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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노잼" 혹평 '인랑'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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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낮 2시가 조금 넘은 때 서울 종로에 있는 한 영화관. 영화 '인랑'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무섭게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젊은 관객 둘이 자리를 뜨면서 나누는 대화가 귀를 울렸다.

    "야, 무슨 영화가 이러냐?" "내 말이."

    앞서 지난달 25일 개봉한 '인랑'은 관객 혹평이 이어지면서 일주일여 만에 상영관을 찾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이날 어렵사리 낮 시간대 상영관을 찾아 영화를 본 입장에서, 이른바 '핵노잼'을 단언하는 위 관객들의 관람평에 왠지 모를 당혹감이 밀려왔다.

    SF 장르를 표방한 '인랑'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익히 봐 왔던, 직관적으로 빠른 이해를 돕는 영화는 아니었다. 상업영화라는 점에서 제작진이 이를 의도했으리라고는 짐작하기 어렵다. 대목인 여름 극장가에 내놓기 위해 서두른 탓에 담금질을 덜한, 무리수가 작용했을 수도 있다.

    다만, 그간 한국영화가 단순한 재미를 넘어 유연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시대의 부조리를 꼬집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짊어져 왔다는 점에서, 우리 역시 다소 불친절하다고 여겨질 만한 '인랑'의 만듦새를 곱씹어 보는 수고로움을 감내할 수도 있을 법하다.

    '인랑'의 무대는 남북이 통일 준비에 들어간 근미래다. 그 와중에 등장한 반(反)통일 무장테러단체 섹트, 섹트를 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찰조직 특기대, 특기대 탓에 줄어든 권력 입지를 다시 찾으려는 정보기관 공안부의 물고 물리는 암투가 이야기의 큰 줄기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한반도 남측을 휩쓸고 있는 반통일 분위기를 전한다. 여기서 '통일'이라는 이슈는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여성' '난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소수자로 치환해도 어색함을 느끼기 어려워 보인다.

    카메라는 섹트, 특기대, 공안부에 자의든 타의든 몸담은 채, '조직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거나 타인을 희생시키는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조명하는 데 집중한다.

    특기대원 임중경(강동원), 의문의 여인 이윤희(한효주), 공안부 차장 한상우(김무열)는 그 이야기 줄기를 뻗어나가게 만드는 주요 캐릭터다.

    극중 중경과 상우는 자신들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긴 한 사건을 함께 경험한다. 그러나 둘은 해당 사건 이후 정반대의 길을 걸으며 인간군상의 한 축을 장식한다. 극 말미 "너와 내가 뭐가 다르냐"고 토로하는 한상우의 말은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세력을 키우려는 '조직'의 냉혹한 생리를 대변한다.

    중경과 상우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윤희는, 상반된 길을 걷는 두 남자의 삶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이를 계기로 스스로 능동적인 삶을 찾아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 세 사람과, 이들 사이에 촘촘히 배치된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영화는 극단의 시대를 살고 있는 '개인' 들의 각성을 웅변하고 있다. 극중 임중경이 부대 침상 옆에 꽂아 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 혁명가 체 게바라의 삶을 그린 '체 게바라 평전'은 중경과 상우의 삶을 가른 결정적인 계기를 짐작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다.

    '인랑'이 그린, 조직의 논리를 들이밀며 무고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시대는, 인간과 인간 사이 우열을 합리화하며 약자·소수자를 향한 혐오로 권력을 키우고, 이들에 대한 학살마저 자행했던 파시즘의 도래를 경고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치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는 "옛것이 죽고 새것이 아직 태어나지 못한 빈자리에 괴물들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람시가 경고한 괴물은 다름 아닌 파시즘이다. 반파시즘 운동을 벌이던 중 무솔리니 정권의 탄압으로 10년 넘게 감옥에 갇혀 있다가 결국 죽음을 맞은 그의 삶은 이를 오롯이 증언한다.

    혹자는 '인랑'을 용두사미에 비유하며 비판한다. 이 비판은 100% 틀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의 메시지는 이를 의도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대의'로도 표현되는 조직의 논리 앞에서 개인의 희생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왜 위험한 것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이 극단으로 치닫는 시대 안에서 '나' 자신, 그리고 내 옆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하나의 무기는 개인의 평등한 가치를 깨닫는 각성의 길이라고 이 영화는 호소하고 있다. 이 점에서 영화 '인랑'을 위한 변명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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