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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부터 양정철까지 품었던 그는 왜 몰락했나?



국방/외교

    이재오부터 양정철까지 품었던 그는 왜 몰락했나?

    • 2018-04-12 05:00

    [워싱턴에서]의문투성이 '한미硏 사태'의 본질

     

    '문존박위'(문재인은 존스홉킨스요 박근혜는 위스콘신이라)

    전임 박근혜 정부 때는 위스콘신 전성시대였다. 최경환 전 기획재정부 장관, 강석훈 전 청와대 경제수석,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 미국 위스콘신대학 출신 인사들이 위세를 떨쳤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미국 존스홉킨스대가 떴다. 서훈 국정원장이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석사 출신이고,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기자 시절 객원 연구원으로 존스홉킨스대를 거쳐갔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김동연 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현 정권에서 존스홉킨스대, 더 정확히는 이 대학 국제관계대학원 산하 한미연구소(USKI)에 의탁했던 유력 인사들은 한 둘이 아니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그나마 피신할 자리를 마련해 준 건 USKI였고, 구재회 소장이었다.

    그런데 USKI 구재회 소장이 보수 성향으로 찍혀 문재인 정권에서 교체를 요구했다? 이른바 '문존'의 시대에, 태평양을 건너 워싱턴까지 날아온 '문재인판 블랙리스트' 논란에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38노스(North) 폐쇄를 위해 자금 지원을 끊었다? 38노스는 상업 위성사진을 분석, 그동안 북한 핵시설을 꼼꼼히 감시해 왔고, 때문에 북한의 심한 경계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북한이 핵 활동을 몰래 계속한다는 일본 등의 의혹을 위성사진을 근거로 반박해 왔다.

    올해 USKI에 지원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예산 191만 달러(21억원) 중 38노스 예산은 인건비를 포함해 21만 달러로 전체 예산 중 10%를 조금 넘는다. 38노스는 우리나라의 KIEP 외에도 미국 카네기 재단 등 복수의 단체로부터 기금 지원을 받는다. 우리 쪽 예산을 끊어도 자생력을 갖춘 38노스를 없애려 지원을 중단했다는 의혹도 설득력은 떨어진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USKI는 왜 논란의 한가운데 서게 됐나.

    구 소장은 정치색은 약했으되 다른 의미에서는 지나치게 정치적이기도 했다. 해마다 KIEP에서 내려주는 정부 예산을 타내기 위해 '수완'을 발휘해야만 했다.

    무기는 '존스홉킨스대 방문 연구원'이라는 간판이었다. 정권 실세부터 국회, 기획재정부 등 예산 편성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관계, 언론계 인사들이 번쩍이는 간판의 수혜자들이었다. 2008년 이재오부터 2018년 양정철까지 정치성향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06년 USKI 설립 첫 해 예산 4억원은 그가 이듬해 소장으로 취임한 뒤 급격히 불어나 2014년에는 최대 24억원까지 늘어났다. 불투명한 회계 처리 문제와 1억5천만원의 연봉(복리후생비 제외)을 받는 구재회 소장의 12년 장기재직에 따른 폐해 논란도 거뜬히 피해왔다. 재정 보고서 형식도 갖추지 못한 단 2장짜리 결산보고서를 제출하고도 20억원이 넘는 예산을 다시 따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도 그랬고, 이제는 '문존박위'의 세상이 됐으니 그를 지켜줄 방패는 더 튼튼해졌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국회 예산심사 과정에서 또 한소리 듣겠지만, '문존'들이 나서면 언제나처럼 또 예산은 배정될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정확히 말하면 과거 칼바람을 피해 USKI에 의탁했던 '문존'들은 그의 기대를 배신했다. 그리고는 블랙리스트 논란이 터졌다.

    미국 대학에 기부금 형식으로 자금을 지원하면서 미국의 정서나 관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국식으로 접근한 현 정권의 미숙한 대응이 사태를 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본질적 문제는 다른 대학 연구소에는 없는, 해마다 예산 로비를 해야 하는 삐뚤어진 시스템이다. 그간 해마다 문제제기가 있었는데도 손놓고 있었던 전임 정부에는 책임이 없을까. 손놓고 있던 이들은 이제 손가락질에 여념이 없다.

    KIEP는 예산지원을 더 늘려서라도 존스홉킨스대에 한국학 교육과 연구 프로그램을 제대로 복구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대미 공공외교에 오점이 남았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투명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초반에 문제를 바로 잡았더라면 USKI는 물론 하버드대를 졸업한 전도유망했던 한국계 전문가를 망치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블랙리스트냐 아니냐 뒤늦게 터진 정치 공방은 기어코 태평양을 건너와 USKI를 쇄신이 아닌 폐쇄라는 최악수에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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