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11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의 선물 가액을 농축수산물에 한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리는 대신, 경조사비는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줄이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안을 가결했다.
이번 조치로 과일과 꽃, 전복, 옥돔 등 일부 농수산물의 선물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지만 한우와 인삼, 갈치, 굴비 등 생산원가가 비싼 농축수산물은 소비활성화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을 놓고 품목별로 국내 농어민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이번 개정안의 최대 수혜자는 수입산 농축수산물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가공식품업계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내산이 됐든 수입산이 됐든 농축수산물 원재료 비중이 50% 이상인 가공식품에 대해서도 선물비 가액을 1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내 농업계와 수산업계는 김영란법 시행령이 개정되면 외국산 과일과 축산물, 수산물의 수입이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품목별로 희비 교차, 한우·인삼·굴비 '시무룩'…과일·꽃·전복은 '방긋'농식품부는 지난해 9월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 올해 설에는 선물세트 판매액이 지난해 보다 25.8%, 추석에는 7.6%가 감소했지만 시행령이 개정되면 농업 피해가 많은 부분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특히, 과일은 10만원 미만 선물세트가 전체 선물비중의 95%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가액조정 효과가 클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축하 난을 포함한 화훼의 경우도 10만원 미만 선물비중이 96%를 차지해 앞으로 소비활성화가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한우고기 선물세트는 10만원 미만이 7%에 불과하고 나머지 93%는 10만원이 넘기 때문에 이번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에도 불구하고 소비활성화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관측됐다.
인삼의 경우도 10만원 이상 선물세트가 73%에 달해 생산 농민들의 피해 해소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해수부도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선물비 상한액이 10만원으로 상향조정돼도 수산물 품목별로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전망했다.
전복은 5만~10만원 선물 세트 비중이 95%, 옥돔은 50%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물비 상한액 인상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굴비는 10만원 이상이 49%, 갈치는 93%에 달하기 때문에 시행령 개정에도 불구하고 선물 수요가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 외국산 농축수산물 수입업자, 가공식품업체…최대 수혜자 '뒤에서 웃고 있다'이번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 가공식품이다.
원재료 가운데 농축수산물이 원산지에 관계없이 50% 이상 포함됐을 경우 10만원까지 선물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가공식품을 통한 농축수산물의 소비 활성화를 위한 조치다.
얼핏 보기에는 국내산 농축수산물의 소비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가공식품의 원재료 가운데 90% 이상이 외국에서 수입한 농축수산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산 소비 활성화와는 거리가 멀다.
정부가 국내 식품가공업체들의 요구를 무턱대고 수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벌써부터 외국산 쇠고기와 수산물 수입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최근 한국소비자원이 수입 쇠고기를 구입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97%가 앞으로도 수입쇠고기를 먹을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수입 쇠고기를 구입하는 이유에 대해 맛있어서 구매한다는 비율은 8.3%에 불과했고,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구매한다는 비율이 88.7%에 달했다.
이에 대해 한우협회 관계자는 "현재 국내산 쇠고기의 자급률이 40% 이하로 떨어져 축산 주권마저 위협받고 있다"며 "결국 한우사육 기반이 무너지면 이틈을 타서 수입쇠고기 가격이 올라도 국내 소비자들은 하소연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사서 먹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그러면서 "한우고기와 인삼 등 국내산 농축산물은 아예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든지 아니면 추석이나 설 명절 기간만이라도 제외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김영란법의 선물 가액이 10만원으로 늘어나면서 국내 가공업체들이 외국산 농축수산물을 더욱 많이 수입해서 사용할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 농민들만 좋아지게 됐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김영란법 시행 이후 축산물 수입이 18.2% 증가했으며 미국산 냉장 갈비살 가격은 6.4%, 호주산 냉동 갈비 가격은 6.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태환 농협경제지주 축산경제대표이사는 "FTA와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수입 축산물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지만, 한우농가는 줄어들고 쇠고기 자급률도 감소해 한우산업이 흔들리고 있다"며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현수 농식품부 차관은 "선물을 하는 우리 국민들도 가급적이면 국산 농산물을 활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선물세트라든지 이런 데에 수입산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원산지 강화라든지 이런 정책도 병행해서 하겠다"고 말했다.