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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먹은 에일리, XL로 조롱당한 CL… '마름 강박 사회'



문화 일반

    500㎉ 먹은 에일리, XL로 조롱당한 CL… '마름 강박 사회'

    '여성의 외모=실력'이란 한국 사회 고정관념 강해
    미디어는 더 다양한 외모를 보여줘야

    4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히든싱어5'에 출연한 에일리가 과거 하루 500㎉만 먹으며 고강도 다이어트를 했던 경험을 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히든싱어5' 캡처)

     

    원조 가수와 감쪽같은 모창 솜씨를 뽐내는 도전자들이 함께 나와 '누가 원조 가수일까'를 맞히는 JTBC '히든싱어5'. 지난 4일 방송에는 폭발적인 성량과 가창력으로 유명한 여성 솔로 가수 에일리가 출연했다.

    원조 가수 에일리를 위협할 정도로 수준급의 실력을 갖춘 도전자들이나, 여전한 솜씨로 무대를 장악한 에일리의 노래보다 더 화제가 된 것은 바로 '에일리의 극한 다이어트'였다.

    모창 도전자로 나온 강고은 씨가 체중을 감량해야만 가수라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는 자신의 일화를 전하다, 하루에 500㎉만 먹으며 헬스를 했다는 에일리의 다이어트 수난기가 같이 언급됐기 때문이다.

    이에, 에일리는 "기사가 났을 때 (몸무게가) 49~50㎏였는데, 정말 아무것도 안 먹고 하루종일 너무 배고팠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어, "너무 슬펐다. 저는 노래를 하는 가수인데… 무대를 서려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게 너무 슬펐다"고 고백했다.

    에일리는 "확실히 체중이 좀 늘어나 있을 때보다 노래가 잘 안 나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너무나도 속상했고, 마른 몸으로 노래는 하는데 제가 제 (실력의) 100%를 못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49~50㎏였을 때, 보기엔 좋았겠지만 사실 제가 제일 우울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에일리는 이제 '보기 좋은' 몸매를 유지하는 데 신경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내 노래에 만족하는 게 더 중요하고, (그걸) 듣는 사람들도 훨씬 더 좋아하니까. 자기가 자신의 몸을 제일 사랑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저음과 고음을 넘나들며, 속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시원한 창법으로 사랑받았던 에일리. 그의 가장 큰 고민이자 부담은, '어떻게 하면 더 멋진 노래를 들려주고 좋은 무대를 만들까'가 아니라, '마른 몸을 유지하며 무대에 설까'였던 것이다.

    ◇ 매번 되풀이되는 여성 연예인의 '극한 다이어트 경험담'

    비단 에일리만의 사례는 아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걸그룹 트와이스 멤버들도 데뷔를 준비할 때 마주한 혹독한 기준과, 고생했던 경험담을 털어놓은 바 있다. 모모는 쇼케이스 무대에 설 수 있는 몸무게에 다다르기 위해 얼음 한두 개만 먹었다고 고백했고, 지효는 중1 때 45㎏ 안에 들어야만 프로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레드벨벳의 웬디는 한 예능에 출연했을 때 아이스크림 먹으러 간 자리에서 "매니저 언니가 날 보고 있어"라며 눈치를 살폈고, 씨스타 소유는 몸을 만들기 위해 메추리알 4개로 버텼는데 독한 다이어트 때문에 체력이 약해졌다고 고백했다. 걸그룹이나 특정 연예인의 이름을 딴 다이어트 식단이 쏟아지고, 전후 사진이 끌어올려지는 것도 예사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CL, 소유, 모모, 웬디 (사진=각 소속사 제공)

     

    지난 3일, 2NE1 출신인 CL의 최근 모습이 공개됐다.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보다 살이 붙은 모습이었는데, 한 언론사가 '이슈'라는 말머리를 붙여 "CL 맞아? 혹시 XL?"라는 제목을 달았다. 살이 조금만 오르면 기본으로 따라붙는 '후덕'하다는 표현도 함께였다.

    '날씬함' 혹은 그를 넘어선 '마름'이 화면에 나오는 연예인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덕목처럼 여겨지게 됐다. 표준 체중이거나 이미 저체중인 이들조차 다이어트를 숙제로 안고 가는 이유다. 열심히 살을 빼 이상적인 몸매에 도달했음을 증명한 이들이 이 경우다. 반면, 정해진 기준에 들지 못하면, 마땅히 질책받아야 할 것인양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된다.

    방송에서는 건강이 우선이라는 상식적인 반응도 나오지만, 그때 한 고생을 두고 안타까워하는 건 잠시뿐이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이들의 끈기와 의지, 정신력을 상찬하며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게 대다수다. 심지어 얼마나 고된 과정을 거쳐 살을 뺐는지 여부를 두고 '프로다움'을 가늠하려는 경우도 있다.

    아예 나서서 걸그룹의 본분은 '예쁘고, 마르고, 리액션을 잘하고, 어떤 상황이 와도 능숙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규정해 준 프로그램이 나오기도 했다. 2016년 2월 설 특집으로 방송된 KBS2 '본분 금메달'은 댄스 실력을 본다고 말해 놓고 몰래 체중을 재, 직접 써 낸 프로필 몸무게와 실제 체중이 얼마나 차이나는지 비교했다. 체력 테스트를 한다는 명목으로 철봉에 매달리게 한 후 표정을 보고 얼마나 '걸그룹답게 예쁨을 유지하는지'를 봤다. 방송 직후 거센 비판을 받았던 이 프로그램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주의'(벌점 1점)를 받았다.

    ◇ '기형적'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마름을 강요하는 사회

    이 모든 문제를 만들어 낸 원인을 한 곳에 돌릴 수는 없다. 사실 마르지 않은 사람에게 보내는 사회적 시선 자체가 곱지 않다. 게으르다, 자기관리를 못 한다는 말이 너무나 쉽게 나온다.

    연습생일 당시 혹은 데뷔 후에도 소속 연예인들에게 날씬한 몸매를 만들고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소속사마저 할 말은 있다. 대중은 물론이고, 연예인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팬들조차 '보기 좋은 외양'을 선호한다는 점을 피력한다. CL을 XL에 빗댄 매체도 사회 전반에 깔린 '비만 혐오'를 반영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가 '마름'만이 옳다는 시각을 확대 재생산한 데 기여한 것만은 분명하다. '후덕', '육덕', '굴욕' 등의 단어를 동원해 가며 마르지 않은 모습을 희화화한 기사를 피한 연예인이 얼마나 될까. 또, 사회적 기준에 벗어나지 않은 몸매와 외모를 방송의 웃음 소재로 삼았던 경우는 얼마나 많았나.

    2016년 2월, 공영방송 KBS는 '본분 금메달'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걸그룹의 '본분'을 알아본다며 몰래 체중을 재고 그 결과를 공개했다. (사진='본분 금메달' 캡처) 확대이미지

     

    문화사회연구소의 이종임 연구원은 '마름 강박' 분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전문성보다는 외모가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들었다. 이 연구원은 "이런 고정관념이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가치관으로 자리 잡았고, 미디어도 이를 바탕으로 해 여성을 읽고 있다. 특히 여성 연예인의 경우 그런 논의가 주류"라고 진단했다.

    최전선에 서 있는 대상은 역시 아이돌이다. 아이돌 연습생의 인권, 교육권, 노동권 등을 공론화한 '아이돌 연습생의 땀과 눈물'을 최근 발간한 이 연구원은 "연습생들이 한 말이 '몸무게는 50㎏을 맞춰 오라'는 거였다. 개별적인 신체 특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여성 몸무게가 50㎏을 넘어가면 날씬하지 않다는 이상한 기준이 잡혀있다. 몸무게의 숫자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노래를 듣기보다는 '보려는' 심리와 미디어 환경 등이 작용하는 점도 있고,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젊은 여성을 바라보는 틀이 너무 획일화돼 있기도 하다"면서 "자신이 가진 아이덴티티, 능력, 사회성 등은 모두 사라지고 외모, 얼굴, 몸 등의 신체 자본만으로 논의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 연예인을 비롯해 젊은 여성들은 무례한 간섭을 받는데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도 이상한 지점이다. '자기관리'를 눈으로 직접, 바로 확인하려는 대중의 이상한 논리가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자기관리가 바로 외모를 가꾸고 몸무게를 조절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 미디어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여성 연예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 사회는 모든 여성에게 작고 소녀 같은 상태를 유지하라는 어떤 명령을 내리고 있다고 본다"며 "여성이 자기 능력을 스스로 알고, 이를 발휘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여성들 스스로 마른 몸매에 집착하고, 비만인 상태를 더 강하게 비난하는 세태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황 평론가는 "(말라야 한다는) 사회적 기준이 마련되면 여성은 따라야 하는 자로서 (그것을) 내면화하는 것"이라며 "강제의 규율을 받는 사람이 어떤 틀을 (자유롭게) 거부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황 평론가는 "실력은 있지만 현재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 다른 신체를 가진 사람이 계속해서 (미디어에) 노출되면 '저런 경우도 있지 않으냐'고 할 수 있다. 근데 어떤 재주가 있든지 일단 마른 몸을 가진 후에야, 어떤 것을 할 것인지 보여주는 게 가능한 상황이지 않나. 그러니 'XL' 같은 질책과 품평을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포털 사이트에 '후덕'을 쳤을 때 나오는 검색결과 화면 (사진=다음 캡처)

     

    미디어는 이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묻자 황 평론가는 "예전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내세운 것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할머니, 임신부, 뚱뚱한 사람, 아이, 장애인 등 각자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무대에 서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TV를 보면 남녀 차이도 심하다. 남성의 외모는 다양해서 전체 생태계를 잘 보여주지만, 여성은 대부분 체형이 (마른 모습으로) 같다. 뚱뚱하지 않은데도 뚱뚱하다고 하면서 나올 때도 있다. 지금 남성 연예인들이 누리는 그 정도의 기준이 여성 연예인에게 적용되기만 해도 꽤 괜찮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황 평론가는 뛰어난 공감 능력과 진행 솜씨를 갖춘 방송인 이금희가 한때 살이 쪘다는 이유로 자기관리를 못 한다는 비난을 들었던 것, 20년 넘게 여성 예능인으로 활약 중인 이영자가 여전히 살집이나 식성 지적을 듣는 것 등을 거론하며 "모두에게 날씬해야 한다는 기준을 요구하고, 이게 당연시되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최소한 미디어에서 이런 모습만은 보지 않았으면 하는 사례가 있는지 묻자, 황 평론가는 "아이돌 오디션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출연자들은) 끊임없이 나는 누구보다 예쁘다, 안 예쁘다 하는 경쟁 속에서 바르르 떨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특히 아이돌 프로그램은 또래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내가 이 사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살이라도 빼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며 "제발 그것만이라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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