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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계도 '미투'…"내 여후배·여제자 위해 동참"



공연/전시

    공연계도 '미투'…"내 여후배·여제자 위해 동참"

    성폭력 피해 폭로 하나둘씩 나와 … "더 이상 침묵하지 말자" 분위기 확산

     

    "그때는 나도 어려서 어찌할 줄 몰랐지만 어린 여후배들과 여제자들을 위해 미투운동에 동참한다. 돈 못 버는거 알면서도 열정과 꿈 하나도 덤벼드는 여린 영혼들을 너희의 별거 아닌 지위로 건드리지 마라." - 연극인 B씨.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공연계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연극인 A씨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도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며, 미투 운동에 동참했다. 그가 지목한 가해자는 전날 성추행 사실을 인정·사과하고 출연 중인 작품에서 하차한 연극배우 이명행이었다.

    A씨는 "미투가 시작되고 나서 몇번이나 이 글을 쓸까 고민했다가 (이명행의 성추행 사과) 뉴스를 보고 마음이 굳었다"며 "이명행, 너 아직도 이러고 다니는 거냐"고 일갈했다.

    배우 이명행(위)과 아래는 피해자 A씨가 남긴 글.

     

    그는 2년 전쯤 조연출로 이명행과 같은 작품에 들어갔고, 그때 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모두가 퇴근한 시간 대에 극장 위쪽에 있는 대본 리딩 공간으로 노트북을 가지러 갔는데 이명행이 따라와서 신체적·언어적으로 성추행했다는 것.

    다행히 건물 관리인이 와 위기를 모면했다. 이후 A씨는 이명행에게 사과를 요구했으나, "어제 과음을 해서 자세히 기억나지 않아 미안하다"는 뻔뻔한 소리를 들어야 하기도 했다.

    A씨는 "(재차) 사과를 요구해 제대로 사과도 받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어 악습의 고리를 끊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오만이었다"며, "그때 공개적으로 법적으로 행동했다면 오늘의 당신(또 다른 피해자)은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될 텐데, 미안하다"고 했다.

    이어 "내가 겪은 일은 내가 해결하자고 생각했던 것이 큰 오류"라며 "미투는, 여성만을 위한 움직임이 아니다. 남녀 모두 포함해 앞으로 올 세대가 서로를 바라보고 사회에서 함께 작업할 수 있도록 올바른 시선을 구축하는 출발선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투에 동참한, 그리고 발언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덧붙였다.

    배우 B씨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 (캡처 사진)

     

    한 창작집단의 대표인 배우 B씨도 자신이 당한 일을 SNS를 통해 폭로했다. B씨는 "대학 때 엠티가서 술 먹고 자던 여자애들 다 주물러댔던 남자선배가 나중에 좋은 이미지로 광고까지 나왔다", "집에 가기 싫다며 둘이서만 술 한 잔 하자는 밤늦게 느끼하게 전화하던 유부남 남자 뮤지컬 배우도 있었다" 등 자신이 겪은 일들을 하나씩 기록했다.

    이어 "나까지는 참겠다. 내 어린 여후배들과 여제자들 돈 못 버는거 알면서도 열정과 꿈 하나도 덤벼드는 여린 영혼들을 너희의 별거 아닌 지위로 건드리지 마라. 언젠가 지금처럼 인과응보로 다가올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극인 C씨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미투 운동에 동참했다. 그는 "대학가를 비롯해 내가 있던 동아리들에서도 이러한 일이 발생해 왔다. 그러나 이전의 나는 용기내어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지 못했다. 당사자성이라는 자기검열을 이겨낼 무장된 논리를 갖추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놀라우리만치 젠더적으로 무감각한 사람들(남녀노소 불문)과 대화하면서 반복적으로 무력감을 경험해온 때문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C씨는 "다시, 앞으로 몸 담고자 하는 연극계의 일이기에 잊지 않고 지켜보겠다. 또한 다짐한다. 앞으로 내가 만드는 연극에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예방하고, 발생할 경우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며 동참하겠다는 각오를 남겼다.

    D씨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 (캡처 사진)

     

    하지만 이 같은 폭로가 아직 빙산의 일각이라며 더 나와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연극 현장에서 벗어난 지 4년이 됐다고 한 D씨가 자신의 SNS에 남긴 장문의 글 중 일부이다.

    "연극계 성추행 뉴스가 나온지 이틀째, 대부분 공연예술인들이 친구로 맺어져 있는 내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은 참으로 고요하다. 타임라인의 분위기가 평소와 다름이 없다는 사실에, 나는 다시 한 번 실망감을 느낀다. 미술계, 문학계, 영화계 성추문 폭로가 이어질 때에도 연극계만큼은 놀랄 만큼 잠잠했다. 노동 현장의 어려움에 대해, 정치적 사안에 대해 들끓던 사람들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입을 다무는 듯 보인다. 서로가 곤란해지겠지만, '당신, 정말 몰랐느냐'고 지목해 물어보고픈 사람들도 있다."


    그는 연극계가 여타 문화 분야에 비해 조용한 이유로 '좁고 작은 세계'임을 꼽았다.

    "작업의 특성상 몇 달간 동거동락 하다시피 매일 마주하며 연습을 진행하고, 또 다음 작품에서 만나고, 이 좁고 작은 세계에서 언제든 마주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므로 이전의 동료이자 언젠가의 동료가 될 누군가에 대한 추문에 의견을 내기에 어려움이 있으리라."

    그러나 D씨는 "딱 여기까지가, 내가 이 글을 쓰기까지 망설여진 부분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이해가 어쩌면 이러한 사건들을,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오지도 못한 숱한 추문들을 키워온 것이란 생각이 든다"며 "그 침묵이 잘못된 행위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혜화동1번지 6기 동인 중 한 명인 연출가 송경화는 공연계도 성추행 문제에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송 연출은 “앞으로 공연을 보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어떤 관객의 글을 봤는데 이것이야말로 연극계 성폭력이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하는 이유들 중 하나”라면서 "우리는 너무 많은 폭력의 순간을 관습처럼 외면해 왔을 것이다. 외면하지 말자. 침묵하지 말자"는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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