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좌로부터)
그간 북한과 관련해 진전을 이뤄나가고 있다며 긍정적 입장을 보여 왔던 트럼프 행정부가 얼굴을 싹 바꿨다. 미 국방부가 한미연합훈련 추가 중단은 없다며 포문을 열었고 국무부, 유엔 주재 미 대사가 잇따라 대북 압박 발언을 내놨다.
발단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을 취소하면서 그 이유로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충분한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그동안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했다고 믿는다며 북미 협상의 진전에 대해 낙관적 입장을 피력해왔던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협상의 진전이 더디다는 점을 인정하고 나선 것.
◇ 매티스 미 국방, 이례적 기자회견 "훈련중단 여기까지"그로부터 나흘 뒤인 28일(현지시간)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식 기자회견을 좀처럼 열지 않았던 그의 입에서 북한 관련 질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한미연합)훈련을 추가로 중지할 계획도 논의도 없다”는 답변이 나왔다.
지난 6월 북미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선의의 조치로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고, 그 결과로 대규모 연례훈련이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이 올해 열리지 않았다. 또 한미 해병대연합훈련인 KMEP도 중단됐다.
매티스 장관은 “몇 가지 대규모 훈련을 중단했지만 나머지는 중단하지 않았고 한반도에서 훈련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이미 짜여진 훈련 계획을 이행할 것이며 추가로 (훈련중단을) 더 진행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앞으로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겠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를 계산할 것”이라면서 내년 한미연합훈련 계획을 짜기 전 북한과의 협상 진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적어도 올해는 북한이 가장 민감해하는 한미연합훈련의 추가 중단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북한이 협상에 잘 응한다면 내년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복선을 깔았다. 북한이 전향적인 비핵화 조치를 내놓지 않으면 군사적 긴장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압박이다.
◇ 미 국무부, "충분한 진전" 강조하며 대북 압박이어 미 국무부에서도 헤더 나워트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밝힌 내용, 즉 “충분한 진전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느낀다”는 점은 폼페이오 장관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포함한 미국의 국가안보팀이 모두 동의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북한과의 협상에서 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폼페이오 장관이 다시 방북할 정도로 충분히 진전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
폼페이오 장관도 이날 나워트 대변인을 통해 성명을 내고 “방북이 비록 연기됐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약속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행할 준비가 돼 있을 때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돼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7월 방북 때, 북한에 6-8개월 안에 보유 핵탄두의 60-70%를 미국 또는 제3국에 넘겨 폐기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북한의 핵관련 시설과 보유현황에 대한 자진 신고도 압박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은 북한이 이같은 전향적 비핵화 조치를 내놓을 준비가 됐을 때 가능하다는 점을 내비치면서 북한의 결단을 촉구하는 모양새다.
◇ 헤일리 유엔 美대사 "북한 비핵화 변심하면 제재 계속"이런 가운데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도 대북 압박에 가세했다. 헤일리 대사는 유엔 안보리의 초강경 대북제재 결의를 이끌어내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헤일리 대사는 이날 민주주의수호재단(FDD)에서 열린 국가안보 콘퍼런스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놓고 변심할 수 있는가”라고 자문하면서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우리(미국)는 제재를 놓고 변심하지 않을 것이며 비핵화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변심하면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는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한동안 미국이 명시적으로 꺼내들지 않았던 ‘최대한의 압박 전략’이라는 카드도 내비치면서 전방위 대북 압박에 들어간 모습이다.
이날 미 국방부와 국무부, 유엔주재 미 대사 모두 외교적 노력, 즉 북한과의 협상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점도 눈에 띈다. 당장 판을 뒤엎지는 않을 것이고 대신에 공을 북한에 넘기는 모습을 연출한 셈이다.
아직 북한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 등에 대해 명시적인 대응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나선 가운데, 북한이 이에 반발하는 강경책으로 나올지 아니면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비핵화 조치를 내놓으며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할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아울러 북한의 '충분한'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며 대북 압박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한 미국, 그리고 종전선언과 같은 선의의 관계개선 조치를 미국이 먼저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북한 사이에서 문재인 정부가 남-북, 한-미 관계 사이에서 조율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