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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그곳'에 있는데, 달라진 건 당신일지도"



공연/전시

    "세월호는 '그곳'에 있는데, 달라진 건 당신일지도"

    [노컷 인터뷰] 연극 '벡사시옹+10층' 윤혜진 연출

    2015년부터 세월호를 기억하는 동시에 현재진행형의 참사로 인식하고자 기획초청공연을 해온 '혜화동1번지 6기 동인'이 올해는 세월호와 관련 없이 쓰인 고전을 원작으로 10주간 세월호를 이야기한다. 이 역시 세월호를 기억하고 사유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세월호로 우리의 세계가 재구성되었듯 이전 창작물 역시 '세월호'라는 관점을 통해 재구성하는 시도이다. 공연을 마친 뒤 연출에게 직접 들은 뒷이야기들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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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세월호는 '그곳'에 있는데, 달라진 건 당신일지도" - 연극 '벡사시옹+10층' 윤혜진 연출
    (계속)

    연극 '벡사시옹+10층'. (제공 사진)

     

    여기는 9층. 엘리베이터 운행 시간이 지나 9층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온 남자 A는 10층에 올라가고 싶다. 그런데 문이 잠겼다.

    A는 9층 건축사무소의 문을 두드리고 도움을 청한다.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는 B는 방법이 없다며 문을 열려면 1층 경비에게 열쇠를 받으라 한다.

    A는 힘들게 올라왔는데, 다시 내려가지 않고 올라갈 방법은 없는지 재차 묻는다. B는 자신에게 잠긴 열쇠를 열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A는 잠긴 문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연극 '벡사시옹+10층'은 이 3분 정도의 에피소드를 반복한다. 무려 1시간 30분가량, 총 29번을 반복한다. 토씨하나 다르지 않은 대사를 되풀이한다. 같은 표정과 같은 행동으로.

    달라지는 게 하나 있긴 하다. 그건 A가 시작하는 지점,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변한다는 것. 그 외에는 같은 대사 같은 연기이다. 마치 영상 리플레이 하듯이 똑같은 장면이 돌고 돈다.

    연극에 대해 아무 정보도 없이 온 관객들은 세 번째 반복까지는 진지한 표정으로 극을 본다. '무언가 달라지는 걸까, 아니면 무슨 반전이 있는 걸까' 머릿속으로 여러 계산을 한다.

    그런데 네 번째, 다섯 번째, 열 번째가 넘어서면서 지쳐간다. 달라질 거라는 기대는 어느 새 없어졌다. 누군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린다.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도 있다. 지겹다. 슬슬 짜증이 난다.

    연극 '벡사시옹+10층'. (제공 사진)

     

    <벡사시옹>(Vexations). 프랑스 음악가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가 작곡한 이 피아노곡은 프랑스어로 'Vexation = 짜증, 성가신 것, 고통'이라는 뜻이다.

    18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단선율의 주제와 그 주제로 만든 두 개의 변주가 전부이다. 다시 말하면 그냥 악보 한 장이 전부이다.

    그리고 악보에는 다음과 같은 지시가 적혀 있다. "이 악보를 840번 연속해서 연주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고요 속에서 부동 자세로 준비해야 합니다."

    윤혜진 연출은 "세월호와 무관하게 쓰인 고전 등을 세월호라는 관점을 통해 재구성해보자는 이번 기획의 제안을 받았을 때 떠오른 게 <벡사시옹>이었다"고 했다.

    아직 '그곳'에 있는 세월호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반복되고 있다. 마치 840번 동안 연주되는 '벡사시옹'처럼, 그저 '그곳'에 있을 뿐이다.

    그 끊임없는 반복 속에서 '짜증'을 느끼는 건 청중이다. 그래서 야유를 보내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 버린다. 마치 세월호가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들 같다.

    다음은 윤혜진 연출과의 1문 1답.

    윤혜진 연출. (제공 사진)

     

    ▶ 왜 '벡사시옹'을 택했나.
    = "세월호와 무관하게 쓰인 고전을 해석해 재구성해보자는 기획공연의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고전으로 할까 고민을 하다가 '벡사시옹'을 택했다. 처음 이 악보를 접했을 때 흥미로웠다. 이 공연이 악보에 쓰인 대로 840번 반복해 연주하려면 대략 15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그 과정에서 청중들이 짜증이나 화를 내며 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끝까지 들은 사람은 박수를 보냈다고도 하는데.(웃음) '벡사시옹'을 처음 택했을 때 '반복'과 그 반복 속에서 나타나는 '청중의 태도 변화'에 주목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4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세월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달라진 태도 변화와 연관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해, 연극적 작업으로 풀어봤다."

    ▶ 연극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 "고(故) 이재현 극작가의 <제10층>이라는 희곡 중에서 일부 인용했다. 그래서 공연 제목이 '백사시옹+10층'이다. 고전을 선택하라는 제안 받았을 때 셰익스피어나 안톤 체홉을 떠올리기 쉽지만, 나는 한국 희곡으로 하고 싶었고, 작품을 찾다가 지인의 추천을 받았다."

    ▶ 10층 에피소드는 총 몇 번을 반복하는 건가. 그 반복하는 숫자에는 의미가 있나. 아니면 그냥 공연 시간에 맞춘 건가.
    = "총 29번이다. 숫자에 특별한 의미는 없었고, 소수로 끝내고 싶었다. '벡사시옹'의 의미가 '짜증'인데, 840번이라는 물리적 시간만큼 짜증이 나게 하려면 29번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반복을 통해 변화하는 과정이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처음엔 '이게 뭐지'하는 의문에서 점점 화나 짜증이 나고, 그런 것을 넘어 체념하고 비워낸 상태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생기는 지점이 개인적으로 1시간은 지나야 한다고 봤다."

    연극 '벡사시옹+10층'. (제공 사진)

     

    ▶ 소위 말하는 커튼콜이 없어 당황했다. 공연이 끝난 지도 모르고, 관객들은 3분 가까이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 역시 더 뭔가 있는 게 아닐까 기대했다. 그러다 한 명이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자 그제서야 하나둘씩 나가더라. 공연을 마친 뒤 공연이 끝났다고 알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 "팸플릿을 보면 '출연' 부분에 배우 이윤재와 이형훈이 있고 그 다음에 '+'가 있다. 이 이유는 연극이, 우리가 만들어서 관객에게 무언가 전달하기 보다는 희곡 <제10층>의 텍스트를 반복해 전달할 뿐이고, 그것을 해석하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건 관객의 몫이라는 의미로 '+'라고 표시했다. '벡사시옹'처럼 침묵 속에서 부동성으로 연기를 한 후, 그 다음을 관객에게 넘긴다는 의도이다. 그리고 침묵 이후는 관객의 차례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청중들의 반응은 지켜보았나. 기대하던 대로인가.
    = "사실 관객 피드백을 받지 못해 잘은 모르겠다.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호와 연결시키고 싶다는 건 우리의 생각이고 의도이다, 각자 해석은 다를 수 있다. 다들 다른 의미를 안고 극장 밖을 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 남자A는 왜 10층에 올라가고 싶었을까.
    = "이건 희곡 <제10층>의 도입부를 인용했다. 희곡 전체를 보면 올라가려는 이유 등이 설명은 된다. 다만 이 부분을 선택한 건 최대한 의미가 적은 부분이어서였다. 그런데 29차례 반복이 되면서 10층에 대한 어떤 의미가 관객에게 발생한 게 아닌가 싶다."

    ▶ 올해가 세월호 4주기다. 이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 "국가적 트라우마이기에. 아파하는 분들 여전히 많다. 하지만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거나, 비하하거나, 지겹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걸 보면 안타깝다. 세월호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그곳'에 있는데,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물리적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작품도 처음에 보면 '10층'이 있나 궁금해하지만, 반복되면서 그 궁금증에서 점점 멀어지지 않나. '왜 저 얘기를 반복하지, 누가 문 좀 열어주면 좋겠다. 경비에게 전화를 해라' 등. 그렇게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결국 사실을 대하는 '우리'가 변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 1주차 공연 '벡사시옹+10층은' 22일부로 공연이 끝났다. 2주차인 이번 주에는 '행복한 날들'(링크)이 26일부터 29일까지 대학로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한다. 1만 원~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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