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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하와이"…'이간질'로 갈가리 찢긴 겨레



문화 일반

    "전라도=하와이"…'이간질'로 갈가리 찢긴 겨레

    5·18로 본 '지역주의' 병폐 흥망성쇠
    부당 권력 정당화에 악용된 '분열책'

    지난 1980년 9월 1일 전두환씨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고 있다. 그해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참혹하게 진압한 뒤 3달여 만이었다. (사진=국가기록원)

     

    유일표는 학교에서까지 그 놀림을 당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미 입학하기 전에 동네의 여기저기에서 당하며 분이 쌓여 있었다. "그으래에에, 하와이였어어?" 미리 알았으면 방을 세놓지 않았을 거라는 듯 주인여자는 고개를 틀어돌렸고, "학생이 하와이야?" 콩나물을 팔기 싫다는 듯 구멍가게 아주머니는 봉지에 콩나물 담던 손을 멈추었고, 우물에 물을 길러 가면 여자들이 흰눈을 뜨며 수군거리기도 했다. - 조정래 소설 '한강' 1권 중에서

    195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피땀으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를 그린 조정래 대하소설 '한강'(펴낸곳 해냄)에는 혐오에 뿌리내린 '지역주의'를 고발하는 표현이 곳곳에 나온다. 아래 인용문 역시 그 한 대목이다.

    '입학을 하자마자 그들은 엉뚱한 놀림감이 되기 시작했다. 서울아이들은 경상도 출신을 보리 문둥이, 전라도 출신을 하와이, 충청도 출신을 핫바지라고 놀려댔다. 그건 각 지방사람들이 서울로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말이 그대로 학생들한테까지 옮겨진 거였다. 그런데 그 별칭에 지방사람들을 업신여기고 적대시하는 서울사람들의 감정이 들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소설가 조정래는 CBS노컷뉴스에 "지역주의는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이전부터 뿌리깊었다"면서도 "다만 5·18 이후 경상도 정권이 이어지면서 전라도를 적대시한 것만은 틀림없다"고 잘라 말했다.

    결국 지역주의를 5·18로만 규정하기는 어렵더라도, 이 사건을 기점으로 분열을 조장하는 지역주의가 확대 재생산 돼 왔다는 이야기다.

    사회학자 정근식(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역을 비하하는 표현은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각 지역 특색을 잡아낸 것에서 기인하는데, 전라도에만 일방적인 것은 아니었다"며 "그런데 그것이 정치적인 문제와 연관되면서 정권이 지역 혐오주의를 자기네 이해관계에 맞춰 활용해 온 측면이 강하다"고 진단했다.

    지역주의가 정치권에서 집권 전략의 하나로 활용된 시점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다소 의견이 갈렸다. 하지만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호남이 소외된 것에서 그 원인을 찾는 데는 견해를 함께했다.

    정근식 교수는 "지역주의는 1971년 대통령선거 당시 김대중(야당 신민당) 후보와 대통령 박정희의 대결로 본격화 됐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앞서 1963년 대선 때만 해도 전라도에서도 박정희 지지가 더 높았다. 하지만 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차 1962~1966, 2차 1967~1971)이 형성되면서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해 1971년 대선 때 본격화 했고, (1972년) 10월 유신과 함께 정치적인 표현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더욱 굳어졌다."

    반면 정치학자 강원택(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1971년 대선 때 김대중과 박정희가 각각 호남과 영남에서 표를 많이 얻기는 했다"면서도 "하지만 그 직후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박정희의) 공화당이 호남에서 더 많은 표를 얻었다"고 결을 달리 했다.

    다만 강 교수는 "(지역주의) 원인을 멀리서 찾는다면 경부축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근대화 경제성장 과정에서 호남이 사실상 배제됐던 측면을 꼽을 수 있다"고 지목했다.

    ◇ 끓어오른 호남 차별·배제 분노 5·18 때 폭발…국민 분열 부추긴 전두환 정권

    지난해 4월 20일 5·18기념재단과 5·18단체 3곳(민주유공자유족회·민주화운동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 소속 유가족들이 서울 연희동 전두환씨 자택 앞에서 '전두환 회고록' 규탄 항의 도중 회고록 폐기를 주장하며 오열하고 있다. 전씨는 당시 발간된 회고록에서 '나는 광주사태 치유 위한 씻김굿의 제물' '발포 명령은 없었다' '당시 광주에서 국군의 살상행위·양민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사진=황진환 기자)

     

    대통령 박정희 사후인 1979년 12·12군사반란으로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 신군부는 이듬해인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인 만행을 철저히 감추려 했다. 이 과정에서 전라도 등지를 향한 지역 혐오를 의도적으로 부추겼고, 그 상처는 치유가 힘들 만큼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강원택 교수는 "(5·18 당시) 광주에서 벌어진 일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으면서 사람들은 진상을 몰랐고, 전두환 정권에서 (5·18과 광주·전라도에 대한) 여러 부정적인 메시지를 준 것이 사실"이라며 진단을 이어갔다.

    "5·18 자체가 (지역주의) 출발점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그때 광주시민들이 겪었던, 더 넓혔을 때 전라도민들이 전반적으로 겪었던 깊은 상처는 민주화 이후 특정 지도자를 중심으로 매우 열정적인 지지가 모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정근식 교수 역시 "호남에 대한 차별과 배제로 끓어오르던 분노는 5·18과 함께 결정적으로 폭발했다"며 "전두환 정권의 완전한 언론통제 탓에 5·18 진상은 알려지지 않았고, 그때부터 적어도 (6월항쟁으로 전두환 정권이 물러나는) 1987년까지 7년간 지역 혐오가 완전히 구조화됐다"고 지적했다.

    6월항쟁으로 불어온 민주화 바람에도 지역주의는 위세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구조화되는 악순환을 낳았다. 학자들은 한국 정치지형의 고질적인 병폐로 꼽혀 온 지역주의가 이때 똬리를 틀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정 교수는 "5·18 이후 심화된 지역주의를 풀고자 하는 염원이 1987년 6월항쟁과 그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였는데, 민주화운동 진영에서 김대중과 김영삼이 분열한 데다, 1990년 3당 합당에 의해 지역주의는 정치적으로 구조화 됐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도 "5·18 때 겪었던 호남 사람들의 울분과 분노가 민주화 이후 김대중을 중심으로 결집했다"며 "그러한 저항적 지역주의가 다른 지역, 특히 TK(대구·경북) 지역에 자극을 줬고, 3당 합당을 통해 '비호남 지역 결속' '호남 배제' 형태로 간 탓에 정치적 의미가 강해졌다"고 봤다.

    그는 특히 "보다 본질적인 원인은 1987년 대선 때 민주화운동 세력이 분열하면서 '민주 대 반민주' 대결 구도가 아니라 지역주의로 가기 시작한 데 있다"며 말을 이었다.

    "결정적으로 1990년 3당 합당이 이뤄지면서 결국 '호남 대 비호남' 구도가 만들어졌다. 이때부터는 이른바 호남에 대한 정치적인 배제가 뚜렷했다. 호남을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지역주의가 매우 효율적인 지지 동원 방법으로 자리잡았다는 점에서 이때부터 지역주의가 본격적으로 이어졌다고 봐야 한다."

    특정 정치세력이 우위를 차지하는 데 지역주의를 활용해 온 역사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연이어 들어서면서 완화되는 기미를 보였다.

    강 교수는 "1997년 김대중 대통령 집권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며 "이에 더해 호남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선됐던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은 더이상 호남이 정치적으로 2등 시민이거나 권력에서 소외된 집단이 아니라는 선언과도 같았다"고 분석했다.

    다만 정근식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지역주의로 인한) 상처가 아물어 갔지만,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보수세력이 만들어낸 일종의 집합적 음모 격인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등이 등장하면서 5·18을 깎아내리는 데 지역주의를 다시 이용하기 시작하는 긴 역사가 있다"며 "이로 인해 5·18 담론은 일반적인 의미의 혐오와 인권 감수성이 부딪치면서 복잡한 양상으로 꼬여 갔다"고 지적했다.

    ◇ 수명 다한 '지역주의'…"5·18, 생명 걸고 독재 거부한 국민적 저항"

    지난해 5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추모사를 하다 눈물을 흘린 한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신문들은 다음날부터 광주에 관한 기사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기서 일어난 일이 '폭동'이고, 그곳 사람들은 '폭도'라고 지칭하고 있었다. - 소설 '한강' 10권 중에서

    원고지 1만5천장 분량에 달하는 소설 '한강'은 말미에 5·18을 다루면서 이를 왜곡하는 데 혈안이 된 정권의 행태, 제한된 정보 탓에 편이 갈려 버리는 국민들의 실상을 가감없이 전한다. 결국 주요 등장인물들은 진실을 직접 확인하고자 광주로 향한다.

    조정래는 이를 두고 "문학의 묘미인 상징과 생략을 통해 광주 문제를 수수께끼로 남겨두고 '모두가 풀어야 할 역사적인 문제' '모두 함께 그곳으로 가서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뜻을 암시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정근식 교수는 "상처가 아무리 크더라도 이른바 언론·출판의 자유가 보장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이 상처로 굳어지지는 않는 법"이라며 "그런데 5·18 당시 정치권력은 언론통제와 함께 광주·전라 지역에 대한 혐오를 의도적으로 조장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5·18을 둘러싼 지역 혐오가 뿌리내린 데는 처음에는 (그러한 참상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믿고 싶지 않았던 심리였고, 이후에는 알아도 믿고 싶지 않는 심리까지 결합돼 작용해 온 셈"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사회를 휘감은 고질적인 병폐로 꼽혀 온 지역주의도 이제는 그 수명을 다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강원택 교수는 "김대중 정부 이후 지역주의는 그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흐름이 됐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제는 영남도, 호남도 모두 살기 힘든 상황에서 현재 쟁점이 되는 지역 문제는 '영남 대 호남'의 대립이 아니라 '수도권 대 지방' 문제다. 사실 지금 남아 있는 지역주의는, 선거제도가 그 지역에 기반한 정당들을 매우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상황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다."

    결국 "이미 내부적으로 (지역주의는) 많이 약화됐다고 봐야 하는데, '지역이 뭉쳐야 서울에서 뭔가를 빼앗아 오기 좋다'는 의미로의 지역주의만 남게 된 셈"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이는 비단 '호남 대 영남' 대결 구도는 아니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에서도 봤듯이 TK와 PK(부산·경남)가 갈라질 수도 있는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지금 호남에서도 20%, 전라북도의 경우 30% 이상 다른 정당에 대한 지지가 나오고, 대구 역시 세대별로 차이가 나타나는 상황이다. PK는 말할 것도 없다. 보다 더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가 만들어지면 지역별 대표성의 독점은 많이 해소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지역 혐오에 기대어 5·18을 깎아내리는 비뚤어진 행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했던 개헌안에서 헌법 전문에 5·18을 넣는다는 구상을 두고 일각에서 "특정 지역에 국한된 사건을 왜 넣느냐"는 식의 반대 목소리가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근식 교수는 "그런 식으로 치면 (현행 헌법 전문에서) 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사건은 없다. 4·19혁명을 포함해 모두 필연적으로 지역성을 띨 수밖에 없다"며 "서울에서 일어난 일은 괜찮고 지방에서 일어난 일은 안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조정래 역시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선을 그으며 강한 비판을 이어갔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우리나라도 아닌 중국에 있었는데 (헌법 전문에) 왜 넣었냐고 하면 말이 되나. 안 되잖나. 역사라는 것은 어느 지역에서 무슨 사건이 일어났든지 간에 그것이 역사의 전환점이 될 때 의미가 있다. 4·19는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그냥 헌법 전문에 넣은 것이 아니다. 역사의 대전환을 이루고 이 땅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계기였기 때문에 들어간 것이다."

    그는 "마찬가지로 5·18도 생명을 걸고 군부독재정권을 거부하고 무너뜨리려는 국민적 저항이었다"며 "그것을 지역에 국한된 사건으로 한정짓는 것은 대단히 무식하고 역사의식이 전혀 없는 편견"이라고 질타했다.

    조정래는 특히 "5·18은 결국 4·19와 같은 맥락에서 불의·비인간·비민주적인 것에 대한 저항"이라며 "그 정신은 3·1운동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역설했다.

    정근식 교수는 "5·18은 '국민 정의' '불의에 대한 저항권' '인간 존엄성에 대한 권리 찾기'라는 맥락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며 "국가적으로 정부·사회단체가 그 의미를 되살리는 방향으로 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정권이 악용해 온 지역주의로 국민들끼리 서로 반목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시민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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