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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릴레이] '만능 뮤지션' 서사무엘 "음악을 정말 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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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힙합릴레이] '만능 뮤지션' 서사무엘 "음악을 정말 잘 하고 싶다"

    <힙합 릴레이=""> 37번째 인터뷰 주인공은 레디가 지목한 서사무엘입니다.

    (사진=크래프트앤준 제공)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 랩, 보컬이 모두 가능한 만능 뮤지션 서사무엘(Samuel Seo·본명 서동현). 래퍼로서 먼저 음악 팬들에게 존재감을 알린 그는 마치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색깔을 드러내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왔고, 2016년에는 1집 '프레임웍스(Frameworks)'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상을 받으며 자신의 가치를 한층 높였다. 소신과 개성을 녹인 음악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서사무엘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채찍질 하고 있다. "70세쯤이 되어서야 원하는 만큼의 실력을 갖춘 뮤지션이 되어있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 최근 엠넷 음악 예능 '브레이커스'를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 서사무엘. 프로그램 촬영과 음악 작업으로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와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반갑습니다. 소개를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음악을 하고 있는 서사무엘이라는 사람입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방송 녹화를 하면서 바로 뒤에 나올 싱글과 음반 작업을 병행하고 있어요"

    ▶엠넷 '브레이커스'에 출연 중이시죠. 출연 계기가 궁금해요.
    "그동안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 노출될 기회가 많이 없기도 했거니와 이번 기회를 통해 저의 존재를 더 많은 분들에게 더 알리고 싶어서 출연을 결정했어요"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직접 경험해보니 어떠신가요.
    "경쟁 구도프로그램을 처음해보다보니 섣불리 '이렇게 말하면 되겠지?' 라고 판단한 측면이 있고,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오해를 좀 받게 된 것 같아요.

    저는 방송이고 배틀이다 보니 그 포맷에 맞춰서 함께 방송을 성공시키고 싶었다는 생각이었어요. 평소엔 어디 가서 '제가 이길 수 있어요' 이런 말 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악편(악마의 편집)'의 희생양이라고 하긴 좀 그래요. 서로의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서 마찰이 생긴 것일 뿐, 제작진은 제작진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고 저는 예능이자 경연 드라마 출연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인 거니까요. 어쨌든 네티즌들이 누군가를 함부로 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번 방송 출연이 서사무엘의 향후 행보에 미칠 영향은.
    "많은 플랫폼에 노출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마음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호되게 당했죠. (미소). 제작진분들은 경연 특성상 제가 강하게 말하기를 원했고, 저도 거기에 맞춰서 그들이 좋아할 말을 했고, 자연스럽게 그게 방송에 쓰였어요. 그런 경험을 하면서 느낀 건 '아, 이럴 필요가 없구나'에요. 앞으로는 그냥 있는 그대로 해야겠다는 가르침을 준 프로그램이라고 할까요."

     

    ▶본격적으로 서사무엘 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어린 시절에는 피아노를 쳤다고 들었어요.
    "다섯 살 때 어머니가 사주셔서 그때부터 혼자 쳤죠. 대학갈 때까지도 피아노를 계속 칠까 말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저보다 잘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으니까 난 그냥 잘할 수 있는 것에만 충실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때부터 전공을 작곡으로 변화시키려고 했죠"

    ▶일본, 캐나다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던데.
    "일본은 아버지가 일본계 회사에 다니셔서 어릴 때 가족 이민차원으로 갔었어요. 중간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시 돌아왔고요. 사실 어릴 때 그런 이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하진 않잖아요.

    중학교는 캐나다에서 다녔는데 그때가 유일하게 공부가 재밌던 시기에요. 빅토리아라는 섬, 시골에 살았었는데 일단 선생님들이 공부를 하게끔 유도를 잘 하고 시간과 여유가 많아서 제 발로 공부를 하게 되더라고요. 학교 갔다 와서 스케이트보드 타고, 그 다음엔 뭐하지, 공부할까? 이런 패턴이었다고 할까"

    ▶활동 초기에는 정체성이 래퍼에 가까웠었잖아요. 원래 랩을 좋아했었나요.
    "고1 때 랩을 처음 접했어요. 고등학교는 한국에서 다녔는데, 당시 학교에 힙합동아리가 있었거든요. 형들이 랩 하는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져서 형들에게 배우기 시작했었죠. 당시 랩을 배우면서 이것, 그러니까 랩도 좋지만 더 넓게 보고 싶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었고, 자연스럽게 작곡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기도 해요"

    ▶빅딜스쿼드, 뉴블락베이비즈, 개릴라즈, 아싸커뮤니케이션, 크래프트앤준,,,그동안 둥지를 자주 옮긴 편이에요.
    "음, 그 중 둥지라고 생각하는 곳은 빅딜 밖에 없어요. 처음 한국 힙합을 들을 때 접한 래퍼가 딥플로우와 데드피였거든요. 취향이 생기기도 전에 처음부터 센 걸 훅 접한 거죠. (웃음). 그들과 같이 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빅딜에 들어가게 되면서 인생의 첫 목표를 이뤘었기에 의미가 있죠.

    그 뒤로는 사실 둥지라기 보단 친구 같은 느낌이 강했는데, 좋고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보는 방향성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결국에는 멀어지게 되더라고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부분을 더 강하게 느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흐름을 이어가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고 할 수 있고요"

    ▶현 둥지인 크래프트준에서 활동한 이후부터 서사무엘 음악의 결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전에 음악을 관두려고 했었으니까요. 목동에 있는 식당에서 알바를 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당시에 음악의 길이 저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갈팡질팡했던 시기이기도 한데, 그런 시기를 겪은 뒤 모든 걸 내려놓고 만든 게 1집이에요. 꾸민 것 하나 없는 날 것 그 자체였죠"

    ▶문득 요리에 대한 관심이 여전한지 궁금하네요.
    "요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군대에 있을 때에요. 군대는 조금 일찍 다녀온 편인데, 유명하지도 않은데 미뤄서 뭐하나, 그리고 갔다 와도 될 놈은 된다 뭐 이런 생각으로 빨리 다녀왔어요. 아무튼 군대 때부터 관심을 가지게 된 요리는 지금도 너무 재밌어 보이는 분야에요. 언젠가는 운영을 하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가서 해먹을 수 있는 저만의 식당을 만들고 싶기도 해요"

    ▶다시 음악 이야기로 돌아가서 어렵게 마음을 다잡고 만들었던 1집을 잠시 소개하자면요.
    "1집은 10번트랙 'G O Y O'라는 노래가 나오기까지의 준비 과정 같은 느낌의 앨범이라고 간단히 설명할 수 있어요. 저를 이야기한 곡인 'G O Y O'는 제가 지금도 너무 듣기 좋아하는 노래죠"

    ▶내친김에 2집도 소개해주세요.
    "2집은 '기행문' 같은 느낌의 앨범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에서 노숙자를 만나고 나서 썼기 때문이죠. 당시 그 노숙자가 저한테 담배를 빌려갔었어요. 그 과정에서 대화를 좀 나눴는데 담배 한개피 없는 분의 당당한 태도가 굉장히 멋지더라고요. 본인이 멋지게 살아온 얘기하는데 '오, 인정!'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 동시에 굳이 스스로 주눅들어할 필요 없다, 떳떳하자, 뭐 그런 생각들이 들었고, 그래서 '자아확장'을 주제로 잡은 앨범을 만들게 됐고요"

    ▶그전까지 주눅 들어 있었던 이유가 있나요.
    "1집을 내기 전까지, 그러니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상을 받기 전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저에게 했던 말이 '너 구려', '별로야' 였어요. 그래서 한동안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었고, 그런 반응이 익숙해져서 난 구린 놈이겠거니 했었죠"

    ▶가사 주제도 그렇고 음악 스타일도 그렇고, 서사무엘의 음악 세계는 참 다채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별 생각 없이 만들어요. 일단 그냥 만들고, 제 귀에 좋게 들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음악을 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 있나요.
    "개인적으로 음악을 일정 수치 이상 만들 수 있는 수준에 다다르면, 그때부터는 취향의 차이로 인해 스타일이 갈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음악 스타일적으로 영향을 받은 뮤지션은 없고, 그 대신 삶의 태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사는 게 즐거워 보이거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보면 참 부러워요"

    ▶작업 스타일은 어떤가요. 가사를 먼저 쓰는 편이신지. 중점을 두는 부분이라든지.
    "제가 쓴 일기를 소리로 바꾸는 것, 그 뿐이에요. 언젠가부터 일기를 쓰고 있고 있어요. 노트에 쓸 때도 있고 폴라로이드에도 사진에 쓸 때고 있죠. 제가 쓴 일기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음악으로 만든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아, 한글에 대한 욕심은 좀 있어요. 음악으로 한글을 널리 알리고 싶거든요. 아직까지 완벽하게 패치가 안 되었는데 언젠가 한글 가사로 어디 나가도 인정받는 아티스트가 되는 게 꿈이에요. 예전부터 이런 생각을 막연히 가지고 있었는데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어요. 갈수록 뿌리를 찾아가게 된다고 해야하나"

    ▶그동안 다른 뮤지션들과 협업을 많이 했죠. 그러면서도 본인의 앨범에는 피처링을 많이 쓰지 않았고요.
    "이벤트성으로 곡 작업을 같이하는 건 굉장히 좋아해요. 불러주면 가야죠. (웃음). 그런데 제 앨범에 피처링을 잘 안 쓰는 이유는 제 앨범이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보면 앨범은 자기만의 책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대한 다른 사람의 손이 안 섞인 저만의 것으로 앨범을 채우려고 하는 편이죠. 제 이야기는 제가 해야 진정성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정규 앨범에 피처링을 많이 쓰는 뮤지션들이 잘 못됐다는 건 아니고요. 제 방향성과 다를 뿐인 거죠.

    아, 그런데 연주자들과는 좀 더 다양한 교류가 필요하다고 요즘 들어 느껴요. 악기 하나를 연주하더라도 그들이 저보다 더 풍부하게 잘 하시니까요. 그런 면에서 완성도를 생각해서 (연주자들의 앨범 참여를) 폭넓게 바라보려고 해요"

    ▶얘기 나온 김에 뜻 깊었던 협업곡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이제 곧 나올 곡 중에 있을 거예요. 그런데 아직 말씀은 못 드려요. (미소). 이미 나온 곡 중에선 저와 동갑내기인 기리보이와 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같은 곡의 해석을 다르게 해서 기리보이 앨범에 'LO:OP'를 제 앨범에 'DO:OOM'을 실었는데 정말 재밌는 연타 작업이었어요"

    ▶음악 활동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때는 언제에요?
    "사실 음악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이 갈수록 없어져서 고민이에요. 예전에는 막연히 음악을 만들고 내는 게 즐거웠으면, 이제는 그게 아니에요. 내가 이거밖에 안 되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거든요. 한계에 봉착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할까.

    전 주목 받는 것도 물론 좋지만 음악을 정말 잘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70세 쯤에는 원하는 만큼의 실력을 갖춘 모습이 되어 있었으면 하는데, 시간을 재보니 얼마 안 남은 거예요. 70세까지 40년 정도 남았는데 한 악기를 10년씩 한다고 하면 4개밖에 못 하는 거잖아요. 그게 너무 싫어요.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을 자주 해요. 실력자가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행복한데 그때까지의 갭이 너무 길어서 불행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아무래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상을 받았을 때일 것 같은데.
    "음악하면서 처음으로 현물로 보상을 받은 순간이었으니까 그런 점에서 되게 좋았죠. 또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그전까지 '너 별로야'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아, 그래도 평론가들에게 인정받았네' 하는 생각이 들어 좋았고요. 물론 제가 상을 받은 걸 아니꼽게 보는 분들도 있었지만요. 모 잡지 편집장분이 본인도 생소한 서사무엘이 상을 받았다면서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셨거든요. 뭐 사실 대중음악상이라고 하기엔 한국대중음악상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이 있으니. 그래도 상을 받는 입장에선 행복했어요. 스스로 동기부여도 됐고요"

    ▶해외 공연도 많이 하신 편이죠.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나요.
    "홍콩 '클락켄플랩' 공연 때 좋았어요. 되게 오픈되어있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제가 그리던 페스티벌 느낌이었어요. 한국에서는 무대에 올라가면 관객 눈에서 물음표 나오는 게 일상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방어기제가 하나도 없어서 좋았어요. 공연을 했다기 보다 잘 쉬다온 느낌이었고요"

    ▶정규 3집을 준비 중이라는 인터뷰를 봤어요.
    "아, 원래 3집을 내려고 했는데 다 엎어 버렸어요. 지금은 되게 가볍게 싱글 형태로 곡을 발표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한 없이 가벼울 수도 있고, 한 없이 무거울 수도 있는데 어떤 큰 의미를 담지 않으려고 해요. 1/4분기 동쓴 곡 중 특별하다는 생각되는 곡들을 내려고요"

    ▶3집은 왜 엎어버린 건가요.
    "음, 마음에 안 들어서요. 개인적으로 음악 시장이 포드주의식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어요. 그래서인지 갈수록 곡 하나 내는 데 있어 신중해져요. 작업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3집은 어설프게 한발 걸치고 있던 상업적인 면을 다 없애 버린 앨범으로 만들려고 해요. 나중에 돌아봤을 때 '서사무엘 매뉴얼'을 썼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의미 있는 앨범으로 만들고 싶고요"

    ▶상업적인 면을 없앤다라...더 유명한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욕심은 많이 없나보네요.
    "벤틀리는 아니지만 저에겐 차가 있고, 제가 쓰기 너무 좋은 작업실 있고, 작업실에는 제가 좋아하는 앵무새가 있어요. 소소한 행복을 즐기면서, 꾸준히 하면 된다는 생각이에요. 제가 될 놈이면 되고 돈을 벌 놈이면 벌겠지 하는 생각이고요. 제 흥망에는 관심이 별로 없어요. 그냥 재밌게 음악하고 싶은 마음이 크죠"

    ▶음원사이트 댓글은 좀 보시나요.
    "작년 초부터 신경을 안 쓰고 있어요. 굳이 그런 거에 일희일비 하고 싶지 않아서요. 칭찬해주시는 분들도 있을 거고, 욕을 하는 분들도 있을 거고, 묵묵히 지켜봐 주시는 분들도 있겠죠. 공통점은 저의 음악을 한 번이라도 들어주신 분들이라는 거니까, 다 일련의 관심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정말 싫은 건 점수 제도에요. 취향 차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는데 점수로 매기는 건 좀..."

    ▶인터뷰 기사를 통해 서사무엘을 처음 알게 된 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곡이 있다면요.
    "아직 없어요. 아직 그만큼 만족하는 곡이 없기도 하고, 뭔가 제한을 두고 싶지 않거든요. 그냥 제목 보고 제일 꽂히는 노래로 들어주세요. (미소)."

    ▶음악 외에 또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가 있나요. 요리는 빼고요.
    "방송('브레이커스') 끝나고 플로리스트 자격증 공부를 하려고 해요. 정서적인 안정을 위해서 필요해요. 1, 2년 정도 공부해서 서른 쯤 자격증을 취득하면 행복할 것 같아요"

    ▶서사무엘에게 음악이란.
    "제일 성취하고 싶은 것이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70세까지 끊임없이 연습하는 게 지금 목표에요. 지금 저의 실력은 발톱의 때만큼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발표한 곡 중에서 70세에 부를만한 노래도 3곡 밖에 없고요. 물론 그3곡은 알려드릴 수 없지만요"

    ▶혹시 예능 출연 욕심도 있으신가요. 꽤 재미있는 캐릭터가 되실 것 같은데.
    "당연히 있죠. 진짜 재밌을 것 같아요. 살면서 해볼 수 있는 경험은 다해보자는 주의거든요. 그런데 섭외가 안 들어오네요. (미소)"

    ▶레디 씨의 지목으로 인터뷰에 참여했죠.
    "레디 형은 어느 날 갑자기 저에게 연락을 했어요. 문자메시지였는지 인스타그램 DM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무튼 실제로 처음 만난 건 하이라이트레코즈 사무실이었고요. 그 이후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는데 가식이 아니라 진짜 좋은 형이에요. 앞으로도 형이 부르면 언제 어디든 갈 겁니다"

    ▶서사무엘 씨는 다음 인터뷰 주인공으로 어떤 분을 지목하실 건가요.
    "한요한이요. 원래 기타리스트였던 친구인데 갑자기 기타 치면서 랩을 하기 시작했어요. '기타 멘 무사시'라고...저와는 같이 작업하면서 친해졌는데 아마얘기를 들어보면 재미있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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