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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은 왜 '학교폭력'보다 덜한 범죄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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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

    '성폭력'은 왜 '학교폭력'보다 덜한 범죄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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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남덕현 "뿌리깊은 '여성정조주의'와 깊은 관련"

    (사진=자료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미투운동을 지지하지만 전개양상이 지나치다는 식의 논리, 이용 당할 여지가 있다는 음모론,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한다는 호들갑, 그 이면에는 케케묵은 정조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미투 운동에 '피해자의 진정성'을 들이대는 움직임을 두고, 작가 남덕현이 "'화냥년' 아니면 '논개'가 있을 뿐, 구조적 폭력의 피해자로서 보호받아야 할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남덕현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회의 여성정조주의'라는 글에서 "강하게 저항 하든가, 놈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지를 말든가, 따라갔어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든가, 한 번 당했으면 두 번 당하지 말든가, 그런 일을 당했으면 학교를 때려치든가, 진즉 경찰에 신고를 하든가,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알리든가…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아이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라고 운을 뗐다.

    "왜냐하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을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학교폭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기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학교폭력에 대해 전혀 이해를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그런 몰이해가 2차가해로 이어진다."

    그는 "우리가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얘기하는 이유는, 피해자가 즉각적인 저항이나 사후 합리적 조치를 사고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권력의 위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래서 학교폭력은 일회성이 아니라 반복성을 갖는다. 그래서 심각한 것이다. 학교폭력이 작동하는 메카니즘을 잘 알기에 우리는 피해학생의 무저항이나 비합리적 복종을 탓하지 않는다. 강력한 권력의 위계에서 작동하는 학교폭력과 그것을 집행하는 행위를 '범죄'로 보고 사회적 문제로 다루는 것이다."

    남덕현은 "성폭력도 학교폭력과 마찬가지로 권력의 위계가 작동하는 범죄다. 직장상사와 부하직원의 위계, 도지사와 비서의 위계,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의 위계질서처럼 유지되어 온 남성과 여성의 젠더위계"라며 "그러나 사회는 성폭력 피해여성에게는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한다. 학교폭력의 피해자들에게는 2차가해가 될 질문들을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게는 서슴없이 던진다"고 꼬집었다.

    "왜 그럴까? 왜 같은 권력위계에서 작동하는 범죄임에도, 그래서 일회성이 아니라 구조적인 반복성을 갖는 범죄임에도, 왜 이런 차별이 생겨나는 것일까? 왜 피해여성들에게는 가혹하리만치 즉각적인 저항이나 합리적인 대처(때로는 현명한 대처)가 없었음을 질타하는 걸까? 왜 여성은 성폭력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면 폭력의 피해자가 아니라 '공범'의 혐의를 받게 되는 걸까? 왜 여성에게 만큼은 폭력의 불가항력적 구조와 그로부터 반복되는 가해의 메커니즘이 적용되지 않는 걸까? 왜 여성에게는 불가항력에 저항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지는 걸까?"

    ◇ "'진정하게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만 발언권 갖는다?…그 기준 누가 정하나"

    (사진=작가 남덕현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나는 그것이 뿌리깊은 '여성정조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본다"는 것이 남덕현의 진단이다.

    "성폭력을 다른 폭력범죄와 다르게 보는 이유, 가해자의 폭력성보다 피해자의 저항여부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 가해자의 비합리성보다는 피해자의 비합리적 대처에 '공범'의 알리바이를 적용하는 이유, 그것은 사회가 성폭력을 가해와 피해의 관점에서 보기 이전에 '몸을 더럽힌 정조상실'의 혐의를 먼저 여성에게 두기 때문이다."

    그는 "그래서 같은 가해학생에게 반복적으로 폭력을 당하는 피해학생의 공포와 무기력, 비합리적인 복종에 대한 구조적분석은 여성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 '어쩔 수 없음'을 강요하는 메카니즘도 여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라며 "그래서 '화냥년' 아니면 '논개'가 있을 뿐, 구조적폭력의 피해자로서 보호받아야 할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투운동이 거세지면서 정조주의가 만연한다. 대놓고 논개나 은장도를 떠드는 치들도 있다. 논외로 치자. 문제는 또 다른 양상의 정조주의"라며 "미투운동을 정치공학의 관점에서 '이용하고' '이용 당하는' 문제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일에는 반드시 피해여성에 대한 정조주의가 따라 붙기 마련"이라고 분석했다.

    "보수가 진보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미투운동이 조정되어야 하고 조절되어야 한다면, 성폭력도 범죄가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조정되고 조절되어야 하고, 결국 피해여성의 고통도 폭력의 피해자로서의 고통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으로 조절되거나 조정되어야 한다. 대체 어떻게 조절하고 조정한다는 말인가? 불보듯 뻔하다. 이 사회가 성폭력을 다른 시각으로 조절하고 조정하는 일, 피해여성을 다른 시각으로 조절하고 조정하는 일, 그것이 '꽃뱀'이거나 '정조상실" 의 담론에서 벗어난 적이 있었던가?"

    남덕현은 "결국, '진정하게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만 발언권을 갖아야 한다는 말인데, 대체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이며 진정성은 누가 어디서 심사한다는 말인가?"라며 "미투운동이 '정조주의'에 입각해서 '한 번' 이 아니라 '여러 번'에 해당하는 여성들, 충분히 저항하지 않은 여성들, 합리적조치를 취하지 못한 여성들을 걸러내야 미투 운동은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특히 "착각은 금물이다. 미투운동의 방법은 누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여성이 정하는 것이다. 그 수위와 확산의 범위도 누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피해여성이 정하는 것"이라며 "미투와 패미니즘을 지지하지만 미투와 패미니즘 운동을 사회가 정한 기준에 의해 조정하고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조정과 조절, 사회적기준에 깔려 있는 뿌리깊은 '정조주의'는 충분히 극복된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미투운동을 지지하지만 전개양상이 지나치다는 식의 논리, 이용 당할 여지가 있다는 음모론,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한다는 호들갑, 그 이면에는 케케묵은 정조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미투운동을 지지한다면서 미투운동의 커서를 가해자의 '위계폭력'에서 '피해자의 진정성'으로 옮기려는 시도들이 난무한다. 묻고 싶다. 대체 미투운동을 왜 지지하는가?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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