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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안나가 21세기 우리에게 “미투, 위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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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전시

    19세기 안나가 21세기 우리에게 “미투, 위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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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컷 리뷰] 뮤지컬 <레드북>

    뮤지컬 '레드북'. (제공 사진)
    “구인 광고를 보고 왔는데요.” (안나)
    “뭐야, 여자잖아.” (사장)
    “안나라고 합니다.” (안나)
    “뭐야, 늙었잖아.” (사장)
    “아직, 서른도 안 됐는데요.” (안나)
    “뭐야, 결혼도 안 했잖아.” (사장)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재산도 가질 수 없고, 오로지 결혼이 인생의 목표이자 전부라고 학습 받던 시대. 뮤지컬 <레드북>은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여성이 사랑을 쟁취하고 사회적 통념과 편견에 맞서 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은 안나. 슬플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하며 스스로에게 기운을 북돋는 조금은 엉뚱한 여성. 그는 우연히 신사임을 자처하는 브라운을 만난다. 스스로를 신사라고 자꾸 세뇌하듯 부르는 거 보면, 여성이 숙녀다움을 강요받는 만큼 남성도 신사다움을 강요받은 게 아닌가 싶다.


    뮤지컬 '레드북'. (제공 사진)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브라운은 안나가 하녀로 일할 때 모셨던 주인 바이올렛 부인의 손자. 안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삶의 활력을 찾았던 바이올렛이 안나에게 유산을 남겼고, 이를 전해주기 위해 브라운이 안나를 찾아오면서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다.

    극은 전반적으로 로맨틱 코미디이다. 숙맥 브라운과 당찬 안나가 서로를 미워하다 끌리는 만고불변의 연예 공식을 통해 결국은 이어진다는 게 줄거리의 큰 뼈대.

    하지만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안나의 당돌함이 빅토리아 시대 속에서 하나의 혁명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뮤지컬의 창작자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최근 전 사회적으로 불고 있는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 운동을 오버랩하게 만든다.

    여성은 글을 쓰면 손가락질 받던 시대에서 주인공 안나는 ‘역시나’ 글을 쓴다. 더불어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시대에 안나는 자신의 야한 추억과 상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뮤지컬 '레드북'. (제공 사진)
    책은 불티나게 팔린다. 심지어 런던에서 제일 영향력 있는 유명 평론가 딕 존슨이 안나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며 평론해주겠다고 하면서, 안나는 더욱 유명 작가로 발돋움할 기회를 얻는다.

    문제는 여기서 일어난다. 이름부터 이상한 느낌(?)을 풍기는 딕 존슨은 난봉꾼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평론을 빌미로 자신이 혼자 사는 집에 안나를 부르고, ‘역시나’ 추행한다. 안나는 그런 존슨의 존슨(?)을 걷어차 앞으로 남자 구실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

    존슨은 이 일을 조용히 넘기려 한다. 최근 아내와의 이혼 등으로 평판이 안 좋았기에, 안 좋은 소문을 더 내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브라운은 조용히 넘어가는 존슨을 보며, 안나에게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안나가 묻는다.

    뮤지컬 '레드북'. (제공 사진)
    “뭐가 다행인데요? 강제로 추행하고 마음대로 없던 일 만드는 게 다행이에요?” (안나)
    “법적으로는요. 추행보단 폭행이 훨씬 불리하니까. 게다가 그쪽은 증거도 확실하고.” (브라운)
    “말도 안 돼. 무슨 법이 그 따위에요.” (안나)
    “그러니까 처음부터 내 말 들었어야죠. 왜 계속 고집을 부려서 그런 수모를 당해요?” (브라운)
    “지금 내가 잘못했다는 거예요.” (안나)
    “당신 잘못이에요. 당신이 그런 소설을 쓰니까 사람들도 함부로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했다면 당신한테도 분명 문제가 있는 거라고요.” (브라운)
    “내 소설이 왜요? 그냥 내 얘기잖아요. 내가 살아온 얘기.” (안나)
    “여자잖아요. 어떤 여자도 자신의 신체에 대해 말하지 않아요. 그걸 글로 쓰는 건 더 말이 안 되고요.” (브라운)
    “봐요. 여자도 몸이 있어요. 당신처럼 똑같이 움직이고, 똑같이 느끼는 몸이 있다고요. 근데 왜 자꾸 여자만 안 된다는 거예요.” (안나)
    “그게 여자다운 행동이 아니잖아요.” (브라운)
    “(한숨) 그럼 내가 여자가 아닌가 보네요.” (안나)

    존슨은 ‘작가’ 안나, ‘여성’ 안나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계획을 실행한다. 안나를 폭행이 아닌 출판법 위반 혐의로 고소한다. 안나가 쓴 소설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혼란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여기에 안나와 함께 잡지를 펴낸 여성 동지들이 소속한 ‘로렐라이 언덕’까지 싸잡아 고소했다. 사실상 협박이자, 2차 가행이다.

    뮤지컬 '레드북'. (제공 사진)
    창작자가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작품 속에서 ‘미투’가 오버랩된다. (기사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지만) 안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는 행위 자체는 ‘미투’이다.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그 일을 안나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이율배반적이면서도 위선적인 이 남성 시대를 고발한다.

    억지일 수 있지만, 안나를 고소로 입막음하는 존슨은 우리 시대 가해자들의 사과하지 않는 모습을 비유하고, 브라운은 침묵하는 동조자를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피해자인 안나에게 ‘당신도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브라운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공연은 (창작자가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우여곡절을 거쳐 ‘위드유’라는 메시지를 남기면서 마무리한다. 이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사는 안나가 21세기 대한민국 관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해질 때까지 /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어요 / 거짓된 말들이 고요해질 때까지 / 더욱 큰 소리로 떠들어요 / 당신이 거기 있다는 걸 / 우리와 함께 한다는 걸 / 당신이 잊지 않도록 / 모두가 잊지 않도록 / 그때가 언제라도 / 당신이 누구라도 / 거기 그 자리에서 / 지금 그 모습으로 / 당신이 누군지 말해줘요 / 당신의 얘기를 들려줘요.”

    공연은 3월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 아이비/유리아(안나), 박은석/이상이(브라운), 지현준/홍우진(로렐라이), 원종환(존슨), 김국희(도로시/바이올렛), 윤정열(앤디), 안창용(잭), 김승용(헨리), 허순미(줄리아), 정다희(코렐), 이다정(메리), 김상균·황두현·김우석(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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