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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평창 레터]심판들은 이미 알고 있었죠, 윤성빈의 압승을



스포츠일반

    [임종률의 평창 레터]심판들은 이미 알고 있었죠, 윤성빈의 압승을

    '이 맛이 금맛이여'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스켈레톤에서 우승한 차지한 윤성빈이 16일 오후 강원도 평창 메달플라자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깨무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평창=노컷뉴스)

     

    10년 동안 군림해온 황제를 폐위시키고 스켈레톤의 새 황제로 우뚝 선 윤성빈(24 · 강원도청). 16일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스켈레톤에서 4차 시기까지 3분20초55, 2위와 무려 1초63이나 앞선 기록으로 이날 평창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됐습니다.

    한국 썰매 사상 최초의 메달을 넘어 최초의 금메달을 목에 건 겁니다. 특히 아시아 썰매(스켈레톤 · 봅슬레이 · 루지) 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니 윤성빈이 얼마나 큰 일을 해냈는지 짐작이 갑니다. 서양, 특히 동계 스포츠 강국인 유럽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종목에서 극동 아시아의 청년이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킨 사건인 겁니다.

    윤성빈의 우승은 사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점쳐졌던 일입니다. 윤성빈이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34 · 라트비아)에 압승을 거둘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가장 최근까지도 월드컵 등 스켈레톤 경기를 엄밀하게 지켜봐온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심판들입니다.

    남자 스켈레톤 경기가 열리기 3일 전인 지난 12일. 강원도 강릉의 한 식당에서 우연찮게 한 무리의 외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한 한국인 남성과 유쾌하고 웃고 떠들며 만찬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디스 이스 코리안 시푸드 수프 라멘' 강광배 한체대 교수(가운데)가 12일 강원도 강릉의 한 식당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별미인 해물라면을 먹는 모습.(강릉=노컷뉴스)

     

    한국인 남성은 바로 강광배 한체대 교수였습니다. 강 교수는 '한국 썰매의 개척자'로 불리는 인물. 1998년 나가노 대회(루지)부터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2006년 토리노(이상 스켈레톤), 2010년 밴쿠버(봅슬레이)까지 4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해 한국 썰매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세 종목 올림픽 출전은 강 교수가 유일합니다.

    강 교수와 만찬을 함께 한 외국인들이 바로 IBSF 심판들이었습니다. 강 교수가 아시아인 최초로 IBSF 부회장으로 당선된 이후 함께 지냈던 이들이었습니다. 강 교수는 "예전 친구처럼 지내던 사이"라면서 "평창올림픽을 위해 방한한 만큼 나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과연 심판들은 이번 올림픽 스켈레톤 승부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윤성빈이 워낙 상승세를 달리고 있지만 지난 10년 동안 스켈레톤을 주름잡았던 두쿠르스의 저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단 강 교수는 "심판들과 예전부터 얘기해왔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윤성빈이 이길 것이라고 대부분 예상하고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이어 "누구보다 윤성빈과 두쿠르스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경기를 봐온 심판들인 만큼 예상은 정확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이들은 공정을 기해야 하는 심판이기에 공공연하게 그런 얘기는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래도 궁금증이 일어 강 교수의 도움을 얻어 한 심판과 인사를 나누고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스위스 국적의 마틴 루프 심판입니다. 봅슬레이 선수 출신으로 현재는 심판으로 활동 중입니다.(강 교수는 "스켈레톤은 썰매 43kg, 선수와 합계 115kg 등 무게 제한이 있는데 여기서 0.01kg이라도 초과하면 심판이 실격을 선언할 수 있다"고 말하더군요.)

    '윤성빈 파이팅' 마틴 루프 IBSF 심판이 12일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평창올림픽 선전을 다짐하는 모습.(사진=노컷뉴스)

     

    일단 루프 심판은 윤성빈과 두쿠르스의 대결에 대해 "올림픽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면서 쉽게 예상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 선수의 최근 성적과 장단점을 말하는 그의 비교에서 누가 이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루프 심판은 윤성빈의 허벅지에 대해 찬탄을 금치 못하더군요. 63cm(24.8인치)에 이르는 윤성빈의 허벅지에 대해 루프 심판은 "지금까지 많은 선수들을 봐왔지만 윤성빈처럼 두꺼운 허벅지는 평생 처음"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허벅지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주력으로 그만큼 빠른 스타트를 할 수 있다는 겁니다.(심판도 놀랐다 "윤성빈, 그런 허벅지는 내 평생 처음")

    (실제로 윤성빈은 이번 올림픽에서 스타트 타임이 놀라울 정도로 빨랐습니다. 1~4차 시기까지 4초59에서 4초64에 불과했습니다. 은메달을 따낸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 니키타 트레구보프는 4초73~76이었습니다. 여기서만 0.1초 이상 차이가 난 겁니다. 혹독한 훈련으로 다져진 아이언 보디, 그야말로 '철벅지'의 힘입니다.)

    루프 심판의 두쿠르스에 대한 평가는 화려한 경력과 풍부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는 "두쿠르스가 월드컵 등 최근에는 기복이 심했다"면서도 "그러나 두쿠르스기 때문에 올림픽에서 누가 우승할지 장담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두쿠르스는 스켈레톤 월드컵에서 2016-2017시즌까지 무려 8연패를 달성했습니다. 세계선수권은 2017년까지 최근 6년 동안 5번이나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러니 두쿠르스를 결코 무시할 수 없었던 겁니다.

    '384번째 주파?' 한국 스켈레톤 남자 대표팀 윤성빈이 16일 강원도 평창군 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4차 주행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고 있다.(평창=노컷뉴스)

     

    하지만 루프 심판은 가장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습니다. 일단 "이번 대결은 아무도 모른다"면서도 그는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바로 "윤성빈은 전 세계 누구보다 평창슬라이딩센터를 많이 타봤다"는 겁니다.

    코스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한 썰매 종목인 만큼 이 말은 승자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윤성빈은 380번 이상 코스를 주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만큼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었기에 가능했던 금메달이었던 겁니다.

    이미 심판들은 누가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가 될지 알고 있었습니다. 이름만 얘기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강 교수는 "루프 외 다른 심판들도 대부분 같은 의견"이라면서 "내가 200% 윤성빈이 이긴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심판들의 예상대로, 또 강 교수의 확신대로 윤성빈은 압승을 거뒀습니다. 역대 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역사상 2위와 가장 큰 격차였습니다. 1948년 생모리츠올림픽의 1.4초를 넘어선 1.63초의 간격. 0.001초를 다투는 스켈레톤에서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입니다.

    강 교수를 비롯해 전문가들은 향후 10년은 윤성빈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들 합니다. 오는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과 아직은 정해지지 않은 8년 뒤 대회까지 윤성빈이 스켈레톤 황제가 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만약 혹시라도 다음 올림픽도 현장 취재를 하게 된다면, IBSF 심판들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스켈레톤 기사를 미리 준비해놓고 편하게 경기를 지켜보려면 말입니다. 이미 그들은 누가 이길지 알고 있으니까요. 다만 아마도 그때는 저도 이미 알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윤성빈의 허벅지 두께를 체크해두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습니다.

    '국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스켈레톤 금메달을 획득한 윤성빈이 16일 강원도 평창군 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4차 주행을 마친 뒤 세배를 하고 있다.(평창=노컷뉴스)

     



    ps-윤성빈의 금메달 질주를 직접 중계 해설한 강 교수와 경기 후 연락이 닿았습니다. 하도 소리를 질러 살짝 목이 잠긴 강 교수는 "내 눈으로 직접 한국 썰매의 금메달을 봤으니 이제는 정말 여한이 없다"고 감격해 했습니다.

    사실 강 교수는 송사에 휘말려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강 교수가 봅슬레이 대표팀을 이끌던 2008~2010년 각종 공갈과 강요, 업무상 횡령을 저질렀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던 겁니다. "죽고 싶었지만 아이들, 가족 때문에 참았다"는 강 교수는 결국 지난 2016년 1월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고 누명을 벗었습니다.

    강 교수는 "경기 후 심판들을 다시 만났는데 '정말 축하한다' '당신이 뿌린 씨앗 덕분에 한국 스켈레톤이 결실을 맺었다'는 덕담을 해줬다"면서 고마움을 드러냈습니다. 사실 강 교수가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잘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썰매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강 교수의 헌신을 역시 심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겁니다. 강 교수의 씨앗이 찬란하게 꽃피운 한국 썰매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모처럼 만난 좋은 친구들' 강광배 한체대 교수(뒷줄 가운데)가 12일 IBSF 부회장 시절 함께 했던 심판들과 기념촬영을 한 모습.(강릉=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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