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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장준환 감독, "광화문 촛불은 586 세대의 과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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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장준환 감독, "광화문 촛불은 586 세대의 과제죠"

    [노컷 인터뷰 ②] 장준환 감독이 바라본 2017 광화문 광장

    '1987' 연출을 맡은 장준환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년과 2017년, 30년 간격을 두고 서울 중구 광화문 광장에는 닮은 듯 다른 일이 벌어진다. 전자는 지속된 국가 폭력에 참지 못한 사람들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기 위해 일어섰고, 후자는 국정농단에 참지 못한 사람들이 대통령 탄핵을 위해 일어섰다.

    장준환 감독이 한창 '1987'을 촬영할 때, 광화문 광장에는 뜨겁게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영화 촬영 현장을 떠나지 못했던 그는 집회에 참석할 수 없었지만 지난해 겨울부터 봄까지 꺼지지 않던 촛불의 의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것은 1987년과 이어지기에 감격스럽고도, 한없이 슬프게 다가왔다.

    굳이 따지자면 586 세대로 분류되는 그는, 스스로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다른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시위에 나설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던 사이, 비슷한 또래의 누군가는 목숨을 잃어갔던 것이다. 그 부채감은 결국 그를 여기까지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다음은 이어지는 장준환 감독과의 일문일답.

    ▶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이 영화 제작 이야기가 나왔던 게 2016년 칸영화제 때다. 그 때는 정권이 이렇게 될 줄도 전혀 몰랐었고, 실제 영화계에서는 암암리에 '블랙리스트' 같은 검열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많았었다. 오랜만에 복귀하는 영화인데 이 영화를 잡게 되기까지 어떤 생각을 했나.

    - 우리가 시작할 때 정말 비밀스럽게 시작했다. 각색 작업을 오래했는데 그 때는 진짜 이걸 만들 수 있을지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꼭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화도 좀 나고 안타까웠다. 광주와 이어지는 결과물이었던 역사인데 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언급도 하지 않나. 아이를 키우다보니 사회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고민 이런 것들이 제게 많이 생겼던 것 같다. 이전에 했던 작업들이 인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면 이제 조금 거리를 두고 본질적인 부분에 접근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 절묘하게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광화문 촛불 시국이 계속되다가 결국 정권이 바뀌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광화문 광장과 연결된, 그런 직감을 느끼기도 했을 것 같다.

    - 1987년에 우리가 가진 그 집단 승리의 기억이 결국 2017년의 광화문 광장까지 미묘하게 연결돼 있다고 본다. 당시 광장에 나갔던 청년들이 다시 부모가 돼서 아이를 데리고 나가고…. 일부 뒤에서는 시대에 편승해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2016년 8월부터 시작해서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하던 시절이 있어 억울한 측면이 있다. 30년 만에 광장이 되살아났고, 그런 부분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기도 하지만 굉장히 씁쓸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 1987년, 그 해를 겪었던 청년들이 지금은 사회의 중년층이 됐다. 그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나.

    - 아마 586 세대에게는 남다르게 보일 것 같다. 그냥 우리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낸 거라는 달콤함에만 머물지 않고, 왜 또 2017년에 광장이 열려야 했는지 그런 부분까지 생각해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과거의 아름답고 순수하고 뜨거웠던 자기 자신을 되새기면서 더 확장된 용기와 희망이 왔으면 한다. 우리는 어디까지 와있고, 또 진짜 '그 날'을 향해 가고 있는 건지 그런 부분까지도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1987' 연출을 맡은 장준환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고(故) 박종철 열사의 안경에 대한 에피소드도 궁금하다. 영화에 등장한 안경이 실제 고인의 유품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가져다 쓰게 됐나?

    - 유품은 아니다. 가족분들이 감사하게도 안경을 빌려주셔서 그걸 토대로 똑같이 만든 모조품이다. 아마 촬영 당시에 실제 안경을 배우들이 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 고(故) 박종철 열사의 가족, 그리고 고(故) 이한열 열사의 가족분들이 영화를 보고 어떤 말씀을 나눴는지 궁금하다.

    - 그게 제일 큰 걱정이었다. 이한열 열사 쪽 유족 분들은 아직 준비가 안돼서 보지 못하겠다고 하시기도 했는데 그 아픈 기억을 꺼내 보여드리는 게 맞나 싶고…. 박종철 열사 누님과 형님은 와서 보시고 말씀을 주셨다. 별 기대를 안했다고 하시더라. 그 동안 이런 저런 기획들이 있었는데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다거나, 프로파간다적이거나, 상업적이거나 이랬던 것 같다. 그래서 기대를 안했는데 잘 만들어저서 고맙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흥행이고 뭐고 모르겠고, 정말 안심이 됐다. 그 분들은 이 사건 이후로 삶이 통째로 바뀐 분들이다. 나 역시 아이가 있으니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미루어 짐작해보면 너무 가슴이 아프고 화가 난다. 스물, 스물한살짜리 청년들이 뭘 어떻게 했다고 목숨까지 앗아가야 했는지….

    ▶ '1987'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최근에 아내인 배우 문소리가 감독으로 데뷔를 했다. 감독 부부로 이렇게 영화계에서 만나는 느낌이 어떤지 궁금하다.

    - 한 집안에 감독이 둘이 있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다. 사실 이 일은 너무 많이 살점을 떼어 내는 것 같은, 목숨 일부분은 소진되는 그런 일이다.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즐겁게 하니까 응원을 보내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힘들게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여배우는 오늘도'의 결과물도 굉장히 좋았던 것 같고, 반가운 마음 반, 걱정되는 마음 반 그런 상태다.

    ▶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7'은 상업 영화다. 상업 영화가 진정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큰 규모의 예산이 들어간만큼, 대중적 취향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오락적 측면이 두드러지는 게 사실이다. '1987'은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는데 이런 '상업 영화 답지 않은 부분'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 내게는 비용적 문제보다는 이 역사의 한 줄기를 제대로 담아야 한다는 부담감, 살아계신 많은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아야겠다는 부담감이 더 컸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책임감이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내 마음과 진심을 다해 재미있어하는 영화를 만들면 부수적인 건 나중에 맡겨야지 어떻게 되는 게 아닌 것 같더라. 이번 영화 또한 미시에서 거시로의 전환일 뿐, 내가 예전에 사람을 바라보는 그런 맥락에서 벗어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사 안에 있는 인간들을 함게 들여다보고, 위로하는 맥락에서는 크게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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