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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없었다면 황제 윤성빈이 있었을까요?"



스포츠일반

    "이 사람 없었다면 황제 윤성빈이 있었을까요?"

    세계 최초 대학 썰매부 창단 김종욱 한체대 교수

    '진짜 금은 아닙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스켈레톤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윤성빈이 2월 16일 오후 강원도 평창 메달플라자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한형 기자)

     

    17일 동안 대한민국에 진한 감동을 안겼던 2018 평창동계올림픽. 비록 태극전사들은 목표로 했던 종합 4위를 이루지 못했지만 역대 최다 종목(6개)에서 최다 메달(17개)이라는 의미있는 성과를 냈다.

    모두 값진 메달들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스켈레톤 윤성빈(25·강원도청)의 금메달은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동계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빙상(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피겨) 외에 나온 메달인 데다 아시아 썰매 종목 사상 최초의 메달이기 때문이다.

    메달 다변화의 신호탄을 쏜 쾌거로 한국이 진정한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거듭날 초석이 될 만한 사건이었다. 여기에 유럽과 미국이 득세하던 썰매 종목에서 아시아의 가능성을 보여준 메달이었다. 더군다나 금빛으로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윤성빈이었다. '썰매의 김연아'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이유다.

    이런 대단한 업적이 하마터면 이뤄지지 못할 수도 있었다. 향후 10년 세계 스켈레톤을 지배할 황제를 배출해낸 요람이 없었다면 그럴 수 있었다. 윤성빈이 스켈레톤에 입문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해준 배경이다.

    '진짜 공로자도 이 자리에 있습니다' 2일 오전 서울 송파구 한국체육대학교 필승관에서 열린 2018학년도 입학식 및 제23회 평창동계올림픽 선수단 환영식에서 김성조 한체대 총장이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오른쪽)에게 포상금을 전달하고 있다. 김종욱 전 총장도 이 자리에 참석했으나 사진에는 가려졌다.(윤창원 기자)

     

    알려진 대로 윤성빈이라는 재목을 발굴한 이들은 신림고 시절 체육교사였던 김영태 관악고 교사와 강광배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다. 2012년 당시 국가대표 재목을 구하던 '한국 썰매의 개척자'인 강 교수에게 김 교사가 윤성빈을 추천하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강 교수는 진짜 공로자는 따로 있다고 말한다. 바로 김종욱 한체대 교수(62)이자 전 총장이다. 강 교수는 "김 총장이 없었다면 윤성빈의 금메달도 없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 썰매 새 역사 창조의 산파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의 가장 큰 공로는 한 마디로 한체대에 썰매부를 창단한 것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그 과정은 가시밭길이었다. 온갖 반대와 의혹의 시선에도 세계 최초로 대학 썰매부를 만들었고, 지원을 끊지 않은 덕에 마침내 값진 결실을 얻은 것이다.

    지난 2009년 5대 총장으로 취임한 김 교수는 2011년 7월 강원도 평창의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되자 큰 결단을 내렸다. 바로 썰매부를 창단해야겠다는 계획이었다. 지금까지 빙상에서만 메달을 따냈던 한국이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됐는데 다른 종목에서도 메달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위상이 떨어질 것을 염려한 까닭이었다. 김 교수는 "명색이 국립대학인데 이런 때 나서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반대가 극심했다. 썰매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메달을 기대하기가 무리라는 의견이 많았다. 특히 예산과 특기생 등이 정해져 있는 한체대의 상황에서 썰매부 창단은 기존 운동부서가 '파이'를 뺏길 수도 있었다. 김 교수는 "당시 다른 교수들의 반대가 많았다"면서 "썰매부를 창단하면 교수와 특기생 TO(정원)가 줄어들 수 있어 더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당시 총장이던 김 교수는 창단을 밀어붙였다. 즉시 강광배 당시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에게 썰매부 감독을 제의했다. 강 교수는 "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는데 일면식도 없던 김 총장이 명함을 주고 '연락을 기다리겠다'고 하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올림픽에만 4번이나 출전한 강 위원을 적임자로 낙점해 무턱대로 찾아간 것. 강 교수는 "당시 다른 대학도 썰매부 창단 움직임이 있어 제의가 왔지만 김 총장의 열정에 며칠 뒤 연락을 했다"고 덧붙였다.

    2012년 5월 한체대 썰매부 창단식에서 김종욱 전 총장(오른쪽)이 이보 페리아니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회장으로부터 세계 최초 대학 썰매부 창단에 대한 감사패를 받는 모습.(자료사진=한체대)

     

    강 교수를 어렵게 초빙했지만 문제는 여전했다. 선수 TO, 전공 특기생이 없었다. 강 교수는 "2012년 3월 학생들을 받아야 했다"면서 "그러나 선수가 없어 역도, 육상, 스키부 등에서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부상을 당했거나 중간에 운동을 그만뒀던 학생들을 모아 팀을 꾸려 그해 5월 어렵게 창단했다.

    그러던 한체대 썰매부는 드디어 신입생을 받을 수 있는 2013년을 맞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강 교수는 김영태 교사의 추천을 받아 고교생이던 윤성빈을 발굴했던 터. 그러나 걸림돌이 있었다. 다름아닌 썰매부 특기생 TO가 없었던 것. 아무리 빼어난 재능이 있어도 입학 정원에 포함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고, 윤성빈의 천부적인 조건도 그대로 묻힐 위기였다.

    이때 김 전 총장이 나섰다. 훈련생 TO 1명의 자리를 마련해 윤성빈을 입학시킨 것. 김 교수는 "강 교수가 정말 평창올림픽에서 메달이 확실한 기대주로 꼭 받아야 한다고 읍소를 했다"면서 "그런 강 교수를 믿고 주변 교수들을 설득해 TO를 만들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하마터면 무적 신분이 될 뻔했던 윤성빈이 우여곡절 끝에 한체대 썰매부에 들게 된 사연이었다.

    어렵게 입학을 하게 된 윤성빈은 이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힘겨운 훈련을 이겨내며 2013-2014시즌부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아메리카컵과 대륙간컵에서 입상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16위에 머물렀지만 2014-2015시즌 IBSF 월드컵에서 은과 동메달을 수확해내며 정상권에 근접했다.

    윤성빈이 성적을 내자 한체대 내에서도 썰매부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2013년 3월 총장 임기가 끝났어도 여전한 관심을 보낸 김 교수와 강 교수의 노력을 더해 다른 종목 교수들이 차츰 TO를 양보하면서 안정적으로 선수들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강 교수는 "올해도 5명이 입학하는 등 현재 15명의 부원이 훈련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결국 이런 노력들이 모여 윤성빈의 금메달이라는 찬란한 결실을 만들어낸 것이다.

    스켈레톤 금메달을 획득한 윤성빈이 16일 강원도 평창군 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4차 주행을 마친 뒤 세배를 하고 있다. 이한형기자

     

    마음고생도 많았다. 종목의 특성상 적잖은 예산이 들어가는 만큼 결과도 중요했다. 김 교수는 "사실 썰매부 창단 당시 거센 반대를 '평창올림픽에서 무조건 메달이 나올 것'이라는 말로 달랬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메달이 혹시라도 나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고 털어놨다.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비난의 화살이 부메랑이 돼서 돌아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성빈이 기대에 부응하면서 마음고생은 뿌듯한 보람으로 바뀌었다. 김 교수는 "창단 당시의 어려운 환경과 그동안의 과정을 생각하면 힘들었다"면서 "그러나 윤성빈에 이어 남자 봅슬레이 4인승(은메달)까지 썰매 종목에서 메달이 나오면서 정말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환하게 웃었다.

    사실 김 교수는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간판 이승훈(30·대한항공)의 발굴에도 적잖은 역할을 했다. 알려진 대로 이승훈은 쇼트트랙에서 전향해 대성한 선수. 그러나 2010년 밴쿠버올림픽 전에는 철저한 무명이었다. 당시 쇼트트랙 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진 이승훈이었다.

    그러나 이승훈의 장거리 능력을 눈여겨본 전명규 한체대 교수가 캐나다 캘거리 전지훈련을 당시 총장이던 김 교수에게 요청했다. 김 총장은 전 교수를 믿고 2400만 원의 전훈비를 지원했고, 결국 아시아 빙속 최초 장거리 메달(5000m 은)에 이어 1만m 금메달의 대박이 터졌다. 김 교수는 "전 교수가 무조건 메달이 나온다고 해서 어렵지만 지원을 해줬다"고 웃으며 당시를 회상했다.

    '벌써 6년 전 사진' 지난 2012년 5월 한체대 썰매부 창단식 당시 선수들이 관계자들과 함께 한 사진. 김종욱 전 총장 위가 강광배 교수다.(자료사진=한체대)

     

    대한체육회와 장애인체육회 이사를 역임한 김 교수는 2006년 대통령 표창(근정포장)을 받은 데 이어 아스타나-알마티동계아시안게임 선수단장을 맡은 2011년에는 이승훈과 이상화(스포츠토토), 모태범(대한항공) 등 밴쿠버 금메달 3총사를 길러내 대한민국 체육상 공로상을 수상한 바 있다. 특히 당시 상금 1000만 원 전액을 한체대에 기부하기도 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동계스포츠의 역사를 새로 쓴 윤성빈, 그에 앞서 새 역사를 창조했던 이승훈. 물론 선수 본인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영웅들의 탄생을 위해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바탕을 마련해준 김 교수 등의 선구자적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썰매의 개척자 강광배 교수는 "윤성빈의 금메달이 탄생하기까지 힘든 상황을 해결해준 김 교수 같은 인물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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