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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옥살이한 85세 그…"北에 있는 딸 만나고 싶다"



사회 일반

    34년 옥살이한 85세 그…"北에 있는 딸 만나고 싶다"

    • 2018-08-19 15:08

    '대장암 투병' 85세 비전향장기수의 생애 마지막 소원
    "남북정상회담 보면서 고향에 돌아가는 소망을 했다"

    사진첩 보는 비전향장기수 박종린씨 비전향장기수 박종린(85)씨가 인천시 부평구 자택에서 아내 등 가족사진이 담긴 흑백 사진첩을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얼굴에 팬 주름이 굴곡진 세월의 깊이를 말하는 듯했다.

    백발에 머리숱마저 듬성듬성한 노인은 손에 쥔 흑백 사진첩을 매만졌다. 더는 만날 수 없는 아내가 사진첩 속에서 노인의 주름진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비전향장기수 박종린(85)씨의 아버지는 1930년대 김일성 주석이 이끈 조국광복회 소속 유격대원이었다. 김 주석의 오른팔로 불리며 훗날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일(본명 박덕산) 선생 밑에서 연락책 역할을 했다.


    항일 유격대원을 남편으로 둔 탓에 겪어야 했던 갖은 고초는 그의 어머니 몫이었다. 박씨를 포함한 5형제를 사실상 홀로 책임지며 숱하게 경찰서 유치장으로 끌려다녔다.


    아버지는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숨을 거뒀다. 광복 직전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유증을 오래 견디지 못했다.


    박씨는 15살 때인 1948년 북한 만경대혁명학원에 들어갔다. 항일운동 과정에서 숨진 혁명가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김 주석 지시로 평양에 지은 학교였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군사훈련을 받은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자원해 인민군에 입대했다.

    고지방어전에서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긴 끝에 살아남았고 소좌(소령)까지 진급했다. 1959년 6월 20여년 전 아버지처럼 연락책을 맡아 남파됐다.

    그리 오래 남한에 머무를 계획은 아니었다. 먼저 남파된 지하조직원에게 지령을 전달하고 곧바로 북으로 돌아가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남한 체류가 길어졌고, 남파 6개월 만인 그해 12월 체포됐다.

    박씨는 이승만 정권 당시 민주당 간첩침투 사건인 이른바 '모란봉 사건' 등으로 국가보안법의 굴레를 썼다. 무기징역을 2차례나 받았다.

    대전교도소와 대구교도소 등지에서 34년의 세월을 보냈다. 1993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출소했다.

    북한에서 보낸 시간보다 남한에서 보낸 세월이 더 길어진 박씨는 흑백 사진첩 속에 딸 옥희씨 사진을 지긋이 쳐다봤다.

    박씨가 남파될 당시 생후 100일이 채 되지 않았던 딸은 현재 중년여성이 돼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중국에 사는 조카가 북한을 오가며 딸 사진과 함께 전해줘 알게 된 소식이었다.

    그는 "2007년 평양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행사 때 방북했었다"며 "평양 태권도전당에서 딸을 한번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당연히 딸을 알아보지 못했다. 20∼30m 떨어진 태권도전당 출입문 쪽에서 한 중년여성이 자신을 자꾸 쳐다보길래 이상하다고 생각만 했다.

    나중에 행사가 끝난 뒤 북측 행사 관계자가 딸이라고 알려줬다. 뒤늦게 눈물을 흘렸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양심수후원회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까지 국내에 90여명의 비전향장기수가 있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후 발표된 6·15공동선언에 따라 이들 중 63명이 북한으로 송환됐다.

    그러나 전향서를 쓴 적 없는 박씨는 출소 전 한 교회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기독교를 믿기 시작했다는 이유로 전향자로 분류됐고, 당시 송환자 명단에서 제외됐다.

    지난해 녹내장 수술을 받은 박씨는 올해 초 대장암 진단까지 받았다. 병원에서는 고령인 데다 수술하기도 힘든 부위라고 했다.

    그는 "통원 치료를 받으며 버티고 있지만, 자꾸 아프다"며 얼굴을 구겼다.

    어릴 적 살던 평양으로 돌아가 북에 남은 유일한 혈육인 딸을 만나는 게 박씨의 생애 마지막 소원이다. 아내는 1998년 숨졌다.

    또 자신이 겪은 20세기 민족사를 북한에 가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박씨는 "올해 4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역대 대통령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의 진정성을 느꼈다"며 "이번에는 고향(평양)에 돌아가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언제쯤 소식이 있겠지, 속으로 그런 소망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주 어릴 적 헤어진 딸도 너무 보고 싶다"며 "꼭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권오헌(81)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19일 "이번 판문점 선언에도 남북이 인도주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돼 있다"며 "2000년 1차 송환 때 강제로 전향서를 썼다는 이유 등으로 송환되지 못한 비전향장기수 19명도 이번에는 북으로 보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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