 의외의 답이 나왔습니다. 아니, 사실은 배우 추상미 하면 우리 한국 영화계에 한 획을 그었다 할 정도로 개성파 배우로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데.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감독이었다란 느낌이 들 정도로 이 옷이 맞아요, 감독 옷이?

    ◆ 추상미> 사실은 약간의 반어적인 표현도 있는데요. 고생을 하면서 익숙해진 그런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아, 감독이란 이런 직업이구나' 이렇게. 이 고생이 언제 끝날까라는 의미에서 말씀드린 것 같아요.

    ◇ 김현정> 애증이군요. 고생하면서 정 붙으셨군요.

    ◆ 추상미> 네, 애증입니다. (웃음)

    (화면= 추상미 인스타그램 캡처)

    ◇ 김현정> (웃음) 그래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 먼저 선보이게 되는 작품, 세 번째 작품 제목이 '폴란드로 간 아이들.'

    ◆ 추상미> '폴란드로 간 아이들.'

    ◇ 김현정> 이게 한국전쟁 당시에 북한 고아들 얘기라고요?

    ◆ 추상미> 네, 1951년에 전쟁의 정점에서 그 당시에 발에 밟힐 만큼 전쟁고아가 많았어요. 전쟁이 끝나고 나서 한 10만 명 정도의 수치로 지금 예상을 하는데. 북한군에서 트럭에 태워서 보낸 거죠. 동유럽의 모든 사회주의 동맹국들이 북한의 전쟁고아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한 몇 백 명 씩. 그중에서 폴란드로 가장 많은 1500명의 전쟁고아들이 가게 되죠.

    ◇ 김현정> 1500명의 아이들이 폴란드 고아원으로?

    ◆ 추상미> 여기서 좀 어떤 반전은, 사실 다큐의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지만. 그 북한 전쟁고아들 중 다수가 남한 고아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걸 제가 폴란드 리서치 과정에서 알게 됐죠. 그러니까 말하자면 전선이 이동했을 때 북한군이 점령한 서울 이남 지역까지 다 포함해서 고아들을 보냈기 때문에, 그중 상당수가 남한 전쟁고아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 김현정> 그럴 수 있겠네요. 그러면 그 아이들이 지금도 폴란드에 계속 살고 있는 거예요?

    ◆ 추상미> 아니요. 북한에서 1958년에 천리마운동이 벌어져요. 북한이 전 인민을 노동에 동원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서, 이 아이들이 북송되게 되죠.

    ◇ 김현정> 다시 북송.

    ◆ 추상미> 전원이 다 북송돼요.

    ◇ 김현정> 그러면 추상미 감독이 폴란드에 지금 취재를 갔을 때는 그 아이들의 흔적만 남아 있는 거네요?

    ◆ 추상미> 이제 그 아이들의 흔적만 남아 있죠.

    ◇ 김현정> 기억을 합니까, 폴란드인들이?

    ◆ 추상미> 제가 폴란드 생존 교사 분들을 만났어요. 이 폴란드 선생님들이 65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아이들을 회상하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거예요.

    ◇ 김현정> 세상에.

    ◆ 추상미> 그래서 궁금증이 생긴 거죠. '왜 저분들이 아직까지 저렇게, 저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아이들을 그리워할까'라는 호기심이 생겼어요.

    ◇ 김현정> 그러네요. 취재를 해 보니까 그게 뭐던가요? 그분들이 왜 그렇게까지 눈물 흘리면서 그 아이들을 아직도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이던가요?

    ◆ 추상미> 북한 고아들이 폴란드 땅을 밟았던 바로 그 나이에, 이분들도 2차 대전의 전쟁의 상처를 경험해요. 그러니까 아시다시피 폴란드라는 나라는 2차 대전을 가장 처참하게 겪은 나라거든요. 아우슈비츠가 그 나라에 있었고. 그래서 특별히 이분들 300명의 교사들은 빈민 출신이었고 전쟁 중에 가족을 잃었거나 본인들이 고아인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너무 운이 좋게도 이 양육원 원장님이 살아계시는 거예요. 아흔 살이 넘으셨는데 이분이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증언을 하시기를 '우리는 북한 고아들이 기차역에 딱 내렸을 때 까만 머리, 까만 눈의 생전 처음 보는 동양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본 순간 그들은 머나먼 타국의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 유년 시절의 일부라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는 커리큘럼이 필요한 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필요하다는 걸 직감했고. 모든 300명의 교사들이 이 아이들을 선생님이라고 호칭하지 말고 엄마, 아빠라고 부르도록 이분이 명령을 하세요. 그래서 이제 8년 뒤에 다시 북송이 되게 되는데, 그 기차역에서 정말 가슴 아픈 작별을 하고요. 이 아이들로서는 사실 어떻게 보면 부모를 두 번 잃는 경험을 하게 되는 거죠.


    ◇ 김현정> 그러네요, 그러네요. 그러니까 추상미 감독님, 줄거리만 이렇게 쭉 들어봐도 전쟁의 아픔, 분단의 아픔. 이 두 가지를 다 담고 있는 영화네요, 이 영화는.

    ◆ 추상미> 맞습니다. 네, 그런 거였어요. 사실 저도 어떤 우울증으로 출발해서 이 소재에 관심을 갖게 된 부분이 있었어요.

    ◇ 김현정> 추상미 씨가 우울증 앓으셨어요?

    ◆ 추상미> 제가 산후 우울증이 좀 심해가지고 자살 충동도 느끼고 좀 심각한 상태까지 갔었는데.

    ◇ 김현정> 세상에.

    ◆ 추상미> 그때 북한 꽃제비 영상을 보고 눈물을 많이 흘리게 돼요. 제 아이에 대한 애착이 다른 아이에 대한 아픔으로 확장이 되는 어떤 경험을 하는데. 폴란드 선생님들도 자신들이 겪은 역사의 상처가 다른 민족의 아이들을 품게 된 사건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저는 우리 민족에게는 어떤 한국전이라는 역사의 상처, 분단이라는 상처가 어떻게 선하게 사용될 수 있을까. 그래서 이분들이 겪은 전쟁의 상처로 다른 민족을 품었다는 것. 그리고 한국전의 이면에는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있더라고요.

    ◇ 김현정> 어떻게 보면 아픔이 치유로 승화되는 그 과정을 또 그린 것일 수도 있네요. 여러 가지를 담고 있는 영화네요, 그러니까.

    ◆ 추상미> 네.

    ◇ 김현정> 추상미 씨의 그 상처, 추상미 씨의 아픔, 산후 우울증은 다 극복하신 거예요, 영화 찍으면서?

    ◆ 추상미> 극복이 됐어요. 치유가 되고.

    ◇ 김현정> 그럼 그 산후 우울증의 계기가 됐던 출산, 아이. 아들이잖아요. 몇 살이죠, 지금?

    ◆ 추상미> 아들 지명이가 여덟 살이고... 사실 제가 학부모가 됐는데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돌보느라고 지명이를 돌보지 못했어요. (웃음)

    ◇ 김현정> 저 그거 질문 드리려고 했는데. (웃음) 그래서 그 귀한 아들 지명이는 1년 반 기간 동안 어디다 맡기셨어요?

    ◆ 추상미> 가까이 사는 친척집에 맡겼어요, 많이 맡기고. 그 죄책감이 많이 있어요, 아직까지.

    ◇ 김현정> 아니, 엄마 안 찾아요? 한창 찾을 나이인데?

    ◆ 추상미> 제가 2016년에 폴란드에 갔는데, 그때만 해도 엄마를 그렇게 찾지는 않았는데 지금 또 껌딱지가 됐어요.

    ◇ 김현정> 지금 껌딱지가. (웃음)

    ◆ 추상미> 지금 껌딱지. (웃음)

    ◇ 김현정> 엄마가 유명한 배우고 감독이고 이런 것은 알아요?

    ◆ 추상미> 모르다가 같은 반 아이들이 '너네 엄마 연예인이래. 옛날에 배우였대.' 막 이렇게 얘기하니까 이제 조금 인식을 하는 것 같아요.

    ◇ 김현정> 이제는 그럼 굉장히 자랑스러워하겠는데요?

    ◆ 추상미> 네. 이제 같이 개봉을 하면 보러 갈 겁니다, 온 가족이.

    ◇ 김현정> 그래요. 사실은 우리에게는 아직도 배우로 강한 인상이 남아 있지만, 이제는 정말 어엿한 감독이 된 추상미 씨와 이야기 나눴는데요. 개봉이 언제입니까, 정식 개봉이?


    ◆ 추상미> 10월 31일 개봉입니다.

    ◇ 김현정> 10월 31일. 먼저 이제 부산국제영화제에 선보이는.

    ◆ 추상미> 네.

    ◇ 김현정> 감독으로서 레드카펫 밟게 되는 그 기분도 굉장히 설레실 것 같은데요?

    ◆ 추상미> 네, 저는 이렇게 중간에 걸어가다 넘어질 것 같은... 악몽을 한번 꿨어요. (웃음)

    ◇ 김현정> 감독으로 레드카펫 밟을 때는 드레스 같은 건 안 입으시죠? 여배우들의 그 드레스.

    ◆ 추상미> 드레스는 좀 안 입으려고요. 제가 그동안 폴란드로 간 아이들 돌보느라고 몸매 관리를 전혀 못 했기 때문에, 드레스는 소화가 안 됩니다. (웃음)

    ◇ 김현정> (웃음) 아무튼 저는 레드카펫에 당당히 걸어가는 감독 추상미 씨도 응원할 거고요. 또 개봉하면 영화도 꼭 보러 가서 감상평 꼭 올리겠습니다.

    ◆ 추상미> 네, 꼭 보러 와주세요. 감사합니다.

    ◇ 김현정> 응원합니다. 오늘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 추상미>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여러분, 참 좋은 영화라는 느낌이 드시죠?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라는 다큐 영화를 만들고 부산국제영화제에 선보이게 됩니다. 추상미 감독이었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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