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신정훈, 농민운동가에서 전남지사 변신 성공할까



광주

    신정훈, 농민운동가에서 전남지사 변신 성공할까

    (사진=자료사진)

     

    문재인 정부 청와대 신정훈 농업비서관이 '문재인 핫라인, 젊은 전남 신정훈'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전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한다.

    신 비서관은 15일 오전 10시 전남도의회 브리핑 룸에서 전남도지사 출마 기자회견을 갖고선거전에 뛰어든다.

    그는 농민운동가, 도의원, 나주시장, 국회의원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이제는 전남도지사 예비후보로 다시 전남도민들 곁으로 돌아왔다.

    신정훈 예비후보는 고려대 재학시절인 1985년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서울 미국 문화원 점거농성을 주도해 구속되는 등 대표적인 386세대 민주화 투쟁세력이다.

    그는 재판정에서 판사에게 "당신이 우리를 재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냐? 이런 역사적인 거사를 재판할 수 있는 사람이냐? 우리는 독재정권의 하수인인 재판부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가 '감치 15일'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그는 결국 미문화원 점거투쟁으로 2년 3개월의 옥살이를 치렀고 그의 아버지는 그가 옥중에 있을 당시 운명했다.

    교도소 복역 중 비보를 듣고 고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하관까지 다 해 흙을 덮었고 관 위만 쓸어놓은 상태였다. 그는 "관을 뜯어 달라"고 했고 아버지와 마주했다.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이었다. 옥고를 치른 뒤 곧바로 고향인 나주로 낙향해 농민운동을 시작했다.

    그가 앞장선 '수세(水稅) 거부운동'은 전국적으로 확대됐고 결국 정부로부터 수세 폐지를 이끌어냈다. 당시 전국 농민이 낸 수세는 1년에 대략 970억 원이 넘었다. 1987년 영산강농지개량조합이 나주지역에 부과한 수세만 20억 원이었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수세가 일제강점기를 거친 이후에도 여전했다. 그는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것을 지켜봤고 수세폐지운동에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는 1995년 민주당 텃밭인 나주에서 '무소속 농민후보'로 전남도의회 의원에 당선돼 재선을 했고 2002년과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역시 무소속으로 나주시장에 연거푸 당선됐다. 도의원·시장 모두 최연소 당선이었다.

    2009년에는 자격 없는 농업법인에 보조금을 지급했던 것이 문제가 되면서 2010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시장 직에서 하차하는 등 부침이 있었으나 얼마 후 사면 복권되면서 나주에서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2년 전 20대 총선에서는 안철수 돌풍에 무너졌고 지난해 문재인 청와대에 비서관으로 입성했다가 다시 고향 정치무대로 돌아온 것이다.

    민주당 전남도지사 경선에 나선 신정훈 비서관은 '문재인의 남자 문재인의 복심 신정훈'을 내세우고 선거전에 뛰어들고 있어 김영록 장관, 장만채 도교육감과 함께 예측불허의 3파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그가 당선할 수 있었던 밑바닥에는 꾸준하게 활동해온 농민운동 때문이었다. 농민들은 늘 그를 지키고 당선시켰다. 이번 도지사 선거에서도 농도인 전남지역의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벌써부터 흥미롭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