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녹슨 나사에 목숨 걸 수밖에…" 타워크레인 기사 '절규'



사회 일반

    "녹슨 나사에 목숨 걸 수밖에…" 타워크레인 기사 '절규'

    100m 상공 하루 10시간 중노동… 직업병 달고도 임대사 '갑질'에 속수무책

    지난 22일 찾은 경기 화성시 동탄2신도시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현장에서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노후된 타워크레인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신병근 기자)

     

    "조종실의 녹슨 철 냄새로 아주 역겨워 죽겠는거죠. 본드 마신 느낌이지만 한겨울에도 창문을 열어놔요. 살아야하니까…."

    경기도 화성시 동탄2신도시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현장에서 만난 타워크레인 기사 전용수(59)씨.

    15년 차 베테랑인 그는 이곳에서만 10개월째 타워크레인을 조종하고 있다면서 최근 잇따르는 크레인 사고로 숨진 동료 기사들을 생각할 때면 울화가 치밀어오른다며 말문을 열었다.

    전씨는 타워크레인 사고의 주된 요인이 노후화된 장비 때문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열악한 작업환경은 수년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여기서 일하는 10명 기사들이 하루 9~10시간씩 100m 높이에서 크레인을 조종하지만 항상 불안하고 무섭다"며 "언제, 어느 타워가 넘어갈지 모른다. '제발 오늘도 무사하자'는 심경으로 타워에 오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씨의 동료인 임병완(47)씨도 "강풍이 불면 타워 자체가 1m, 심하면 2m까지 앞뒤로, 좌우로, 위아래로 흔들린다"며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경기 화성시 동탄2신도시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의 연결 부속품이 수리되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

     

    ◇"타워크레인=잠재적 살인기계"… 녹슨 100m 상공, '공포의 조종실'

    25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타워크레인 사고로 목숨을 잃은 건설노동자는 19명, 부상자는 46명에 달한다. 이같은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노후화된 기계가 버젓이 '신형' 타워크레인으로 둔갑해 쓰이고 있다는 것이 꼽힌다.

    전씨가 현재 조종하는 '타워1호기' 역시 건설기계 등록증 상 생산년도는 2016년 12월로 명시돼 있지만, 전씨는 이에 대해 '거짓' 생산년도라고 일축했다. 타워크레인의 소유주가 직접 해당 지자체에 건설기계 등록을 하다 보니 임의로 생산·제조연도를 조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지난 9일 경기 용인시 고매동 물류센터 건설 현장에서 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타워크레인의 제조연도는 2012년이었으나 국토부의 등록현황에는 2016년으로 표기돼 있었다.

    전씨의 '타워1호기'는 2016년식이라 보기에 믿기 힘들만큼 노후화가 심각한 상태로, 녹슨 발판과 손잡이는 물론 부식된 철 때문에 역겨운 냄새가 진동해 한겨울 추위에도 조종실 창문을 모두 열어야 하는 실정이다.

    조종레버는 온몸을 비틀어 움질여야 할 만큼 고정강도가 약한데, 강풍으로 조종실이 심하게 흔들릴 때면 조종레버는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전씨는 또 부품을 조립해 1단(5.8m)씩 쌓아가는 타워크레인의 연결 부위는 부식된 곳의 경우 페인트칠로 '땜방질'에 그친데다 지지대 역할을 하는 '핀'의 탈착된 곳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타워크레인을 '잠재적 살인기계'라고 비유한 전씨는 "크레인은 한 번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타워에서 뭐 하나라도 지상으로 떨어지면 '와장창', 다 같이 죽는 것"이라며 "생산년도를 알 수 없는 부실한 타워, 그런 기계가 전국에서 절반은 된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찾은 경기 화성시 동탄2신도시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현장에 수 어대의 타워크레인이 세워져 있다. (사진=신병근 기자)

     

    ◇새우처럼 구부리고 일해도 하소연하면 '아웃'… "나도 쉬고 싶어요"

    6평 남짓한 휴게실에서 만난 전씨는 내내 다리를 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양해해달라고 했다. 다리를 굽히면 무릎통증이 심하다는 이유였다.

    15년째 타워크레인을 조종하며 그는 근골격계, 호흡기, 시신경, 관절 등 각종 질환이 발생했지만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었다며 한숨만 연거푸 내쉬었다.

    전씨는 "기초공사 때 하루 10시간을 쉬지도 않고 일한 적이 있는데 허리, 어깨, 척추, 경추 통증은 말할 것도 없고 무릎은 다 구부러져 있고…. 일 마치고 내려오면 사람으로 걸어다니는 게 아니다"며 "'네안데르탈인'처럼, 마치 원시인처럼 앞으로 구부정한 채 걸어다닐 수밖에 없다. 직업병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고 혀를 찼다.

    전씨는 이같은 문제를 기사들이 제기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타워크레인 임대사들의 '갑질' 때문이라고 밝혔다.

    타워크레인 임대사와 근로계약을 맺어야 하는 구조 상 임대사들의 횡포는 상상 이상이라는 것으로, 전씨는 임대사의 눈 밖에 날 경우 가차 없이 '해고 통지'가 날아온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임대사들은 '당신 말고도 타워기사 많으니까 싫으면 나가라', 이것이 기본 태도"라며 "자기들하고 뭔가 맞지 않으면 기사 교체요구를 너무 쉽게 한다. 타워기사가 '일회용품 반창고'도 아닌데 본인들 마음대로 뗐다 붙여다 하는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씨는 이어 "우리도 토요일에 쉬고 싶다. 연장근로를 못하겠다고 하면 '그만두고 나가라,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다'고 하니 누구도 문제제기를 못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26일 오전 10시 여의도에서는 '타워크레인 설치해체 노동조합'이 주관, 크레인사고 예방과 안전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를 연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