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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남지사 후보, 확정된 김영록 누구인가?



광주

    민주당 전남지사 후보, 확정된 김영록 누구인가?

    김영록 더불어민주당 전남도지사 예비후보 (사진= 김영록 민주당 전남도지사 예비후보 제공)

     

    더불어민주당 전라남도지사 후보 결선 투표에서 장만채 예비후보를 누르고 최종 후보로 확정된 김영록 예비후보는 1955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가난 병마에도 굴하지 않고 행정고시 합격

    김 후보는 광주서중·광주일고에 진학했으나 부친의 병환으로 가세가 기울고 대학입시를 앞두고 폐결핵을 앓는 등 어려운 10대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노력해 건국대학교 행정학과 재학 중이던 1977년 제21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김 후보는 전남도청 사무관으로 일하다 이후 내무부를 거쳐 1994년 39살의 나이로 강진군수에 부임하고 이듬해 고향 완도군수를 역임했다.

    ◇강진, 완도 군수 역임. ‘행정은 현장이다’ 실천

    강진과 완도군수 시절 단 1명만 사는 섬마을까지 군 내 모든 마을을 방문하며 관선 마지막 군수로서 주민과 함께하는 군정을 펼진 것은 유명한 일화다.

    ◇경제위기 해결사, IMF 환란 중 전국 최초로 도산위기 대기업 회생시켜

    그는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전라남도 경제통상국장으로서 부도 위기를 맞은 삼호중공업 조업 정상화를 진두지휘했다.

    이로써 부도난 대기업 가운데 전국 최초로 조업을 정상화해 종업원 1만 명에 이르는 세계 5위의 조선업체로 성장한 지금의 현대삼호중공업이 있게 한 장본인으로 평가받는다.

    ◇미래를 내다본 정책 선도자, 여수세계박람회 유치

    김 후보는 1997년 전남도 자치행정국장으로 재임 시, 가족계획제도가 시행되던 시절에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짚어내 전국 최초로 신생아 수당을 도입했다.

    지난 2006년 전남도 행정부지사로 부임해 문화사절단을 이끌고 카리브해 연안 국가를 순방하는 등 노력으로 2012 여수 세계박람회를 유치하는 데 일조하는 등 업무 추진력을 인정받았다.

    ◇일 잘하는 희망 정치인, 농어업인 대변자로 서다

    그는 18대 국회 4년과 19대 국회 2년간 농식품위와 농해수위 등에서 활동하면서 농어민의 대변자, 농어촌 지킴이로 활동했다.

    대표적으로 8년간 묶여 있던 쌀 목표가격 17만83원을 18만8천 원으로 인상하고 고정직불금은 ha당 70만 원을 100만 원으로 올렸다.

    밭 직불금과 수산직불금도 단계적으로 인상했다.

    육지보다 열악한 도서주민을 위해 소유 차량으로 여객선을 이용하면 차량 운임의 20%를 지원하도록 해 전국적으로 65억여 원의 수혜가 이뤄졌다.

    지난 2015년 종료를 앞둔 농어업 비과세 감면 연장을 3년 더 연장함으로써 연간 1조4천5백억 원의 부담을 줄였다.

    이는 이후 문재인정부의 초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되는데 발판이 됐다.

    ◇당 위기의 구원투수, 사무총장, 원내수석부대표, 수석대변인으로 활동

    정치적으로는 당이 어려움을 겪을 때 김 후보는 구원투수 역할을 도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지난 2013년 1월 대선 이후 비상대책위 사무총장을 맡아 대선평가와 전당대회 개최 등 민주당이 대선 패배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굵직한 과제들을 해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2114년 제3기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아 19대 후반기 원 구성과 6·4지방선거, 7·30 재보궐선거, 세월호 특별법 제정까지 당 내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당의 중심을 잡는 데 공헌했고, 지난 2015년 문재인 당대표 시설 수석대변인직도 수행했다.

    ◇중앙선대위 조직본부장, 문재인 정부 초대 농식품부 장관까지

    지난 2016년 4월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으나 문재인 대통령을 도와 호남 민심을 되돌리는 데 기여했다.

    지난해 대선 당시 중앙선대위 조직본부장을 맡아 광주전남 지지율을 80%까지 끌어올려 승리에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김 후보는 문재인 정부 초대 농식품부 장관을 맡았을 때도 특유의 현장 중심 감각을 발휘했다.

    현장 혁신을 강조하며 ‘행정개혁위원회’를 설치했고, 대표적인 갈등과제였던 마사회 용산 장외발매소 폐소는 그의 적극적인 현장소통과 사회적 타협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밖에도 20년 전 수준에 머물던 12만 6천만 원대 쌀값을 16만 8천 원대로 회복하고, 청탁금지법 가운데 농수산물 한도액을 5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개정했다.

    김 후보는 또, AI에 대한 신속한 대처로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우려를 덜었고, 무허가 축사 적법화 문제 해결 등 산적한 농정 현안을 8개 월 만에 해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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