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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부자 사망' 이들은 왜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나



사회 일반

    '남원 부자 사망' 이들은 왜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나

    "주인할머님 정말 죄송합니다" 남원에서 숨진 지 한달 여 만에 발견된 A(71)씨와 아들(37)이 남긴 돈봉투. 봉투 안에 121만 원이 들어 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사진=자료사진)

     

    지난 3일 오후 1시 16분쯤 전북 남원의 한 주택에서 A(71)씨와 아들(37)이 숨진 지 한 달여 만에 발견됐다.

    현장에는 121만 원이 든 종이봉투가 놓여 있었다. "(집)주인할머님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짧은 글귀가 이들 부자의 마지막 인사였다. (관련기사: CBS노컷뉴스 18. 7. 4. '주인 할머님 죄송합니다' 월세 봉투 남기고 세상 떠난 부자)

    집주인 A씨는 "아버지나 아들이나 참 착해서 햇수로 16년째 살면서도 생전 큰 소리 한 번 안 났다"며 "가난하게 살면서도 주변을 챙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정부는 기초생활수급자인 이들 부자에게 월 85만 원 가량의 생계급여를 지급했다.

    보건복지부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정한 '2018년 기준중위소득'의 30%에 해당하는 돈이다. 그밖에 주거급여와 의료급여가 함께 지원됐다.

    여기서 중위소득이란 전국민을 100명이라고 가정할 때 소득 규모순으로 정 가운데인 50번째 사람의 소득이다. 기준중위소득은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심의·의결을 거쳐 고시하는, 말하자면 '인위적으로 수정된' 중위소득이다.

    A(71)씨와 아들(37)이 살던 전북 남원 주택. (사진=김민성 기자)

     

    한편 85만 원 가량의 현금성 급여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들 부자가 극심한 생활고를 겪어야 할 정도의 금전적 압박을 겪은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아들이 근로활동이 가능한 30대였다는 점도 이러한 주장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남원시에 따르면 A씨는 수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이었다. 아들은 오래 전 결핵과 우울증을 앓았다. 그는 가장 노릇을 하기 위해 지난 2013년 자활근로에 참여했으나 아버지 간병 때문에 6개월 만에 그만뒀다.

    정부에서도 아들이 근로능력은 있으나 경제활동에 참여하기 힘든 여건에 처해 있다고 보고 조건부 수급(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에게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조건을 걸고 생계급여를 지급하는 일)을 유예했다.

    이들 부자의 죽음 이면에 금전적 압박이 없지 않다는 방증이다.

    지난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른바 '송파 세 모녀'가 집주인에게 남긴 메모. (사진=자료사진)

     

    수년 전 한 안타까운 죽음이 복지제도 개편의 도화선이 됐다. 지난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모녀는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어떤 사회안전망의 도움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같은 해 12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맞춤형 개별급여' 제도가 도입됐고, 지급기준 역시 최저생계비에서 기준중위소득으로 바뀌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총 수급자는 163만 명으로 나타나 지난 2014년 133만 명 대비 30만 명 증가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형표 전 장관이 이끌던 복지부는 '송파 세모녀법, 국회 본회의 통과'라는 제목의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복지대상자) 선정기준을 다층화해 탈수급 유인을 제고하고, 급여별로 특성을 반영하고, 상대적 빈곤관점을 고려했다"며 "보장수준이 현실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그러나 비극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지난 2015년 기초생활수급자인 70대 노부부가 신변을 비관해 대구 대명역 지하철역에서 투신해 숨졌고, 이번에는 남원에서 기초생활수급자 아버지와 아들이 숨진 지 한 달여 만에 발견됐다.

    지난 5월 1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기초생활수급자 급여 현실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빈곤사회연대 제공)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은 "지난 2015년 7월 기준중위소득 개념을 도입하면서 당시 정부는 생계급여의 인상률이 더 좋아질 거라고 예측했지만 기준중위소득의 평균인상률보다 종전 최저생계비의 평균인상률이 오히려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7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후 최근 4년간 기준중위소득 평균인상률은 2.30%로, 지난 2000년부터 2015년 개정 전까지의 최저생계비 평균인상률 3.90%보다 1.6%p 낮다.

    더구나 지난해와 올해의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은 각각 1.73%와 1.16%다. 생계급여 선정 기준(현행 기준중위소득의 30%)도 개정 당시 28%에서 고작 2%p 증가하는데 그쳤다.

    그 결과 남원 A씨 부자처럼 기초생활수급자로 구성된 2인 가구에게 지급되는 생계급여는 법 개정 이후 햇수로 4년째를 맞는 지금 고작 월 5만 6천 원 정도 늘었을 뿐이다.

    김 사무국장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생계급여가 기준중위소득의 최대 30%에 맞춰 지급되는 상한선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중간 정도 버는 사람의 30% 정도의 소득만으로 생활하다보니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낮은 생활수준에 꽉 매일 수밖에 없다"며 "기초생활수급자들이 깊은 우울감에 빠져 미래 계획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아예 사회활동을 포기하는 등 가난이 낳는 부가적인 문제들을 외면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에서는 여전히 복지사각지대가 많아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을 높이는 게 쉽지 않다고 하지만 수급자 선정 기준과 보장 수준은 함께 개선이 돼야 한다"며 "둘은 함께 풀어 나가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 2015년 7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전 당시 최저생계비가 당시 중위소득에 비해 점점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 국민들 소득에 비례한 기준중위소득을 복지대상자 선정 기준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고 법 개정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법 개정 후로 우리나라 중위소득 자체가 그다지 오르지 않으면서 생계급여의 증가폭도 적었고,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기준중위소득을 책정하는 과정에서도 위원회 차원의 재량값이 그리 많지 않았다"며 제도적 결함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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