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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 류덕환 "판사는 신이 아니구나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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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 함무라비' 류덕환 "판사는 신이 아니구나 느꼈다"

    [노컷 인터뷰] '미스 함무라비' 정보왕 역 류덕환 ①

    최근 종영한 JTBC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에서 정보왕 역을 맡은 배우 류덕환 (사진=씨엘엔컴퍼니 제공)

     

    지난 16일 종영한 JTBC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는 판사 이야기를 다뤘다. 현직 판사인 문유석 작가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실감 나게 그려냈기에, 넘쳐나는 법정물 사이에서도 자기만의 자리를 굳힐 수 있었다. 무엇보다 딱딱하고 다가가기 어려워 보이는 이미지로 고정된 '판사'도 결국은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는 점을 녹여내 사랑을 받았다.

    제대 후 '미스 함무라비'로 복귀한 류덕환은 극중 가장 판사 같지 않아 보이는 판사 정보왕 역을 맡았다. 중앙지법 최고의 정보통이자 음주가무와 각종 잡기에 능한, 유쾌한 인물이었다. 자칫하면 가볍게만 느껴질 수 있는 정보왕 역을, 류덕환은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그동안 주연을 자주 맡아왔기에, 중심 화자가 아닌 이른바 감초 역을 맡을 궁금해하는 반응도 물론 있었다. 1992년 '뽀뽀뽀'로 데뷔해 올해로 26년차가 된 류덕환에게 역할의 크고 작음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재미난 캐릭터여서 오히려 부담 없이 연기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류덕환을 만났다. '미스 함무라비'를 찍는 동안 누구 한 명하고도 마찰 없이 마친 걸 보면 '즐겁게 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는 그와의 이야기를 옮긴다.

    다음은 일문일답.

    ▶ 제대 후 첫 작품이라 '미스 함무라비'가 더 남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감회… 생각보다 그렇게… (웃음) 다른 일로 안 빠지고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다. 드라마 끝난 지는 좀 됐는데 얼마 전에 저희가 뒤풀이처럼 종방연을 했다. 오랜만에 다 만나서 같이 드라마 봤는데 너무 반가웠다. 진짜 조금은 서먹해졌을 줄 알았는데 막내 스태프까지 모두 다 너무 반갑더라. 너무 신나게 술을 마셨다. (일동 폭소) 아, 내가 진짜 이 드라마 하면서 되게 즐거웠나 보다 했다. 누구 한 명과도 마찰 없이 해 온 걸 보면.

    ▶ 정보왕은 활력소 같은 캐릭터였다. 일 잘하고 똑똑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유쾌했다. 이런 캐릭터를 하면 연기할 때도 더 재미있는지 궁금하다.

    일단 부담이 없었다. 만약 제가 극의 모든 흐름을 끌고 가는 메인 캐릭터였다면, (정보왕처럼) 그렇게 맘대로 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야기가 가진 주제를 담당하는 인물은 많은 것을 고민해야 하는데, 저는 주인공 옆에서 열심히 서포트해주는 역할이었다. 극이 진중하게 가서 관객들이 힘들어할 때쯤 조금 상쾌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류덕환이 맡은 정보왕은 서울중앙지법 최고의 정보통이자 각종 잡기에 능한 유쾌한 캐릭터였다. (사진=JTBC 제공)

     

    ▶ 캐릭터 방향을 잡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나.

    억지로 저를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제가 좋아하는 제 모습을 더 투영하는 것도 아니다. 제가 캐릭터 (구축) 작업을 할 때 딱 2가지는 항상 한다. 무조건 많이 돌아다닌다. 택시 타면 대화를 녹음한다. 지하철, 버스 타고 다니며 계속 사람들을 관찰한다. 제겐 아이템이 널려있는 셈이다. 항상 좋은 영감을 준다. '저 사람은 왜 그러지?' 하는 궁금증을 준다.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이유가 있다는 걸 찾아가는 게 저는 재밌더라.

    또 하나, 학구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있다. 항상 캐릭터의 전사를 쓴다. 얘가 과거에 어떻게 살았을 것이다, 하면서 저 나름대로 뭔가 만들어내는 거다. 얼마나 디테일하게 쓰느냐에 따라 그 깊이는 달라진다. 한 마디 대사를 하더라도 저는 확신이 서 있는 상태로 대사를 칠 수 있는 거다. 남들이 아무도 모른다고 해도. 작품을 할 때 늘 그렇게 한다.

    단순히 제가 투영되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다른 캐릭터로 변신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제가 해 온 모든 캐릭터가 다 그랬던 것 같다. 만약 류덕환(의 모습)이 0.1%도 없는 역할을 하게 되는 날이 오면 저는 연기를 그만둬도 되지 않을까. 그런 날이 없을 것 같아서 이런 말을 하는 거다. (웃음)

    접신한다는 말을 하지 않나. 저는 배우가 무당과 비슷하다는 말을 좋아한다. 예전에는 어떤 역할을 똑같이 하는 메소드 연기가 유행했지 않나. 완벽하게 해도 100%란 없다. 그 사람이 될 순 없다. 100% 채워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게 좋은 배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같다. 절대 안 될 걸 알기 때문에 목표치로 두게 된다.

    ▶ 택시기사님과 이야기 나눈 에피소드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택시기사님들과 가장 자주 만나는 셈이다. 정말 여러 이야기가 있더라. 과거에 본인 사업이 잘 됐던 분, 성공했던 분도 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다가도 제일 마지막에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잘될 때 제일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한다. 맞춰줘야 할 사람도 많았고. 지금은 손님들을 태우지만 원하는 곳까지 잘 모셔다 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는 이야기도 하고, 운행 끝나고는 전화하고 싶을 때 가족에게 전화도 한다면서. 이번에 한 보왕이도 마지막에 진짜 원하는 행복을 겪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뭔가 얻었다. 저는 (누군가로부터) 어떤 행동이나 말투를 짚어낸다기보다 작은 부분을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입히려고 한다.

    ▶ 혹시 택시 탔을 때 기사님이 아무 말을 안 하면 굳이 말을 걸지 않는 편인가.

    따로 노력하진 않는다. '감사합니다' 하며 타는데, 제가 인사드리기 전부터, 택시 탈 때부터 감이 온다. 자료 수집하고 있다고 밝히고 대화 녹음해도 되냐고 여쭤본다. (웃음) 그냥 재밌다. 그때 얘기가 재밌으면 다시 들어보고 싶다. 진짜 그분의 이야기가 궁금할 때도 있어서. 들으면 제가 진짜로 웃는지 맞춰드리려고 웃는지까지 목소리 톤에서 느껴진다. 나중에 들어보면 '와, 나도 약았구나. 나보다 어르신인데 맞춰드린다고 (반응을) 솔직하게 안 했네' 이런 생각도 한다.

    류덕환은 극중 임바른 판사 역의 김명수와 실제 친구 같은 케미를 보여줬다. (사진=JTBC 제공)

     

    ▶ 캐릭터를 만들 때 주변 사람들에게도 힌트를 얻는지.

    정말 많이 받는다. 보왕이 캐릭터는 지극히 평범하게 사회생활 하는 친구다. 그런 건 기자님들도 다 가진 모습이고, 사회생활 했던 사람이라면 다 겪었을 거다. 유대관계를 위해 하기 싫은 말도 해야 할 때가 있지 않나. 예를 들어 딱히 좋아하는 배우가 아닌데 인터뷰 나갈 때도 있지 않나. 그 사람에 대해서도 검색해야 하고. (웃음) 지금도 '류덕환 되게 재미없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고. (일동 폭소)

    보왕이라는 아이 자체가 사회성이 좋다. 중요한 건 배려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워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절대 피해를 끼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캐릭터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좋은 부분이 제 친구들에게도 있어서 많이 도움받았다.

    ▶ 실제로 정보왕과 비슷한 점도 있나.

    (성)동일 선배님이랑 저랑 코미디에 대한 철학이 일맥상통하는 게 있다. 다이얼로그(대화)는 깨뜨리지 말자는 거였다. 그건 무조건 전달하는 게 맞는 거다. 작가님이 혼자 생각으로 쓰신 글 외에도 널려 있는 소품들, 내가 입은 의상과 헤어, 공간 등 이런 것들을 다 봤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제가 다 만들어서 하는 게 아니다. (정보왕의 경우도) 어쩔 수 없이 제가 가진 무언가를 통해 유쾌함이 나온 것이다. 애드립에도 제 모습이 조금씩은 담겨 있다고 본다.

    ▶ 기억에 남는 애드립 장면이 있다면.

    애드립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제가) 말을 잘 만들어내는 사람도 아니고. 그 당시에 (애드립을) 해야 할 것 같아도, 절대 잘못 선택하면 안 된다. 개인의 욕심으로 가면 안 된다. 웃기려고 하는 게 가장 위험하다. 관객들이 좋아하셨던 제 모습은 임바른(김명수 분) 친구로서 보여줘야 하는 그런 가벼움이었다. 명수가 저를 봤을 때 선배이고 형이지만, 극중에선 너무 오래된 친구이지 않나.

    예를 들어 둘이 있으면, 아무리 일적인 이야기를 한다 해도 임 판사라고 안 할 것이다. 누가 뭘 잘하면 박수치고 칭찬하겠지만 진짜 친구 사이라면 안 그럴 것 같다. '어쩌라고~' 이러면서 넘길 것 같다. 객관적인 입장으로 한 발짝씩 떨어져서 보는 연출, 작가와 다르게 배우는 배우 본인이 가지는 힘이 있다. 그런 게 제가 표현했던 애드립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배우 류덕환 (사진=씨엘엔컴퍼니 제공)

     

    ▶ 김명수 씨가 지난 인터뷰에서 성동일, 류덕환 씨의 애드립을 보고 부럽다고 했다. 아직 부족하지만 자신도 많이 배우려고 한다면서.

    저는 명수가 그런 말을 하는 게 멋져 보인다. 자기 부족함을 드러내서 이야기한다는 건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자기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걸 되게 스스럼없이 얘기한다는 것, 언젠가는 이 부분도 멋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정말 너무 멋있는 동생이자 친구고 동료다. 이 친구는 아이돌이라는 집단에 있었다. 그 집단은 정말 멋있게 짜인,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칼군무를 하고 항상 멋있음과 예쁨을 보여줘야 하는 곳이다. 아이돌을 하면서 멋있음을 표현하는 것도 알고 있고, 배우라는 새로운 길에서 자유롭고 편하게 하는 것도 배우고 있다. 앞으로도 잘해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현직 판사가 쓴 작품이라 판사들의 일상이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됐다는 평이 있었다. 작품을 찍으면서 판사들의 삶을 새롭게 이해하게 된 부분이 있나.

    저도 판사 역이라 그런 걸 느껴보고 싶었는데 재판을 한 적이 없어서. (웃음) 법복도 다 맞췄는데… (일동 폭소) 확실히 판사도 인간이라는 건 알았다. 판사는 우리에게 답을 내려주는 신이 아니구나, 하고. 두 부류 인간의 이야기를 듣고, 모든 의견을 종합해서 판결을 내리긴 하지만 (판사도)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 자기가 가진 성향이 됐든, 자기가 가진 선(善)에 대해 치중하고, 자기를 동화시킬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감정적 동물이다. (판사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게 해 준 작품이었다. <계속>

    (노컷 인터뷰 ② 류덕환, 한때 드라마 작업 겁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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