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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너무도 한심한 '돈스코이호' 보물선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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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너무도 한심한 '돈스코이호' 보물선 논란

    신일그룹이 지난 15일 오전 9시 50분께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서 1.3㎞ 떨어진 수심 434m 지점에서 돈스코이호 선체를 발견했다고 17일 밝혔다. (사진=신일그룹 제공)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된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를 둘러싼 논란을 바라보며 존 버거(John Berger)의 산문 <망각에 저항하는="" 법="">이 떠올랐다.

    그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투기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전체주의적 사회질서에서 미디어는 끊임없이 정보를 폭탄처럼 쏟아 붓는다”면서 “하지만 그 정보들은 대부분 계획적인 교란에 불과하며, 진실로부터, 근본적이고 다급한 것으로부터 우리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것들이다”고 꼬집는다.

    실제로 언론들은 돈스코이(Dmitri Donskoii)호를 인양하겠다는 기업의 발표와 그 배에 150조원 규모의 금괴가 실려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근거로 지난주 내내 관련 정보를 폭탄처럼 쏟아 부었다. 냉정하게 돌아보면 돈스코이호 인양이라는 뉴스의 소재는 대중의 호기심에 편승한 것뿐이었다.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것도, 근본적이고 다급한 것도 아니었다. 정작 미디어 종사자들조차 그런 정보가 시민들의 의식을 계량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언론이 전한 돈스코이호의 인양과 금괴 소문에 대한 정보 역시 결국 ‘한번 보여 지고 나면, 하나의 구경거리는 다른 구경거리로 아무 맥락도 없이 그저 멍할 정도의 속도로 대체될 뿐’이라는 존 버거의 지적 그대로였다. 호기심에 편승했을 뿐, 본질 혹은 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돈스코이호의 본질은 금괴가 실려 있는 보물선이 아니다. 동아시아를 둘러싼 열강의 패권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과 그 전리품으로 대한민국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게 한 사료(史料) 인 셈이다. 돈스코이호는 역사적 실체다. 침몰하기까지의 궤적을 거슬러 올라가면 진실이 드러난다.

    일본 해군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제독이 지휘하는 연합함대가 쓰시마 해전에서 38척 전함으로 구성된 세계 최강의 발틱함대를 궤멸시킨 것은 1905년 5월 27일이었다. 발틱함대는 무려 21척이 격침되고, 약 5천명의 수병이 전사하고, 6천100여명이 포로가 되는 치욕적인 참패를 당했다.

    러시아 발틱함대 소속의 1급 철갑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Dmitri Donskoii)호는 1905년 러일전쟁에 참전했다가 일본해군의 공격을 받고 울릉도 인근에서 침몰했다. (자료사진)

     

    돈스코이호는 이 참혹한 궤멸의 현장에서 탈출해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해 북북 방향으로 항진했다. 하지만 추격해 오는 일본 함대의 공격으로 선체가 부서지고 사상자가 늘어나자 울릉도 앞바다에 이르러 스스로 침몰시키는 결단을 내렸다. 발틱함대 최후의 배가 수장되면서 러·일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돈스코이호의 침몰과 함께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을 거머쥔 일본은 두 달 뒤인 1905년 7월,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하고 일본은 한국을 지배한다는 밀약을 체결했다. 이것이 '가쓰라·태프트 협정'이다. 이 밀약에 따라 일본은 5년 뒤인 1910년 8월 22일 한국을 강제로 합병해 식민지배에 들어갔다. 이날 대한민국은 돈스코이호처럼 수장됐고 세계지도에서 사라졌다.

    그 후 100여 년의 긴 세월이 흘렀다. 지금 동아시아 정세는 100여 년 전 이 지역에서의 패권을 둘러싸고 열강들이 벌인 각축과 비슷하다. 동북아의 해양 패권을 둘러싼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은 이미 진행 중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러시아 태평양함대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일본 요코스카에는 미국 7함대가, 사세보에는 일본 자위대 최정예 해군함대가 있다.

    그러나 언론과 시민들은 돈스코이호에 대해 ‘공식적으로 말해지는 것들과 말해지는 방식이 스스로를 일종의 기억상실에 빠져들도록 부추긴다’는 존 버거의 지적을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돈스코이호가 발산하는 묘한 호기심에 빨려들어가 모두를 ‘망각상태의 시민’으로 축소시킬 뿐이다. 여전히 본질과는 거리가 먼 관련 정보를 폭탄처럼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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