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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그레이엄 "아이·어른 모두 볼 수 있어야 좋은 아동극"



공연/전시

    토니 그레이엄 "아이·어른 모두 볼 수 있어야 좋은 아동극"

    [노컷 인터뷰] 세계적인 아동·청소년극 연출가 토니 그레이엄

    = 아동극 '여왕과 나이팅게일' 5월 광주에서 공연
    = 오늘날 디지털 문명에 대해 생각해보게 할 것
    = 아동·청소년극, 아이 스스로 생각할 힘을 길러주게 해
    = 시험·평가 위주의 교육환경 바뀌고, 아이들 예술교육 보장돼야
    = 좋은 연극은 연령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영향을 끼쳐
    = 미투 운동, 권력의 남용에서 벌어진 문제 …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져야

    영국 아동·청소년극 연출가 토니 그레이엄.

     

    아동·청소년극 불모지였던 영국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킨 연출가 토니 그레이엄(Tony Graham, 67)이 한국에서 작품을 올린다.

    그는 다음 달 5일부터 7일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극장에서 아동극 '여왕과 나이팅게일'을 공연한다.

    안데르센의 동화 '왕과 나이팅게일'을 개작한 작품으로, 아시아문화원과 극단 하땅세(윤시중)가 공동 제작했다.

    지난달 30일 명동 한 카페에서 만난 토니 그레이엄은 "아동·청소년극이라고 해서 관객이 아동과 청소년만 보는 게 아니다"며 "모든 연령이 볼 수 있어야 가장 좋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에게 직접 들은 이번 작품의 소개와 아동·청소년극에 대한 철학, 그리고 최근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인 미투 운동 등에 대한 이야기를 일문일답 형태로 정리해 보았다.

     

    ▶ 이번에 공연하는 '여왕과 나이팅게일'에 대해 소개해달라.
    = 안데르센의 동화 '왕과 나이팅게일'이 원작이다. 원작에서는 상상 속 중국이 배경이다. 나이팅게일의 목소리에 매료된 중국 황제가 어느날 기계 나이팅게일을 선물받는다. 마치 살아있는 나이팅게일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기계 나이팅게일에 빠져 황제는 진짜 나이팅게일을 잊는다. 당시 안데르센은 기계화, 산업화가 사람들의 영혼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 그 내용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 오늘날의 기계화, 자동화, 인공지능 등을 어떻게 봐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것들오 인해 무엇을 얻고 동시에 무엇을 잃는가라는 질문이다. 디지털이 우리에게 직접 할 수 없는 다양한 것을 경험하게 하는 동시에 놓치게 만드는 것이 있다. 흔히 광고에서는 문명의 발전이 멀리 떨어진 사람들을 가깝게 만들어준다고 하지만, 정작 곁에 있는 사람들과는 멀어지게 하지 않는가.

    ▶ 작품에서 첨단 기계가 등장하나.
    = 그렇지 않다. 나는 첨단 장치가 무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무대 위에는 무엇이든 적게 있을 수록 좋다. 연극은 배우와 관객의 소통이다. 물론 어떠한 무대 장치는 최신 유행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기술이 관객을 가까이하게 하고, 관객과 감정을 공유하는 황금률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연극은 오랜 시간 변하지 않고 지금의 형태를 유지해왔다.

    ▶ 원작은 왕인데, 이 작품은 여왕이 등장한다.
    = 최근의 미투 운동과도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미투가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다. 작가와 작품을 고민할 때 여성이 주요 배역에 배정돼야 한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 어린이의 관점에서 연극이 보이고 만들어져야 한다 생각하고 그런 책임을 느낀다. 때문에 가능하면 여성을, 가능하면 나이가 어린 주인공을 쓴다.

     

    ▶ 아동·청소년극은 유치할 거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아니면 교육적이어 한다거나.
    = 아동·청소년극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좋은 질문이지만 답변하기는 어렵다. 어느 나라든 아이는 어른에게 종속돼 있는 게 현실이다. 이게 나쁜 게 아니다. 필요한 부분도 있다. 어른은 복지, 양육 등으로 아이가 건강히 성장하도록 챙겨줘야 할 부분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건강함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고, 그렇게 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가. 어른들의 사회는 마치 이 질문에 답이 있는 것처럼 가르치고 행동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살펴보라. 아이들은 굉장히 미묘한 부분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정확히 포착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평가하는 방식과 교육 환경이 재고해야 한다.

    ▶ 교육 환경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 학교 안팎의 모든 환경을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이 아이들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중심 매체이지 않을까 싶다. 예술은 창조성과 자기표현의 포럼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어린이는 자신의 예술적인 창조성을 표현하는 수단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건 먹는 것과 숨쉬는 것만큼 보장해줘야 한다. 놀 권리, 노래할 권리, 그릴 권리 등을 보장해야 한다. 아이들이 직접 예술에 활용되는 재료를 만들고, 필요로 하는 수단을 활용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또 어린이가 다양한 스펙트럼의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 영국은 어떠한가.
    = 영국의 제도 중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게 시스템에서 소외되는 어린이일수록 예술을 그들의 집과 같이 생각하게 하는 걸 볼 수 있다. 런던에 있을 때 나는 연극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가난한 지구에서 교육했는데, 다른 선생들이 자기 과목에서 못하는 아이들을 내 반에 보내야겠다는 말도 했다. 괜찮기는 한데,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만 예술쪽으로 찾아오는 것은 문제이다. 소위 똑똑하고 명민하다는 몇 안 되는 학생일수록 오히려 예술이 더 필요하다. 어쩌면 그들이 더 억압을 받는 상황일 것이기에 그러하다.

    ▶ 그러한 제도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나.
    = 하지만 영국도 지난 30년간 그 자랑스런 교육 과정이 점점 축소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화의 여파이고, 그 세계화는 모든 나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 세계의 학교가 시험 결과에 맞춰 아이들을 평가한다. 학교의 국제 순위를 메기기 위해 동일한 목표를 설정한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목적과 멀어진 모습이다. 교육의 목적은 아이들이 세상에서 자신을 찾아가도록 도움을 줘야 하고, 그것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어떤 마음을 가지는지 잘 알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지금은 시험을 잘 치느냐 못 치느냐로 아이를 판단한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고,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실패한 것이라고 하는 게 지금의 교육 시스템이다.

     

    ▶ 한국의 아동·청소년극은 연령이 혼재돼 있다. 이번 공연은 몇 세 대상인가.
    = 이 연극은 9세 이상 관람가인데, 사실 그 연령 질문도 답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이 항상 성장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12세라고 12세를 위한 연극이라는 건 틀린 말이다. 모든 연극은 모든 관객에게 영향을 끼친다. 아시아문화의전당 어린이극장에서 본 사진인데, 12개월 유아를 대상으로 한 연극에서 어머니들이 무릎에 자신의 아이들을 앉힌 채 함께 몰입한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유아는 유아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각자만의 방식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연극에 매우 집중한 상태이다. 그러면 이건 아이를 위한 연극일까, 어머니를 위한 연극일까. 답은 둘 다이다. 가장 좋은 관객은 연령대가 섞인 것이다. 다양한 경험과 나이 배경을 가진 관객이 각자의 생각을 하며 볼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연극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특정 관객층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대학로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이에 대해 하나만 더 말하면, 나이는 인위적인 것이다. 모든 9세가 같은 9세가 아니다. 성숙한 9세도, 덜 성숙한 9세도 있다. 어른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나이에 맞지 않게 유치한 어른도 있다.

     

    ▶ 한국 연극계는 미투 운동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영국도 그러한가.
    =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밑에서 끓고 있을 거라고 본다. 지금은 다른 이슈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지만 징조들이 보인다. 미투 운동은 어떤 면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뿌리 깊게 박혀 있던 핵심 문제를 짚고 있다. 모든 사회적인 조직들은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으로 짜여 있었기에, 현재 제기되고 고발되는 성폭행 사건 이상의 의미를 미투 운동이 다루고 있다고 본다. 모든 핵심은 권력에 있고, 권력의 남용이 문제이다. 지금 일어나는 일련의 미투 사건이 권력의 남용에서 벌어지는 문제라는 걸 이해해야 남성도 이 현상에 기여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내가 남성이고 한국인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지만, 외부인의 시각에서 한국의 미투 운동에 대해 한 가지 더 의견을 말하고 싶다. 현재 한국에서 보이는 여성운동이나 움직임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그 정도로 강한 움직임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 페미니즘 물결과 관련한 여파가 여성 인권에 영향을 미치고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 움직임이 오늘의 10~20대 여성에게 힘을 부여하고 움직일 힘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미투 운동은 이전까지 사적인 일이라 생각한 것들을 공적 영역으로 끌고 왔다. 이 움직임이 교육적 효과가 있기를 바란다. 열린 병을 다시 막으려는 움직임은 소용 없을 것이다. 바라건대 지금의 미투 운동의 효과가 앞으로 다가올 수년까지 미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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