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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36.5도보다 뜨거운 박정민의 세상

    [노컷 인터뷰 ①] "대역 없는 피아노 연주, 연습하며 울기도 해"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 증후군 동생 오진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힘든 캐릭터만 하는 거요? 전 이제 그냥 제 팔자려니 해요."

    박정민은 뜨겁다. 수없이 난관들을 헤쳐 온 그의 필모그래피가 이를 증명한다. '전설의 주먹'에서의 복서, '그것만이 내 세상'의 서번트 증후군(기억, 암산, 퍼즐이나 음악적인 부분 등 특정한 부분에서 우수한 능력을 가지는 자폐증) 청년 그리고 '변산'의 래퍼까지. 그가 도전해 온 영역들은 무궁무진하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팔자'라고 이야기하지만 박정민은 결코 주저앉지 않는다. 한 번 캐릭터를 위해서라면 죽기 살기로 파고든다. 32년 평생 해 본 적도 없었던 피아노 연주를 대역 없이 소화한 정도라면 알 만하다.

    박정민은 끊임없이 '여기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부딪쳐 왔다. 만약 그가 진심으로 그 캐릭터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질문이다. 이번 역할에서도 그는 다큐멘터리나 책을 보기 보다는 직접 자신이 피부로 느끼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길 택했다.

    다음은 쉽지 않은 배우 박정민과의 일문일답.

    ▶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역할, 쉽게 마음먹고 할 만한 캐릭터는 아니다. 무엇이 그토록 강하게 끌렸나.

    - 이미 이병헌 선배가 한다고 결정이 난 상태에서 사실 선택은 쉬웠다. 그런 선배랑 언제 어떻게 만나서 일을 해보겠나. 일단 시나리오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고, 진태가 가진 매력이 잘 묻어나더라. 이건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매니저에게 바로 하고 싶다고 말하고, 시켜달라고 계속 졸랐다. 그렇게 운이 좋게 하게 됐는데 대본에 들어간 순간부터 '멘붕'이 왔다. 쉽게 선택할 만한 역할도, 시나리오도 아니었던 거다. 굉장히 조심스럽고, 민감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해야할 것도 많았다.

    ▶ 자칫 잘못하면 장애를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는 역할이다. 그런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게 연구하고 접근했을 것 같다.

    - 처음에는 그 분들의 마음을 이해해 보자고 생각해서 책이랑 다큐멘터리도 봤는데 내가 몇 백 년을 연구해도 마땅한 결론이 나지 않은 영역을 몇 개월 준비해서 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안다는게 불가능하고 무례하고 건방진 일이라는 걸 느꼈다.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한 일본인 작가가 쓴 글에 이런 글귀가 있다. '왜 사람들은 나에게 치매에 걸린 70대 할머니에게 말하듯이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는데'. 그 때 내가 지금 이 사람들의 세상을 존중하고 있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분들도 이 세상에서 살고, 살아가고자 하는 분들인데….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이병헌인데 실제로 작업해 보니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하다. 이병헌은 유례없이 칭찬을 아끼지 않던데.

    - 같이 작업하고 호흡을 맞춰보면서 받아 적어 놓기도 하고 그랬다. 매순간 선배가 하는 걸 보면서 이렇게 해야 되는구나를 느꼈다. 선배님이 하는 걸 이번 영화에서 써먹어 보려고 했는데 아직 안되니까 다음에 해야겠다고 생각도 했었다. 이병헌 선배는 사소한 차이로 큰 뉘앙스의 변화를 만들어 낸다. 그 다른 뉘앙스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선배가 계산을 해고, 감독님과 이야기를 해서 단단하게 만들어 간다. 나는 나 혼자 바빠서 막 연기를 하고 있다면, 선배는 정말 다 같이 영화를 만들어가는 느낌이었다.

    ▶ 이병헌과 상당히 많은 애드리브를 주고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지금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나.

    - 서로 권투를 하는 장면이었는데 원래 한 줄 짜리 지문이었다. 그런데 이병헌 선배가 때려 보는 건 어떠냐고 그랬다. 내가 때리니까 막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 주셨다. 그 순간 갑자기 생각이 나서 '만원달라고, 만원'했는데 관객 분들이 좋아해주시더라. 다른 하나는 절 업어서 내려주는 장면이었는데 원래 이병헌 선배 대사가 '더럽게 무겁네'였다. 그런데 뭔가 조금 더 좋은 게 있을 것 같았다. 한 번 테이크를 더 가게 됐을 때, 업힌 상태에서 내가 갑자기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아이디어를 내니까 선배가 고개를 끄덕이더라. 그렇게 내가 '엄마!'하고 나가니까 선배가 '안 잤어, 저 새끼'하는 장면이 탄생한거다. 막 던져도 서로 다 살아나니까 점점 촬영이 편하고 재미있어졌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 증후군 동생 오진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피아노 연주 대역을 쓰지 않았다는 게 상당히 놀라웠다. 원래 피아노를 배웠거나 잘 치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어쩌다 손 대역 없이 그렇게 가게 된 건가.

    - 시간과 연습 말고는 답이 없어서 투자를 많이 했다. 나는 악보를 볼 줄도 모르고, 피아노도 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의욕이 앞서서 감독님과 처음 미팅 때 내가 미끼를 물었다. 한 두 달 연습하고 나서 영화를 위해 CG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했는데 감독님이 테크닉으로는 깔끔할 수 있는데 관객들이 느끼는 에너지 자체는 감소할 수 있다고 하시더라. 일리가 있는 말씀이었다. 결국 촬영 첫 날 헝가리 연탄곡을 쳤는데 그 때는 만약을 대비해서 대역도 와 계셨었다. 그런데 한지민 누나랑 자주 만나서 연습이 돼 있던 상태라 너무 그럴싸하게 연주해 버린 거다. 그 때부터는 현장에 대역도 없이 전적으로 내가 해야 했다. 그냥 손에 익을 때까지 쳐서 외우는거다. 그래서 한 번 막히면 처음부터 다시 쳐야 된다. (웃음)

    ▶ 전혀 모르는 분야 아닌가. 연습하다가 스트레스 받아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을텐데 어떻게 풀었나.

    - 이게 힘들었던 게 나도 사실 기계처럼 하는 거다. 약간 정신이 나가 있다. 계속 피아노를 연주하다 보면 눈이 아프고, 경계선이 잘 안 보이는 지경이 온다. 그럴 때 지옥 훈련을 하는 거다. 너무 힘들면 일어나서 진태 연기를 연습하다가 다시 앉아서 피아노 치다가, 아무래도 CG 해야되겠다고 생각하면서 술 먹고…. 너무 힘들어서 울기도 많이 울고, 연기도 잘 안 되는 것 같고…상당히 복합적이었어요. 집 안에 혼자 있는 게 외롭더라고요. 내 옆에 아무도 없는 것 같고, 이렇게 힘든 걸 누가 알아주나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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