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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도시' 예루살렘…길고 긴 분쟁의 역사



국제일반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길고 긴 분쟁의 역사

    예루살렘 美 대사관 이전에 일측즉발 위기감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미국 정부가 주 이스라엘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강행하면서 중동지역이 다시 화염에 휩싸이고 있다. 이스라엘 건국 70주년이자 미 대사관 이전식이 열린 1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대규모 항의 시위가 발생했다.

    격렬히 반발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향해 이스라엘군이 실탄으로 무력 진압에 나서면서 또 다시 최악의 유혈 사태가 빚어졌다. 특히 이스라엘군은 실탄까지 발사해 이날 하루에만 50여명이 숨지고 27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물론 중동권 국가들과 유럽, 유엔 등이 일제히 이스라엘의 무력 사용을 비난했지만 이스라엘은 정당한 무력 진압이라고 맞서고 있다. 여기에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미국은 "이스라엘은 스스로 방어할 권리가 있다"며 이스라엘을 적극 두둔해 중동 정세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3대 종교의 성지

    이번 유혈사태를 계기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예루살렘은 세계 3대 종교인 유대교와 이슬람교, 기독교의 공동 성지다. 히브리어로는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지만 정작 이곳은 수천년간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3000여년 전 다윗 왕은 예루살렘을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삼았고 솔로몬왕은 이곳에 성전을 세웠다. 그러나 바벨론 제국에 멸망하면서 유대인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이후 일부 유대인들이 귀환해 다시 도시를 일으켰다.

    그러나 이후에도 페르시아 제국와 알렉산더 대왕, 로마제국에 의해 정복되는 시련은 계속됐다. 638년에는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에게 함락됐다. 수없는 분쟁과 점령의 역사 속에 예루살렘은 유대인에게는 언젠가 반드시 돌아가야 할 정신적 수도가 됐다.

    종교적 측면에서도 예루살렘은 특별한 곳이다. 기독교에서 예루살렘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숨진 뒤 부활한 성지 중의 성지다. 템플마운트(성전산) 인근에는 예수가 안장된 묘지에 세워진 성묘교회가 있다.

    동시에 이슬람교에서 템플마운트는 이슬람의 창시자 무하마드가 승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예루살렘은 이슬람 3대 성지 가운데 하나다. 유대교 역시 템플마운트는 솔로몬왕의 성전이 세워졌던 거룩한 곳이며 이곳을 둘러싼 '통곡의 벽'은 최고의 성지다.

    ◇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오래된 갈등과 분쟁

    3대 종교가 발원한 곳이다 보니 예루살렘은 역으로 갈등과 분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현재 이스라엘의 건국은 19세기 말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시온(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국가를 세우자는 시온주의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무엇보다 1차 세계대전이 이스라엘 건국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 건설을 공식 인정했고 이를 계기로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건국을 선포했다.

    이스라엘은 이후 주변국과 전쟁을 치르며 영토를 넓혀나갔다. 1차 중동전쟁을 통해 독립을 확정지은 이스라엘은 1967년 이집트·요르단·시리아 등과 치른 3차 중동전쟁(6일전쟁)에서는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west bank)까지 점령지를 넓혔다.

    이스라엘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1980년 예루살렘을 '영원한 수도'라는 법률을 제정하는 등 예루살렘을 수도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팔레스타인도 가만 있지 않았다. 1987년 팔레스타인인 4명이 이스라엘군 지프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인티파다(반 이스라엘 민중봉기)가 시작돼 1993년까지 이어졌다. 2000년에는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의 템플마운트 방문을 계기로 2차 인티파다가 발발했다.

    팔레스타인은 1988년에 독립을 선언하고, 2011년에는 유네스코 회원국, 2012년에는 유엔의 옵서버 국가(observer state)가 됐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공존을 추구하는 파타(팔레스타인 민족해방운동)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급진주의 무장정파 하마스가 대립하고 있다. 요르단강 서안은 파타가,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분리 통치하고 있다.

    ◇ 예루살렘 美 대사관 개관, 3차 인티파다 될까

    이처럼 끝없는 갈등 때문에 유엔은 이스라엘이 독립하기 전인 1947년 11월 예루살렘을 국제법상 이스라엘과 아랍 어느 쪽도 주권을 독점하지 않는 국제사회관할 지역으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유엔 안보리는 1980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국제사회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국가 해법'을 통해 예루살렘을 '특별한 국가체제'로 정한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는 대사관을 예루살렘이 아닌 텔아비브에 두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고 전격 선언했다. 또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날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시키고 말았다.

    국제사회는 일제히 이번 결정이 중동 화약고에 기름을 붇는 격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이번 사건이 이슬람 금식 성월(聖月)인 라마단 기간(5월 15일∼6월 14일)을 앞두고 벌어져 자칫 제3차 인티파다를 불러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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