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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이호준처럼?' 빙상은 박승희처럼!



스포츠일반

    '인생은 이호준처럼?' 빙상은 박승희처럼!

    '행복했어요. 감사합니다!' 박승희가 14일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000m에서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경기를 치른 뒤 취재진과 인터뷰를 마치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강릉=노컷뉴스)

     

    프로야구에서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라는 말이 있다. 슈퍼스타의 자리까지 오르지는 못했어도 나름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장기간 선수 생활을 유지한 알짜배기 인생을 살았던 이호준(은퇴)을 빗댄 것이다.

    물론 이호준은 실력이 있었다. 다만 한국 프로야구의 홈런왕 이승엽, 풍운아 임창용(KIA) 등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동시대 최고의 선수들과 비교해 임팩트는 살짝 적었다.

    그러나 성실한 성격에 타고난 입담, 신생팀 창단이라는 운까지 맞아떨어지면서 결코 남부럽지 않은 선수 생활을 보냈다. 투수로 입단해 타자로 전향한 사연도 있었다.

    한국 빙상이라면 이런 존재가 누가 있을까. 여자 선수 중에는 아마도 박승희(26 · 스포츠토토)가 아닐까. 시대를 대표하는 에이스는 아니었으되 꾸준했고, 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은 승부사 기질에 활달한 말솜씨까지 더해져 빙상 스타로 오랫동안 또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박승희는 14일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오벌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000m 경기로 올림픽을 마무리했다. 기록은 1분16초11, 31명 출전 선수 중 16위로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14일 오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000m 경기에서 박승희가 질주를 하고 있다.(강릉=노컷뉴스)

     

    벌써 3번의 올림픽이었다. 4년의 준비 과정을 감안하면 12년 세월이다. 그동안 박승희는 쇼트트랙에서 금메달 2개와 동메달 3개 등 500m, 1000m, 1500m까지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따낸 선수가 됐다.

    특히 한국 빙상 사상 최초로 두 종목 올림픽 출전이라는 역사를 썼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모두 올림픽에 나선 선수는 박승희가 유일하다. 이번 대회에서 박승희는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한국 체육 역사에 이름을 아로새겼다.

    사실 박승희는 쇼트트랙 선수 시절이던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올림픽 당시 세계가 주목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밴쿠버올림픽은 3관왕 왕멍(중국)이 휩쓸었고, 2014년 소치올림픽 당시는 심석희(21 · 한체대)의 기세가 등등했다. 박승희는 두 대회 모두 올해의 최민정(20 · 성남시청) 등 압도적인 에이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찾아온 기회는 놓치지 않았다. 2010년 밴쿠버 대회 당시 18살이던 박승희는 일단 동메달 2개로 첫 올림픽을 치렀다. 이후 4년 뒤 한국 여자 대표팀의 에이스는 심석희였다. 그러나 소치올림픽 2관왕은 박승희가 차지했다.

    박승희도 실력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살짝 운도 따랐다. 당시 에이스던 심석희가 소치올림픽을 일주일 앞둔 유럽 전지훈련에서 장염이 걸린 것. 이 여파로 대회 초반에는 힘을 제대로 낼 수 없었다.

    이에 심석희는 3관왕이 예상됐지만 개인전은 은(1500m), 동메달(1000m)에 머물렀다. 박승희는 1000m 결승에서 과감한 인코스 공략으로 스퍼트를 하지 못한 심석희를 제치고 금메달을 따냈다.

    소치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1000m에서 박승희가 금메달을 따낸 가운데 중국 판커신(왼쪽), 심석희 등 메달리스트들과 시상대에 선 모습.(자료사진=대한체육회)

     

    기력을 되찾은 심석희는 마지막 날 3000m 계주에서 눈부신 역주로 금메달을 이끌었다. 박승희는 심석희의 대활약에 2관왕이 될 수 있었다. 물론 박승희도 금메달리스트에 맞는 경기력을 보였지만 심석희의 존재감이 컸던 계주였다.

    박승희는 사실 소치올림픽 500m에서 불운이 있었다. 스타트에서 가장 앞서 1위로 치고 나갔지만 엘리스 크리스티(영국)의 무리한 플레이에 함께 넘어지면서 금메달이 무산됐다. 그러나 이후 구제돼 동메달을 받았고, 억울한 피해를 입었다는 동정적인 시선이 따르면서 호감도는 더욱 커졌다. 1000m 등 2관왕까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모양새였다.

    소치올림픽 이후 박승희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심석희에 최민정까지 무서운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는 쇼트트랙을 떠나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 박승희는 이승훈(대한항공), 김보름(강원도청) 등 다른 쇼트트랙 출신 선수처럼 장거리가 아닌 단거리를 선택했다.

    결국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 출전해 쇼트트랙까지 두 종목에서 올림픽에 나선 최초의 한국 선수가 된 것이다. 만약 박승희가 은퇴 위기에 놓였던 소치 대회 직후 스피드스케이팅이라는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면 그의 올림픽은 소치에서 끝날 것이었다. 그러나 과감한 도전과 선택으로 한국 빙상 최초의 두 종목 올림피언이라는 역사를 쓸 수 있었다.

    '나의 마지막 올림픽' 14일 오후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000m 경기에 출전한 박승희가 결승선을 통과후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강릉=노컷뉴스)

     

    14일 도전을 마무리한 박승희는 "올림픽은 정말 마지막일 거 같다"면서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회에 한번 뛰어본 것도 감사하다"고 연신 웃음을 지었다. 이어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는 순간에 대해 "별 생각 없이 이제 끝났다는 생각, 조금 힘들기도 했고 후회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쇼트트랙 했을 때는 메달권에 있었기 때문에 응원을 받았다"면서 박승희는 "그러나 이번에는 확실한 메달권에 드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조건없이 많이 응원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정상에서 낮은 자의 경험까지 더한 박승희다.

    또 박승희는 "쇼트트랙에 더 애정이 가지만 스피드스케이팅도 이번에 너무 힘들고 값진 운동이라는 것을 알았다"면서 "스피드스케이팅이 조금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어 마지막 올림픽 인터뷰를 마친 뒤 행복한 표정으로 취재진에게 거듭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천재적인 재능과 압도적인 기량은 아니었으되 성실한 노력과 과감한 선택, 또 거기에 운까지 따르며 행복한 선수 생활을 해온 박승희. 이제 그의 올림픽은 끝났지만 박승희의 스케이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올림픽 여정을 마친 박승희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야구에 이호준이 있다면 빙상에는 박승희가 있다. 빙상 인생은 박승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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