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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평창 레터]자원봉사자들은 왜 분노하게 된 걸까요



스포츠일반

    [임종률의 평창 레터]자원봉사자들은 왜 분노하게 된 걸까요

    '우리들은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들은 교통과 숙박, 식사 등 열악한 환경에도 대회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일부 미숙한 운영이 이어져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자원봉사자들이 강릉 아이스아레나로 출근하는 모습. (자료사진=이한형 기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개막을 코앞에 두고 만만치 않은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대회 운영에 큰 역할을 담당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불만입니다. 쉽지 않은 환경 속에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들은 불편을 호소하던 끝에 행사를 보이콧하겠다며 집단행동에까지 나설 뜻을 보였습니다.

    CBS노컷뉴스 특별취재팀은 3일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이날 오후 8시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모의 개회식 진행을 보이콧한 자원봉사자들의 움직임에 대해 단독 보도했습니다. 행사 진행에 투입될 자원봉사자 60여 명이 전날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위 속에 1시간 가량 버스를 기다린 끝에 "더 이상 이대로는 봉사를 할 수 없다"고 행동에 나선 겁니다.

    이들 자원봉사자는 3일 모의 개회식을 앞두고 조직위와 대화 끝에 일단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조직위는 수송 업무 관계자의 사과와 버스 운용 차질에 대한 재발 방지로 자원봉사자들을 달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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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모의 개회식 진행에 참가한 한 자원봉사자는 CBS노컷뉴스에 "아직 사과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조직위 때문에 참석한 건 아니며 이대로 단체행동을 끝내겠다는 것도 아니다"면서 "미숙한 대회 운영이 계속될 경우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시킬 필요성이 있고, 반드시 단체행동으로 그 뜻을 보여줄 생각"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자원봉사자 문제는 평창올림픽의 뇌관으로 꼽혔습니다. 강원도의 혹독한 추위와 숙소, 식사, 교통 등 열악한 환경을 젊은 층이 대다수인 자원봉사자들이 견뎌낼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20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포기를 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조직위는 "대회에 합류하기도 전에 포기를 했던 인원"이라고 밝혔지만 우려는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일부이긴 하지만 자원봉사자들이 불만을 터뜨리며 집단행동에까지 나설 움직임을 보인 겁니다. 조직위가 2일 처우 개선 약속을 공식 발표하고 이희범 위원장이 운영 인력들을 위한 호소문까지 낸 지 불과 하루 만이었습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6일 앞둔 3일 오후 자원봉사자들이 강추위 속에서도 강원도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모의 개회식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안내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들은 왜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던 걸까요? 사실 국제스포츠 이벤트에서 자원봉사자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어려운 환경과 열악한 처우에 불만이 생긴 자원봉사자들의 목소리는 어느 대회든 나오기 마련입니다.

    4년 전 인천아시안게임 당시도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처우가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지급된 도시락이 유통기한을 넘기거나 살모넬라균이 검출돼 비난이 커졌습니다.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는 "개밥"이라는 푸념이 나올 만큼 품질이 나쁜 경우도 적잖았습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일부 인원이 이탈하기는 했지만 이번 평창올림픽처럼 집단행동 움직임까지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2016년 10월부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 혁명'의 영향이 크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정권에 분노한 시민들이 결국 힘을 모아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특히 최 씨의 딸 정유라 씨의 명문대 합격과 승마 국가대표 발탁 등 각종 특혜에 젊은 세대들은 공분했습니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입시와 취업 절벽에 절망하던 젊은 세대들이었기에 "부모도 실력"이라던 정 씨의 승승장구는 분노를 참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대통령까지 바뀌는 역사의 현장을 보고 느끼고 체험했던 세대들입니다.

    물론 평창올림픽 조직위가 최 씨와 정 씨, 박근혜 정권처럼 비리와 모순투성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조직위 직원들 역시 힘든 여건 속에서 분투하고 있습니다. 적잖은 조직위 관계자들이 "정말 집에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식구들과도 떨어져 밤낮으로 대회 성공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후 첫 주말인 3월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차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 이한형 기자

     

    문제는 일부 미숙한 운영과 그럼에도 고쳐지지 않고 있는 부분입니다. 위원장의 말처럼 강원도 산간 지역에 부족한 숙소와 어려운 교통 등 험준한 여건도 한몫을 할 겁니다. 여기에 일부 유급인력의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차별도 문제를 키우는 부분입니다.

    조직위 관계자들은 자원봉사자 문제를 보도한 CBS노컷뉴스에 "국가적인 행사인 평창올림픽이 잘 치러져야 하지 않느냐"면서 "이러면 올림픽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며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일부 담당자들은 "이런 보도를 하는 것은 올림픽이 잘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냐"며 격하게 항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맞습니다. 평창올림픽은 전 국민이 나서서 대회 성공 개최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국가적 행사임이 분명합니다. 한때는 이런 애국심이 안방에서 열린 국제스포츠 이벤트의 성공으로 이어진 큰 원동력이 됐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월드컵,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입니다. 국민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나아가 어쩌면 희생 속에 대회가 치러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달라진 겁니다. 국가의 대사라는 대명제에 더 이상 부조리와 희생을 감수할 수는 없다는 의식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요즘입니다. 더군다나 세월호 등 각종 참사에서 보듯 그토록 위했던 '국가가 국민들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던' 사건들은 왜 그렇게 많았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대사를 위해 무턱대고 희생과 인내를 강요하는 것은 이제 시대와 시민들의 의식에 맞지 않는 겁니다. 국가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행복이 먼저라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명제가 뒤늦게 현실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평창올림픽 환영합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들이 지난 1일 평창 선수촌 개촌식에서 평화올림픽을 상징하는 비둘기 모양 풍선을 들고 선수들을 환영하는 모습.(사진=노컷뉴스)

     

    물론 지금도 대다수의 자원봉사자들이 투철한 사명감에 어려운 여건들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만나는 대부분의 자원봉사자들은 "춥지 않나요?"라고 인사를 건네면 빨개진 얼굴에도 "괜찮아요"라고 밝게 웃습니다.

    3일 모의 개회식을 보이콧하려다 철회한 한 자원봉사자도 CBS노컷뉴스에 "개회식 공연을 준비한 다른 사람들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뿐이었다"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3일 체감 온도 영하 20를 밑도는 혹한에도 모의 개회식을 치러낸 자원봉사자들입니다.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 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간단한 일이기도 할 겁니다. 상식에 맞는 운영과 차별 없는 대우, 그리고 진정성일 겁니다. 자원봉사자들도 평창올림픽이 넉넉지 않은 재정 속에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원하는 것은 VIP급의 대우가 아닙니다. 그저 강원도의 맹추위에 한 시간씩 떨게 하지 않는 것, 욕설과 반말이 아닌 인간적인 대우 등 소박한 바람입니다.

    이번 정권은 '촛불 혁명'을 일궈낸 시민들의 힘으로 이뤄졌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모토는 '나라다운 나라'입니다. 어려운 이들을 감싸안은 문 대통령의 따뜻한 모습이 이전 정권에 상처받은 시민들을 위로했습니다. 정권이 들어선 이후 각종 사건들에 대해서 이전 대통령과 달리 정성을 담아 고개를 조아리고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며 국민들에게 사과했습니다.

    평창올림픽은 코앞에 다가왔지만 개막까지 아직 시간은 남아 있습니다. 조직위 역시 처음 치르는 동계올림픽인 만큼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국가적 행사를 위해 도와달라"는 말만 되풀이한다면 대회의 성공 개최는 요원한 일이 될지 모릅니다. '올림픽다운 올림픽'을 위해서는 조직위와 자원봉사자 등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평창올림픽 G-200 행사에서 홍보대사로 위촉돼 김연아 대사와 함께 대회 성공 문구를 쓴 모습.(자료사진=평창 조직위)

     

    ps-문 대통령은 집권 초기 이후 높은 지지율을 보였지만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즈음해서 적잖게 떨어졌습니다. 북한은 평창올림픽 참가 신청이 지나 당초 출전할 수 없었지만 개최국인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구애와 올림픽의 평화, 안전을 원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뒤늦게 참가하게 됐습니다.

    자력 출전권을 따냈지만 신청 기한을 넘겼던 피겨스케이팅 페어의 렴대옥-김주식이야 차치하더라도 출전 요건을 채우지 못한 선수들 20명이 평창에 오게 됐습니다. 올림픽은 모든 선수들의 꿈, 평생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무대입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 선수들은 특혜를 받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그런 북한 선수단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노력하는 자신들과 달리 어쩌면 특혜 속에 올림픽에 참가한 북한 선수들. 그래서 더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들이 힘겹고, 집단행동까지 고려할 만큼 분노하는 건 아닐까요?

    ps의 ps-사실 이번 평창 대회를 앞두고 그동안 올림픽 등 국제스포츠 대회 현장 취재 때마다 써왔던 '레터' 칼럼을 써야 하나 고민이었습니다. 대회가 임박한 상황에서도 쉽게 결정을 하지 못했던 터였는데 자원봉사자 문제와 관련된 상황이 미적거리던 등을 떠밀었습니다.

    빙상 담당이라 대부분 강릉에서 대회 취재를 할 것이지만 평창올림픽인 만큼 '평창 레터'라는 이름으로 띄웁니다. '임종률의 평창 레터' 무거운 마음으로, 그러나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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