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부터 세월호를 기억하는 동시에 현재진행형의 참사로 인식하고자 기획초청공연을 해온 '혜화동1번지 6기 동인'이 올해는 세월호와 관련 없이 쓰인 고전을 원작으로 10주간 세월호를 이야기한다. 이 역시 세월호를 기억하고 사유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세월호로 우리의 세계가 재구성되었듯 이전 창작물 역시 '세월호'라는 관점을 통해 재구성하는 시도이다. 공연을 마친 뒤 연출에게 직접 들은 뒷이야기들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세월호는 '그곳'에 있는데, 달라진 건 당신일지도" - 연극 '벡사시옹+10층' 윤혜진 연출
② "'세월호'는 기억하면서, '남은 자'는 잊지 않았나" - 연극 '행복한 날들' 송정안 연출
③ "그래도 사람이 사람을 먹는 일은 그만두어야" - 연극 '광인일기' 김수정 연출
④ "계속 시도해야죠, 닿지 않고 노력만 남을지라도" - 연극 '키스' 신재훈 연출
⑤ "그럼에도 나는 이 절망 속에서 너를 희망한다" - 연극 '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송경화 연출
⑥ "보는 법을 배우면, 이 무너진 현실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 연극 '말테' 유수연 연출
⑦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를 변화시킨 힘, 그것은 인간애" - 연극 '한여름 밤의 꿈, 너머' 백석현 연출(계속)
연극 '한여름 밤의 꿈, 너머'. (제공 사진)
세월호와 관련 없이 쓰인 고전을 원작으로 삼아, 세월호의 시각으로 재구성한다는 기획 '세월호 2018'. 이 기획의 프로그램 전체 목록을 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 바로 '한여름 밤의 꿈, 너머'였다. 나머지 9개 작품은 애초 모르거나 제목만 아는 정도인데,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낭만희극 <한여름 밤의 꿈>은 너무도 익숙해서 어떻게 바뀔지 자못 궁금했다.
백석현 연출은 연극에서 예상치도 못한 장치 두 가지를 설치했는데, 첫째는 배우들을 아역으로 캐스팅한 것, 둘째는 무대 바닥에 10원짜리 동전을 빼곡히 깐 것이다. 이는 순수함의 상징인 아이들과 탐욕의 상징인 돈의 대비를 통해, 연극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극대화하는 시도이다.
세월호 참사에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더 많은 이득을 얻고자 탐욕을 부린 사회 각 이해관계자들의 욕심이 집합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한정한 탐욕의 이를 드러내는 자본주의 체제를 부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연출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련이나 난관을 극복하는 행위들 역시 지금의 이 체제를 딛고 일어서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 극복의 힘을 '인간애'에서 찾는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한 걸음씩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추동력을 '인간애'라고 지목한다. 그리고 그 인간애를 관객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배우가 아역이라 판단, 캐스팅했다.
"사랑의 가능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인간 그 자체라면, 그리고 사랑과 가능성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배우들이라면, 그 존재만으로도 인간의 사랑과 가능성을 드러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힘의 원천을 잉 아이들을 통해 발견하였다." - 연출의 글 中.
아역들의 연기력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연출의 의도대로 오히려 성인 배우가 아니었기에 관객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파고들어오는 울림이 있었다. 바로 그 존재만으로 그러했다. 특히 연극 말미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백미였다.
"요정들아, 날이 샐 때까지 이 공간을 춤추고 다녀라.
우리들은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할 것이다
남겨진 이들에게도 태어날 아이들에게도 영원한 기억으로 이어지도록
어서 날아가 머뭇거리지 말고
동이 트고 일상의 낮이 되면 노래할 수가 없다
요정들아, 각자 흩어져서 온 세상을 샅샅이 다녀라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맹세를 얘기할 것이다
너희를 감시하는 눈이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가려진 진실 전해지도록
어서 날아가 머뭇거리지 말고
동이 트고 일상의 낮이 되면 돌아올 수가 없다
어서 날아가 머뭇거리지 말고
그날 볼 수 없고 그날 들을 수 없었던 진실을
모두가 알게 하자, 이어 태어날 아이들에게도"
다음은 백석현 연출과 1문 1답.
백석현 연출. (제공 사진)
▶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세월호의 시각으로 재구성한다고 했을 때, '이 작품을?'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한여름>= "처음 '세월호 2018' 기획회의에서 세월호와 상관없이 쓰이고, 동시에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는 고전을 하자고 했을 때부터 고민했다. 지난해 기억과 기억의 방식에 대한 공연을 만들었다. 올해는 우리 안에 내재된 세월호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들여다볼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이 작품을 선택했다.
세월호 사건 이후 한국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들이 어떤 힘에 의해 변화로 이어졌다. 이 힘이 무엇인가 고민했다. 결국 인간이 인간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 시련 속에서도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보편적 사랑인 인간애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다룬 작가가 셰익스피어이고, 동시에 상상력이 필요하다 싶어 고른 게 그의 <한여름밤의 꿈>이다.
원 텍스트에는 두 쌍의 남녀가 국법이나 다름없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라는 마음을 지키려고 한다. 죽음의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사랑을 중요시한다. 이런 모습이 내가 목포신항을 갔을 때 만났던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의 마음이자 모습같았다."
▶ 배우로 아이들을 캐스팅했다. 어린이 배우들과 작업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기준이 필요하다. 내가 기준으로 삼은 건 연극성이다. '드라마 텍스트의 플롯', '역할 연기의 수행성', '메타씨어터의 효과' 등. 이 세 가지 중 '드라마 텍스트의 플롯'은 사랑 이야기를 중점으로 하고, 나머지는 걷어냈다. '역할 연기의 수행성'과 관련해서는 어떤 배우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시련을) 이겨 내는 모습을 보였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이 연령대(8~19세)의 배우들을 캐스팅하게 됐다. 세월호는 기존 질서들에 의해 일어난 일이다. 때문에 기존 질서를 거부하는 작업들을 해오고 있는데, 이번에는 나이를 무너뜨리고 싶었던 부분도 있어, 배우 연령대를 다양하게 했다."
연극 '한여름 밤의 꿈, 너머'. (제공 사진)
▶ 아이들과의 작업은 어떠했나, 힘들지 않았나.= "아이들과는 처음으로 작업해봤다. 힘든 점을 굳이 꼽자면 두 가지가 떠오른다. 일단 캐스팅이 어려웠다. 과정에서 여러 각도의 고민이 요구되었다. 두 번째는 연습을 시작하자고 스무 번은 말해야 시작한다는 거.(웃음)"
▶ 세월호와 관련된 공연이라는 설명을 듣고도 연극을 하겠다고 하던가.= "캐스팅하고 난 뒤 바로 이야기했다. 혹시라도 거부감이 들거나 중간에 생각이 바뀔 것 같다면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아역 배우의 부모님들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참여해주셔서 오히려 놀란 부분도 있다."
▶ 아역 배우들은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 "세월호에 대해 네 번 정도 이야기한 것 같은데, 반응은 다양했다. 고등학생 배우는 노란리본을 만들기도 한 친구더라.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을 친구라고 생각하며 아파했다. 이야기할 때마다 울 것 같았다.
초등학교 2학년 배우는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아파했다.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대답 했다. 기사를 통해 가끔씩 보고 있다고 답하더라. 가장 어린 배우는 세월호에 대해 전혀 몰랐다. 아이들이라는 점을 고려해 최대한 어둡지 않게 이야기했는데, 듣고 나면 다들 축 가라앉았다."
연극 '한여름 밤의 꿈, 너머'. (제공 사진)
▶ 무대 바닥에 10원짜리 동전들을 깔았다. 어떤 의미인가.= "드라마 텍스트에 적힌 시각적 이미지와 세월호를 무대에서 어떻게 연결 지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세월호는 자본주의라는 체제에서 (탐욕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기에, 그 밑바탕 혹은 기저에 깔린 자본을 표현하고자 했다. 우리는 그 자본을 딛고 있고, 자본은 여전히 한 길을 향해 가고 있다. 고난과 역경 그리고 극복까지도 그 자본 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 전부 얼마인가.= "100만 원이다. 내 관심사는 공연 마친 뒤 계수했을 때 얼마나 줄어들까이다. 아이들이 동전을 가져간다.(웃음)"
▶ <한여름밤의 꿈>이라는 원래 제목에 '너머'를 붙였다. 그 의미는.한여름밤의>=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그런 마음으로 부딪힌다면 어떤 일이든 해결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원 텍스트를 통해 사랑의 관점으로 난관을 이겨나가는 법을 배웠다면,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이 최종적으로 관객의 마음에 닿고, 이 텍스트 너머, 작품 너머 세월호를 마주하기를 바랐다."
※ 7주차 공연 '한여름 밤의 꿈, 너머'는 3일부로 공연이 끝났다. 7주차인 이번 주에는 '셰익스피어 소네트'가 6월 7일부터 10일까지 대학로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한다. 1만 원~1만 5000원.한여름밤의>한여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