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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뒷전, 여행사 뺨치는 전북소방본부 '패키지 해외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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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움은 뒷전, 여행사 뺨치는 전북소방본부 '패키지 해외연수'

    10시간 넘는 비행 끝 허탕 치고도 궤변 "자부심을 느꼈다"

    #1 '뉴질랜드 와이토모 동굴‧테 푸이 아 민속촌‧밀퍼드사운드 국립공원‧착한 양치기의 교회, 호주 오페라하우스.' 2017년 6월 8박 10일, A소방경 외 5명.

    #2 '호주 페더데일 야생동물원‧갭 파크, 뉴질랜드 와 나카 호수‧크라이스트처치‧카오 라우 강 번지점프대‧켄터베리 대평원‧폴리네시안 스파.' 2017년 8월 8박 10일, B소방경 외 5명.

    #3 '독일 마르크트 광장‧마리엔베르크 요새, 오스트리아 미라벨 궁전‧슈테판 대성당, 헝가리 성 이슈트반 대성당, 체코 체스키 크롬로프 성.' 2017년 9월 8박 9일, C소방령 외 5명.

    전북소방본부 오세아니아 국외연수보고서 일부 발췌. 일정 대부분이 관광지 방문이었음에도 보고서 작성자는 '8박 10일로는 한계가 있었다'고 적었다. (사진=자료화면. 전북소방본부 제공)

     

    전북소방본부 소속 공무원들이 '선진국 재난 예방 체계 조사, 글로벌 소방 마인드 제고' 등 명목으로 다녀온 해외 연수 중 상당수가 사실상 외유(外遊)에 무게중심을 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 전망이다.

    전라북도소방본부는 지난해 자체 예산 총 4500여만 원을 세워 소속 소방공무원 23명을 호주와 뉴질랜드, 독일, 헝가리, 체코, 일본 등으로 연수를 보냈다.

    표면적인 연수 목적은 '선진국 소방서비스 분석을 통한 전북소방 발전방안 모색'이다. 그에 걸맞게 프로그램 이름도 '소방공무원 글로벌 벤치마킹'으로 지었다.

    ◇ '스파, 번지점프, 민속쇼'…연수(硏修)인가 여행(旅行)인가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선진 우수 사례를 배우고 돌아오라는 취지의 출장이었지만, 대다수 일정은 유명 관광지 방문‧체험 행사로 채워졌다. 연수 목적에 부합하는 방문지는 일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2개 내지 3개가 전부였다.

    일례로 지난해 8월 8박 10일간 호주‧뉴질랜드로 떠난 '아시아 1팀' 일정표는 대부분 호수, 대평원, 동굴 등 자연경관이 뛰어난 관광지 방문을 비롯해 번지점프‧스파 체험, 원주민 민속쇼 관람 등으로 꾸며진 것으로 확인됐다.

    업무와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는 일정은 소방박물관 1곳과 소방서 2곳이 전부였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퀸스타운 소방서 방문은 심폐소생술 지도 향상 방안을 보고 배워 전북소방에 벤치마킹하기 위한 중요한 일정이었다.

    연수자들은 그러나 입국 후 귀국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관련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고, 정책 반영을 위한 별다른 움직임을 취하지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혈세 1600여만 원이 그대로 증발한 셈이다.

    전북소방본부 관계자는 "해당 연수 이후 심폐소생술 지도 내용에 반영된 것은 없다"며 "앞으로 보강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 '선진 체험 문화시설 비교 분석'은커녕 "가보니 없어" 황당 보고서

    심지어 존재하지도 않는 시설을 찾아 10시간 넘게 날아간 이들도 있었다.

    지난해 6월 A소방경 등 전북소방본부 소속 소방공무원 5명은 외국의 안전체험 문화시설과 전북 119안전체험관을 비교‧분석하기 위해 오세아니아로 떠났다.

    그러나 이들이 찾던 이른바 안전체험 문화시설은 호주나 뉴질랜드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들은 귀국 보고서를 쓰면서 미흡했던 사전 답사를 두고 문제를 제기하거나 반성하기는커녕 "(방문국에 관련 시설이 없어서) 오히려 안전체험 문화는 우리나라가 더욱 발달된 점을 느끼며 자부심을 느꼈다"는 황당한 결론을 내렸다.

    또, "역으로 외국인 관광객 유치도 생각해 볼만하다. 안전체험관 문화를 (외국에) 전파할 수도 있겠다"고 적었지만 이런 구상은 사실상 '공언(空言)'에 지나지 않았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금까지 안전체험관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방문한 외국 기관은 단 한 곳도 없다. 안전체험관을 방문하는 외국인은 있지만 그 수를 체계적으로 파악하지도 않고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아직까지 안전체험관 도입의 최우선 목표는 외국이 아니라 국내 각 지역에 정착하는 것"이라며 "외국인 관광객 방문자 수를 집계하고 있지만 이는 다문화 가족들을 외국인으로 포함시킨 통계다"고 밝혔다.

    ◇ '심의 없는 결재, 피드백 없는 보고서'…처음부터 벤치마킹은 없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전북소방본부 해외 연수 실태에서 드러난 난맥상은 허울뿐인 결재라인과 감시 시스템에서 비롯했다는 목소리도 안팎에서 나왔다.

    전라북도는 전북소방 내부 결재와는 별개로 관련 서류를 심의하고 있다. 그러나 전북소방본부가 자체 예산을 투입해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만큼 전북도는 이에 간여하기가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전북소방본부는 결재 라인을 올라가는 과정에서 서류 검토에 부족함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박진선 소방행정과장은 "(실무진들이) 연수 내용을 짜면 (위에서) 한 번 검토를 하긴 하는데 미흡했다"며 "소홀한 점이 없었다고는 못 한다"고 말했다.

    '미흡'과 '소홀'은 공무원들이 귀국한 뒤에도 이어진다. 작성을 마친 귀국 보고서는 어떠한 평가나 점검 없이 '등록'된다. 해외에 다녀온 소방공무원들이 '전라북도 행정포탈'에 귀국 보고서를 올리면 그대로 연수가 종결 처리된다는 게 전북소방본부의 설명이다.

    박 과장은 "그동안 귀국 보고서를 따로 검토한 적은 없다"며 "외국에서 견학한 선진 제도를 도입한 적도 아직 없다. 앞으로는 잘 운영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북소방본부는 올해 5200만 원 규모의 예산을 세워 소방공무원 24명을 프랑스, 이탈리아, 체코, 스위스, 스페인 등 6개 국가로 보낸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중 4명은 이미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서유럽으로 연수를 다녀왔다.

    전북소방본부의 처절한 내부 반성이 '배움과 휴식이 어우러진 해외 연수'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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