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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천명 블랙리스트 주고받아"…프랑스 국가사업에도 지원 배제



문화 일반

    "9천명 블랙리스트 주고받아"…프랑스 국가사업에도 지원 배제

    9473명 명단 해외문화홍보원 및 문체부 여러곳에 뿌려져, 동명이인 해프닝도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한-불 수교행사 블랙리스트 사건 조사결과 브리핑에서 이원재 대변인이 블랙리스트 문건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박근혜 정부 때 해외문화홍보원에 9473명의 블랙리스트 문건이 통째로 전달돼 '한불 상호교류의 해'와 관련한 각종 사업을 검열하는 데 활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해외문화홍보원 직원이 문체부 담당자에게 직접 리스트를 전달받았으며, 프랑스에서 진행된 전시, 공연, 도서전에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인들을 지원배제하는데 사용됐다. 그간 9473명 문건이 실제로는 잘 쓰이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현장에서 사용됐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 문체부 직원이 해외문화홍보원에 블랙리스트 직접 넘겨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는 10일 광화문 KT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15-2016 한불 상호 교류의 해'에 블랙리스트가 실제 적용됐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해외문화홍보원 직원이 보관하고 있던 블랙리스트 복사본 1본을 입수해 일부를 공개했다.

    블랙리스트는 홍보원 직원이 문체부 담당 오모 서기관으로부터 직접 받았으며, 직원이 보관용으로 1부를 복사해둔 것을 진상조사위에 제보했다. 다른 기관에 리스트가 통째로 넘어간 것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문건은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선언 문화예술인 549명, 세월호 시국선언 문학인 754명, 문재인 후보지지 선언 6517명, 박원순 후보 지지선언 1608명 등 총 9473명에 대한 명단이다.

    총 60페이지 분량의 이 문건은 문체부 내 여러 부서에 뿌려진 것으로 보인다. 문체부 예술정책과 오모 사무관이 영상콘텐츠산업과, 국제문화과, 지역전통문화과, 공연전통예술과 등 문체부 각 부서에 전달했다고 진상조사위는 밝혔다.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한-불 수교행사 블랙리스트 사건 조사결과 브리핑에서 이원재 대변인이 블랙리스트 문건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한불 상호교류의 해 사업'은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추진된 국가외교행사였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 사업에도 과감하게 블랙리스트를 실행했다.

    2015년 6월 문체부 해외문화홍보사업과는 이미 발표까지 끝난 1차 공모사업 중 8개 사업에 대한 지원을 철회했다. 심사가 진행중이던 2차 공모 사업에서도 5개 사업을 사전 제외할 것을 지시하는 등 총 13개의 사업을 배제했다.

    이미 지원이 결정된 사업도 배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오자 해외문화홍보원은 발칵 뒤집혔다.

    조사위에 따르면 해외문화홍보원 직원이 문체부 오 사무관에게 명단을 받아서 박모 해외문화홍보기획관에 보고하자 박 기획관은 "김종덕 장관이 이것에 민감하게 생각한다. 본부(문체부)에서도 명단을 보고 있으니 잘 살펴봐라"고 지시했다.

    한 홍보원 직원은 김종 당시 문체부 2차관에게 "이미 선정되고 지원 금액도 얼마 되지 않는 해외사업을 갑자기 취소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김 차관은 "정부의 예산이 정부를 반대하는 사람에게 가면 안된다", "프랑스 가고 싶으면 자비로 가게 하라"고 지시를 이행할 것을 강요했다.

    또다른 직원은 해외문화원장에게 "못하겠다, 부당하다"고 항의하자, 홍보원장은 "예술을 할 거면 자기돈으로 하라는 것인데 뭐가 배제냐", "영혼을 찾으려면 다른 걸 하지 왜 공모원이 됐느냐"며 야단을 치기도 했다. 결국 항의한 직원은 2주뒤 한불수교 해외문화홍보 사업팀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한-불 수교행사 블랙리스트 사건 조사결과 브리핑에서 이원재 대변인이 블랙리스트 문건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 '이응노' 이름 빼고 미술전시, 파리도서전에 한강 김애란 등 유명 작가들 작품 배제

    블랙리스트에 따라 프랑스 현지에서 진행되는 여러 전시 및 공연 사업 내용이 바뀌었다.

    프랑스 세르누치 박물관이 주관한 <이응노에서 이우환:="" 프랑스의="" 한국화가들="">이라는 제목의 사업도 '이응노'이름이 빠진 <서울-파리-서울: 프랑스의="" 한국작가들="">로 변경됐다.

    청와대 교문수석실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응노미술관 이지호 관장에 대한 출장비 지원을 철회하고, 이응노미술관 이름을 모든 보도자료에서 뺄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공연 분야에서는 무브먼트 당당의 <벗어난 원리들="">의 항공비 및 운송비 지원을 철회하려고 했지만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공연을 막지는 못했다. 국립현대무용단 <이미아직> 미술감독이었던 주재환 작가는 프랑스 초청에서 배제됐다.

    파리도서전에서는 문체부 출판인쇄과에 의해 김연수, 김애란, 한강, 편혜영, 이창동, 임철우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배제됐다.

    이밖에 '프랑스 내 한국의 해' 폐막식을 퐁피두 센터에서 무료로 개최하려 했지만 블랙리스트에 오린 양혜규 작가의 전시가 센터에서 진행중임을 확인하고 급히 장소를 변경하기도 했다.

    블랙리스트를 활용하다가 동명이인으로 엉뚱한 사람의 지원이 배제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조사위 관계자는 "영화감독 김종석씨와 연출가 김종석씨를 착각해서 한국음악과 함께하는 불꽃축제 행사에 배제됐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9473명의 블랙리스트가 실제 부처나 산하기관 내에서 통째로 복사되고 활용된 것을 밝혔다는데 의미가 있다.

    진상조사위 박채은 전문위원은 "9,473명의 리스트는 존재하지만 활용되지는 않았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실제로 이 리스트가 부처에서 공유되고 지원배제에 활용됐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며 "프랑스와 연관된 사업에서도 이미 지원이 결정된 것을 취소할 정도로 블랙리스트 이행에 대한 압박이 상당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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