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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키는 "미투"…뿌리깊은 장애여성 성폭력



문화 일반

    삼키는 "미투"…뿌리깊은 장애여성 성폭력

    [외면받는 장애여성 性인권] <상> '여성' 너머 또 다른 높은 벽 '장애'

    들불처럼 번진 '미투'(#Me_Too) 운동에도 여전히 웅크린 채 목소리를 삼키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여성'이라는 벽 너머 '장애'라는 또 다른 높은 벽을 마주한 장애여성들입니다. 지난 20년간 이러한 차별의 벽을 깨는 데 앞장서 '2017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포장을 받은, 장애여성네트워크 김효진(56) 대표에게 그 실상을 들었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 삼키는 "미투"…뿌리깊은 장애여성 성폭력
    (계속)

    (사진=자료사진/노컷뉴스)

     

    "장애여성들은 미투 운동의 영향을 크게 못 받고 있어요. (성폭력)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에요. 반대로 굉장히 뿌리깊은, 고질적이고 방대하고 만연한 문제여서 그렇습니다"

    김효진 대표는 "구조적으로 장애여성들은 미투 운동에 동참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했다. "개개인이 자기 권익을 옹호할 수 있는 힘을 지닐 수 없는 실정"이라는 이야기다.

    "제가 주목하는 데는 장애인단체들입니다. 이들 단체에 왜 문제가 없겠어요. 더 가부장적이고 더 남성중심적인 구조예요. (미투 운동이 불붙으면서)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는데도 (실상이) 잘 알려지지 않는 이유죠."

    그는 "지금 미투 운동 흐름이 있기까지 여성들이 사회 진출 등을 통해 꾸준히 축적해 온 힘이 있다"며 "물론 남성에 비해 현저히 약한 지위더라도 자신을 옹호할 수 있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폭력은 권력 구조 문제라고들 이야기하잖나. 비장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30%에 육박했다고 하는데, 장애여성들은 그렇지 못하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장애계에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어요. (전국 단위 장애인복지시설인)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소장이 반드시 장애인이어야 하는데, 여성이 소장인 경우는 극소수예요. 이들 장애여성 소장들마저 권력 구도 안에서 밀려나고 있는 상황이죠."

    김 대표는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단체에서 사무국장은 비장애 여성인 경우가 대다수라는 점"이라며 "일반적인 조직 구도에서 남성이 대표성을 띤다면 실무 보는 중간관리자는 여성인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도 장애여성은 못 들어간다"고 꼬집었다.

    "(중간 관리자는) 많은 양의 실무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일을 잘해야 하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장애여성들은 교육에서 크게 제외되고, 여러 차별 탓에 그만큼 훈련 받은 사람이 없어요."

    "단체에 소속된 장애여성 활동가들의 경우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김 대표의 지적이다.

    "그 활동가들 중에서 장애여성 활동가들은 허드렛일만 하는 사람으로 이른바 서열화 돼 있습니다. 철저히 배제되는 거죠. 이러한 구조 안에서 성추행, 성희롱이 일어날 수밖에 없죠. '너는 왜 그리 일을 못하니' '넌 여기 아니면 갈 데 없어', 이런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듣는 겁니다."

    ◇ 부당한 성차별에 저항했다가 낙인찍혀 떠도는 장애여성 '낭인'들

    장애여성네트워크 김효진 대표(사진=장애여성네트워크 제공)

     

    부당한 차별에 반발하는 장애여성들은 여지없이 2차 가해와 맞닥뜨리고 있었다.

    김 대표는 "어떤 장애여성이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라고 문제제기라도 하면 찍혀서 장애계에서, 장애인단체에서 일할 수 없게 된다"며 "'실력 없으면서 까칠하기만 한 장애여성'으로 낙인찍혀 여기저기 떠도는 낭인 같은 장애여성들이 실제로 있다"고 전했다.

    "최근 한 남성 장애인단체장이 성추행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는데, 피해자는 비장애 여성이었어요. 그 여성이 억울하니까 1인 시위도 하고 했습니다. (비장애계와) 똑같은 문법에 따라 소위 '꽃뱀'으로 몰렸기 때문이죠. 그 여성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너편에 장애인단체들이 모여 있는 이룸센터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는데 큰 관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장애계에서 먼저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와야 하는데, 이렇듯 그 힘이 결집되지 못하기 때문에 미투 운동 흐름에서도 잠잠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실 영화 '도가니'(2011) 등으로 장애인 성폭력 피해는 커다란 사회 문제로 다뤄지기도 했다.

    김 대표는 "'도가니' 때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많은 관심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권교육 강화한 것 외에는 별 것 없다"며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굵직굵직한 사건에 묻히는, 일상에 만연한 장애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문제는 어떻게 하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여성들 스스로 역량을 강화하고 힘을 기를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미투 운동이 불붙은) 지금이 굉장히 좋은 때이긴 하지만, '우리(장애여성들)가 들고 일어났을 때 과연 될까?'라는 회의감과 걱정이 커요. 장애여성들을 향한 사회적 관심이 10여 년 전에 반짝했는데, 최근에는 무엇을 해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어요. 몹시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그는 "특히 먼저 사회에 진출해 장애계에서 활동하는 장애여성들조차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에서, 시설에 사는 장애여성들의 경우 보다 심각한 성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요즘에는 이들에게 성폭력 교육을 많이 하는데, 정작 일상에서 중요한 '무엇이 성(性) 인권인지' '여성으로서 어떻게 존중받아야 하는지' 등에 관한 것은 배우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 "네가 어디 나갈 데는 있다고 그렇게 거울을 보냐?"

    (사진=자료사진/노컷뉴스)

     

    한 장애여성이 거울을 보고 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이 다음과 같은 말을 툭 내뱉는다.

    "네가 어디 나갈 데는 있다고 그렇게 거울을 보냐?"

    이러한 상황을 성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네 감수성은 여전히 바닥을 면치 못하고 있는 셈이다.

    김 대표는 위와 같은 일상의 성폭력 사례를 전하면서 "장애계에서도 인권 교육만큼이나 성 인권 교육 역시 강조돼야 한다"며 "어떠한 상황이 성 인권을 침해하는 것인지에 대한 인지 교육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명백한 성폭력임에도 피해자마저 '그 정도는 별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도록 만드는 겁니다. 장애여성들이 성 인권 인식 없이 이러한 대우를 받으면서 평생을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분명히 그러한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고 자존감이 떨어지고 하는데, 그것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장애여성 자신마저 분명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는 "지금은 관련 장애인시설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이 의무화 돼 있지만, 외부 강사를 불러와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지적을 이어갔다.

    "이들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성 인권 교육을 강도 높게 받도록 함으로써 그들이 일상에서 스스로 사용하는 언어와 태도를 바꿀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성교육 역시 '성폭력 피해를 어떻게 하면 당하지 않을지'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성 인지 감수성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를 여러 차원에서 고민해야 해요. 장애여성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교육 내용이 보다 세밀해져야겠죠."

    김 대표는 지금 미투 운동 흐름을 두고 "지금처럼 비장애 여성들이 미투 운동을 주도할 수 있는 데는 굉장히 큰 위험까지 감수했기 때문"이라며 "그들에게 '왜 장애여성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역설했다.

    "사실 과거에는 우리가 어디를 가나 그렇게 공격했어요. 그런데 비장애 여성들 역시 오랫동안 참고 견디다가 이제서야 어렵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는데, 거기다가 '왜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은 해결 방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결국 우리 장애여성들 스스로 목소리를 내면서 비장애 여성들과 힘을 합치는 방식을 치열하게 고민할 때"라며 "그렇게 장애여성들도 미투 운동에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외면받는 장애여성 性인권] <하>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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