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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명예도 남김없이'…5.18 유공자의 쓸쓸한 고독사



대구

    '사랑도 명예도 남김없이'…5.18 유공자의 쓸쓸한 고독사

    유공자 권순형씨… 사망 열흘 만에 셋방서 발견돼

    5·18광주민주화운동 38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 참배객들이 묘지에 절을 하고 묵념을 하고 있다. 이한형기자

     

    지난 3월 17일, 대구의 한 주택에서 혼자 살던 50대 남성이 숨진 지 열흘만에 발견됐다.

    며칠 전부터 악취가 난다는 이웃들의 신고에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고 주택 1층에서 셋방살이를 하던 권순형(58)씨가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

    검안의는 시신이 많이 부패한 것으로 보았을 때, 권씨가 숨진지 최소 10일은 지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놨다.

    권씨는 1980년 즈음부터 정신지체를 앓았고 자신의 병으로 인해 가족들이 피해를 볼까봐 어머니가 돌아가신 4년 전쯤부터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결국 권씨는 홀로 고독한 죽음을 맞이하게 됐고 숨을 거둔 지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의 죽음을 알릴 수 있었다.

    고독한 죽음의 결정적 원인이 된 권씨의 정신병력. 그것은 다름 아닌 5.18민주화운동에서 비롯됐다.

    5·18광주민주화운동 38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 참배객들이 묘지를 살피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1980년 서울, 광주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신군부 세력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대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경북대학교 1학년이던 권씨는 대구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했고 군경합수부에 연행됐다. 다행히 이내 석방됐지만 학교에서는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신군부에 의해 목숨을 잃자 권씨는 광주 사태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다시 대구 거리로 나섰다.

    권씨는 곧바로 체포됐고 대구 대공분실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다.

    함께 운동에 나섰던 이들은 이때부터 권씨가 조금씩 이상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말수가 급격히 줄었고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해보였다는 것이다.

    그 직후 권씨는 곧바로 군에 강제입영됐고 군 생활 동안 정신병적 증세가 심해져 결국 의가사 제대를 하기에 이르렀다.

    훗날 권씨는 5.18 민주 유공자로 인정됐다.

    함께 민주화 운동에 나섰던 선배, 동기들은 이런 권씨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이 컸고 종종 권씨를 찾아가 만나곤 했다.

    권씨의 선배이자 투쟁 동지였던 이상술 사단법인 5.18구속부상자회 대구경북지부장은 "순형이를 마지막으로 본 게 4년 전이었다. 그때까지만 순형이 어머님이 살아계셔서 어머님을 통해 순형이를 종종 찾아가서 만나고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순형이가 이사를 가버려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든 찾아보려 했지만 구청이나 보훈처에서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이런 비보로 소식을 접하게 될 줄 몰랐다"며 안타까워 했다.

    이 지부장은 "4년 전에 만났을 때도 순형이 상태가 좋지 않았다. 두려움에 떨고 나조차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평생을 억울하게 살았고 죽음마저도 처량하게 맞은 후배를 생각하면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털어놨다.

    경찰에 따르면 권씨가 살던 집은 소박하지만 깨끗했고 권씨는 월세 한 번 밀린 적이 없다고 한다.

    집안에서 공사에 쓰이는 각종 공구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정신병이 있어 힘든 상황임에도 공사장 등을 전전하며 일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을 가능성이 크다.

    권씨가 고문으로 얻은 아픔을 홀로 딛고 서보려했다는 짐작이 가능해 주변인들은 더욱 안타까워하고 있다.

    사단법인 5.18구속부상자회 대구경북지부는 "부고도 접하지 못한 채 그를 떠나보낸 동지들의 슬픔이 너무 크다. 그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고 고문 가혹 행위를 행한 수사관들의 처벌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은 부검 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겠지만 권씨가 평소 앓고 있던 고혈압이 원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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