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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이창동 감독, "막막한 세상에 질문하고 싶었죠"(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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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닝' 이창동 감독, "막막한 세상에 질문하고 싶었죠"(일문일답)

    [노컷 인터뷰 ①] 이창동 감독이 밝힌 #배우들 논란 #칸 수상 불발 #'버닝'

    영화 '버닝'의 이창동 감독.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늘 변화하고 싶었습니다. 변화하기 위해 힘들게 노력했고요." (이창동 감독)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들고 온 영화 '버닝'은 기존 그의 영화와는 상당히 다른 문법을 지녔다. 늘 소외된 이들을 주목해왔던 이창동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이 시대의 '청년'을 화두로 삼았다. 영화 속 청년들은 자본의 질서에서 벗어나 세계에서 패배하고, 결국 무기력한 절망 끝에 분노에 빠진다.

    수수께끼처럼 펼쳐지는 영화에는 종수(유아인 분)와 해미(전종서 분) 그리고 벤(스티븐 연 분), 세 사람의 관계성이 보여주는 상징과 은유로 가득하다.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한 편의 단편소설처럼 다소 혼란스럽기도 하다. 이는 종수와 해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맞닿아 있다.

    이 영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창동 감독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막 귀국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25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나눈 이창동 감독과의 일문일답.

    ▶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유일하게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는데 중요상 수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아쉬운 마음이 있겠다.

    - 당연히 아쉽다. 이상하게 '버닝'이란 영화가 개봉 전부터 영화의 흥행이 칸영화제 수상 여부에 달려있는 식으로 마케팅이 됐다. 수상을 하게 됐으면 그나마 힘이 빠졌을텐데 그러지 못해서, 기대가 너무 높아 실망감이 더 크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점에서 영화 만든 감독으로서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한국 영화 전체로 봐도 만약 수상을 했다면 좀 자극도 되고 활력도 됐을 거라고 생각해 아쉬웠다.

    ▶ 칸영화제 현지 반응에서 어떤 걸 느꼈는지 궁금하다.

    - 예상했던 것 이상의 반응이었다. 칸 경쟁에 가는 영화들은 꼭 예술영화라기보다는 개성이 강한 영화들이다. 개성이 강하다는 건 결국 호불호가 나뉘게 되어 있다. '버닝'은 특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좋다고 하는 게 좀 이상했다. 오히려 좀 과도한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국내 반응을 보면 예상보다 더 호불호가 갈린 것 같아 그런 온도 차이가 숙제인 것 같다.

    ▶ 영화 속에는 수수께끼 같은 세상을 향한 청년들의 분노와 무기력함이 존재한다. 이 영화를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는지, 또 이 시대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 청년들만의 이야기는 아니고, 그렇게 카테고리화 되는 건 그렇게 원하는 바가 아니다. 종수는 현실을 살고 있는 20대 후반 작가지망생 청년이지만 아버지 세대에 묶여 있다. 종수에게 파주집은 벗어나고 싶은 현실이지만 단순히 아버지에게 문제가 생기니 송아지 밥을 주러 가게 되는 거다. 보통 젊은이들이 사는 깔끔한 도시생활 속에서는 뉴스를 통해 우리의 문제를 보지만 사실 일상에서 보이지 않는 문제가 많다. 예를 들면, 남북 문제. 파주는 대남 방송 등으로 그걸 일상에서 보여준다. 종수는 원치 않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에 놓여있는 것이고, 어쩔 수 없이 묶여 있다. 나는 그런 인물이 지금 시대의 청년을 보편적으로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문제를 개인으로 보여줄 만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버닝' 스틸컷.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 영화 속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미스터리다. 결국 벤이 해미의 실종과 연관돼 있을까 하는 확증은 끝내 없는데 이렇게 설정한 이유가 있나.

    - 이 영화가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영화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를 찾는 영화는 아니다. 여러 겹의 미스터리를 겹쳐놨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서사다. 어쨌든 영화를 보고 받아들이는 서사라는 건 자기 욕망의 산물이다.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거다. 이 영화를 보며 관객들은 다양하게 자기만의 서사를 찾더라. 벤이 해미를 살해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종수의 의심이다. 그게 세상의 미스터리와 연결된다. 우리는 일상의 작은 것들이 때로 의심과 두려움, 끔찍한 실체와 연결돼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확증을 찾을 수 없는 미스터리, 그 막막함이다. 그런 미스터리 앞에 더 근원적인 분노를 느끼게 된다.

    ▶ 여러 공식적인 자리에서 본인이 청년이었을 때의 세대와 지금의 세대가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다고 했다. 이 역시 그런 미스터리와 연관돼있나.

    - 우리 때는 답이 분명한 것처럼 보였다. 계급이든 정치든 민주화의 문제든. 촛불이 일어난 건 사람들이 눈 앞의 문제를 봤기 때문이고, 또 그로 인해 어느 정도 해소가 됐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나아지지는 않는다. 또 다른 싸움이 필요한데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싸워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세상은 더 막막하다. 그런데 이 세상은 이전보다 굉장히 세련되고, 여유있고, 편리해지고 심지어 아름답거나 예뻐보인다. 친절하고 상냥하다.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인다. 물질적인 희망 또한 마찬가지다. 물질적으로도 우리 시절에는 지금은 어려워도 앞으로 잘살게 될 거라는 분명한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그게 없다. 내 자식들을 봐도 그렇다. 자식은 아버지만큼 여유있지 못하고, 앞으로도 그런 여유가 없을 거라는 게 내 눈에 보인다. 이건 본인의 능력이나 노력과는 관계없다. 개인은 점점 왜소해지고, 자기도 모르게 우울증에 걸려 있는 청년들을 본다.

    영화 '버닝'의 이창동 감독.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 어떻게 생각하면 현실과 허구 사이, 모호한 지점들이 이 영화에는 있는 것 같다. 어떤 의도로 이런 연출을 했는지 궁금하고, 실제로 본인이 영화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도 알려달라.

    - 영화는 실체가 없다. 마치 버려진 비닐하우스와도 같다. 형태를 갖고 있지만 농작물을 재배할 때만 의미가 있고, 사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투명하게 비어있다. 어떤 물질성을 갖고 있지 않고,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 거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걸 자기 나름의 서사로 받아들이고 의미를 부여한다. 소설과 다른 점은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 사람이 체험한다는 거다. 실체가 없는 그 성질 때문에 누구나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다. 그런 점에서 소설의 모호성은 독자가 수용을 하거나 이해가 어려워도 존경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의 모호성은 거부당하기 쉽다. 모호한 부분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어느 하나로 받아들이면 뭔가 부족하고 그럼 그것을 비판한다. '버닝'에는 세 사람 모두의 이야기가 있지만 관객은 자기가 보고 느낀 이야기만 옳다고 한다. 거기에 맞춰보면 당연히 퍼즐은 다 맞춰지지 않고 빈 자리가 있다.

    ▶ '버닝'을 두고 기존 이창동 감독 영화와 결이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많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 관객들이 이런 시대의 서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서사를 원하고 있는지 그리고 영화는 어떤 건지 그런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질문을 하기 위해서 영화를 했고. 사람들이 내가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감독이라는 오해가 있는데 난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메시지나 답을 찾는 건 관객의 몫이다. 할리우드식 권선징악 영화도 있겠지만 질문을 던지고, 관객이 그걸 보며 뭔가 답을 찾거나 스스로 질문을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이런 영화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영화는 그 질문이 좀 더 복잡해진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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